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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으로부터 1200년쯤 전, 중국 당나라의 한 절을 떠올려 볼게요. 마당 한쪽에는 경전을 펼쳐 놓고 글자 하나하나를 따지는 스님들이 있어요. 반대쪽에는 책은 덮어 둔 채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스님들이 있고요. 그런데 이 두 무리는 사이가 영 좋지 않았어요. 앉아 있는 쪽은 "책만 파는 책벌레"라며 혀를 찼고, 책 보는 쪽은 "글도 안 읽고 졸기만 한다"며 비웃었거든요. 경전 공부를 '교', 가만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는 참선을 '선'이라고 불렀는데, 이 둘은 한집 식구이면서도 오래도록 서로를 깔봤어요.

여기 두 길을 모두 걸어 본 사람이 있어요. 규봉 종밀이라는 스님이에요. 780년에 태어난 그는 원래 스님이 될 생각이 없었어요. 관리가 되려고 유학,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던 평범한 청년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 선사를 만나 마음이 확 끌려 출가했어요. 그런데 종밀은 참선만 하지 않았어요. 화엄경이라는 어렵기로 소문난 경전도 끝까지 파고들었죠. 그래서 그는 '앉는 쪽'과 '읽는 쪽'을 둘 다 속속들이 아는, 흔치 않은 사람이 되었어요.

종밀의 생각은 의외로 단순해요. 낯선 산을 오른다고 해 볼게요. 지도만 들여다보면서 한 발도 안 떼는 사람은 정상에 못 가요. 반대로 지도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하면 길을 잃고 헤매죠. 제대로 가려면 지도를 보면서 동시에 두 발로 걸어야 해요. 종밀에게 경전 공부는 지도였고, 참선은 직접 걷는 일이었어요. 둘 중 하나만 옳다고 우기는 건, 지도와 두 다리 중 하나만 쓰겠다는 고집과 같다는 거예요. 이렇게 교와 선이 사실은 한 몸이라고 본 생각을 '교선일치'라고 불러요.

그런데 이 생각을 종밀 혼자 떠든 게 아니었어요. 곁에 아주 특별한 대화 상대가 있었거든요. 배휴라는 사람이에요. 놀랍게도 그는 스님이 아니었어요. 나중에 재상, 그러니까 지금의 국무총리쯤 되는 자리까지 오른 높은 관리였고, 글씨를 잘 써서 이름난 서예가이기도 했어요. 동시에 불교를 깊이 믿는 신자였죠. 이 바쁜 고위 관료가 종밀에게 편지를 보내 묻고 또 물었어요.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깨달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고요.

혼자 생각할 때와 누가 날카롭게 물어 줄 때는 많이 달라요. 친구가 "그게 무슨 뜻이야?" 하고 되물으면, 그제야 내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 다들 있잖아요. 배휴의 진지한 질문은 종밀의 답을 점점 또렷하게 다듬어 줬어요. 종밀이 배휴에게 답하며 정리한 글들은 그대로 귀한 가르침으로 남았죠. 게다가 배휴는 종밀의 책에 서문을 써 주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기 힘으로 그 생각을 세상에 알렸어요. 좋은 생각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묻혀 버리는데, 배휴가 바로 그 알아주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종밀이 교와 선 사이에 놓은 다리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무너지지 않았어요. 841년에 종밀이 떠나고 300여 년이 흐른 뒤, 고려의 스님 지눌이 종밀의 글을 깊이 읽고 큰 영향을 받았거든요. 우리나라 불교가 경전과 참선을 함께 끌어안는 모습에는 이 흐름이 닿아 있어요. 한 스님의 생각과, 그것을 알아본 한 친구의 정성이 바다를 건너 오래도록 살아남은 셈이에요.

종밀은 경전 공부인 '교'와 참선인 '선'이 서로 싸우던 시절에, 둘이 사실은 지도와 두 다리처럼 한 몸이라고 본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 생각이 또렷해지고 세상에 퍼진 데에는, 스님이 아니라 재상까지 오른 친구 배휴와 주고받은 편지가 큰 몫을 했어요. 좋은 생각은 혼자 완성되지 않고, 진지하게 물어 주고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 자란다는 것. 종밀과 배휴가 천이백 년 전에 남긴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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