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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침에 눈을 떠 볼게요. 집에서는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이고, 학교에 가면 몇 학년 몇 반 학생이에요. 게임을 켜면 등급이 있고, 시험을 보면 등수가 붙어요. 우리는 하루에도 이런 이름표를 수십 개씩 갈아 달아요.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이 이름표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떼어 내면, 그래도 거기 남는 "나"가 있을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옛날 중국 스님이 평생 매달린 질문이 바로 이거예요.

그 스님의 이름은 임제 의현이에요.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그러니까 800년대 중국에서 살다가 866년쯤 세상을 떠난 분이에요. 불교 안에서 '선'이라는 갈래를 새로 크게 일으켜서, 그분 이름을 따 '임제종'이라고 불러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큰 흐름이에요.
그런데 이 스님이 가르치는 방식이 좀 특이했어요. 제자가 어려운 질문을 들고 오면, 차분히 설명해 주는 대신 갑자기 '할!' 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어요. 어떨 땐 들고 있던 막대기로 툭 치기도 했고요.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여기엔 그분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무위진인이라는 말에 담겨 있어요.

무위진인은 뜻으로 보면 두 덩어리예요. '무위'는 자리가 없다는 뜻, '진인'은 참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합치면 '정해진 자리가 없는 참된 사람'이 돼요.
임제 스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대들 얼굴로 늘 드나드는, 자리 없는 참사람이 하나 있다." 얼굴로 드나든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지금 여러분이 이 글자를 보고 있죠. 그 보는 작용, 옆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작용, 무언가를 떠올리는 작용. 눈과 귀로 쉴 새 없이 들고 나는 그 생생한 알아차림이 있잖아요. 임제 스님은 바로 그것을 가리킨 거예요. 멀리 하늘에 있는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보고 듣는 '바로 그 녀석' 말이에요.

여기서 '자리가 없다'는 말이 핵심이에요. 우리는 '나'를 설명할 때 꼭 자리를 붙여요. 나는 학생이고, 나는 형이고, 나는 1등이고. 그런데 임제 스님이 보기엔, 그렇게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진짜 나를 그 이름표로 착각해 버려요.
쉽게 빗대 볼게요. 무대 위 배우가 왕 역할을 맡았다고 진짜 왕이 된 건 아니죠. 연극이 끝나면 옷을 벗고 원래 자기로 돌아와요. 우리가 단 학생, 등수, 등급 같은 이름표도 사실은 잠깐 맡은 역할 옷이에요. 그 옷을 다 벗어도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본래의 나'는 그대로 있어요. 임제 스님은 그 본래의 나에는 정해진 자리표가 없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자리 없는 참사람'이에요.

그럼 처음의 '할!' 소리로 돌아가 볼게요. 제자가 '깨달음이 뭔가요, 부처가 뭔가요' 하고 머릿속으로 답을 찾기 시작하면, 그 순간 또 새로운 이름표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깨달음은 이런 것'이라고 말로 정의를 내리는 순간, 진짜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려요.
그래서 임제 스님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 '할!'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깜짝 놀라 생각이 뚝 멈추는 그 찰나, 아무 이름표도 없이 그냥 듣고 놀라는 '바로 그 녀석'이 드러나거든요. 몽둥이로 툭 치는 것도 같은 뜻이에요. 머리로 따지지 말고 지금 여기서 느끼는 그것을 바로 보라는, 좀 거칠지만 친절한 손짓이었어요.

임제 스님이 남긴 이 가르침은 '임제록'이라는 책에 적혀 지금까지 전해져요. 천 년이 훌쩍 넘도록 사람들이 이 말을 곱씹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모습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 거예요.
우리는 여전히 등수와 등급에 마음을 졸이고, 남이 붙여 준 이름표 하나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해요. 임제 스님의 말은 그럴 때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묻는 것 같아요. "그 이름표가 정말 너야? 이름표를 다 떼도 지금 이렇게 보고 듣는 너는 멀쩡히 있잖아."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실을 한 번 더 가리켜 주는 거예요.

임제 의현은 약 1,200년 전 중국에서 임제종을 연 선 스님이에요. 그는 '자리 없는 참사람', 곧 무위진인이라는 말로, 학생이나 등수 같은 이름표를 다 떼어 내도 지금 이 순간 보고 듣는 본래의 나는 그대로 있다고 가리켰어요. 말로 설명하면 또 새 이름표가 되니까, 차라리 '할!' 하고 소리치고 몽둥이로 쳐서 생각이 멈춘 그 찰나에 직접 보게 했고요. 그러니 다음에 등수나 남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릴 때, 이름표를 다 떼도 멀쩡히 남는 '바로 그 녀석'을 한 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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