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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조용한 방에 다섯 사람이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어요. 등을 곧게 펴고, 숨을 천천히 쉬고, 누가 봐도 똑같은 모습이에요. 사진을 찍어 나란히 놓으면 다섯 장이 거의 구별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한 사람씩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누구는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다음 생엔 좋은 데 태어나겠지' 하고 바라고, 누구는 그냥 마음이 좀 편해지려고 앉아 있어요. 또 누구는 훨씬 깊은 무언가를 가만히 보고 있고요. 겉모습은 똑같은데 속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책을 펴 놓고도, 누구는 시험 점수만 생각하고 누구는 내용에 푹 빠지는 것과 비슷하지요.
천이백 년쯤 전, 당나라의 한 스님이 바로 이 점을 콕 짚었어요.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고 다 같은 명상이 아니다." 그 스님이 바로 규봉 종밀이에요.

종밀은 780년에 태어나 841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에요. 예순한 해를 산 셈이지요. 그는 보통 한 사람이 평생에 하나만 해도 벅찬 두 가지 큰 공부를, 한 몸에 지녔어요.
하나는 '화엄'이에요. 아주 두꺼운 경전을 깊이 읽고 한 줄 한 줄 따지는 공부예요. 종밀은 이 화엄 공부에서 손꼽히는 다섯 번째 큰스님으로 꼽혀요. 다른 하나는 '선'이에요. 말과 글을 잠시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 자기 마음을 곧장 들여다보는 수행이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이 둘 사이가 꽤 나빴어요. 경전을 파고드는 쪽은 "앉아만 있으면 대체 뭘 아느냐" 하고, 좌선하는 쪽은 "글자만 따져서 뭐 하느냐" 했지요. 종밀은 양쪽을 다 직접 해 본 드문 사람이라, 둘이 사실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고 봤어요. 이걸 한마디로 교선일치, 가르침과 선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해요.

종밀은 '선원제전집도서'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일을 해요. 명상을, 그러니까 선을 다섯 칸짜리 계단으로 나눈 거예요.
왜 굳이 나눴을까요? 앞에서 본 다섯 사람을 다시 떠올려 보세요. 겉모습만 보면 다 같은 명상이지만, 속으로 무얼 알고 무얼 바라느냐에 따라 깊이가 전혀 다르거든요. 종밀은 "명상은 앉은 자세로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무얼 깨쳤느냐로 갈린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까 이 다섯 칸은 누가 더 오래 앉아 있느냐, 다리를 더 잘 꼬느냐 하는 순서가 아니에요. 마음이 세상과 '나'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봤느냐의 순서예요.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 볼게요.

첫째 칸은 불교 밖 사람들의 명상이에요. '이 세상은 답답하니 더 좋은 하늘나라에 태어나자' 하는 마음으로 앉아요. 게임에서 지금 판이 싫어 얼른 다음 판으로 넘어가려고 점수만 쌓는 것과 비슷해요.
둘째 칸은 보통 사람의 명상이에요.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이치는 믿어요. 그래서 복을 바라며 앉지요. 첫째 칸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지만, 여전히 '나에게 좋은 것'을 챙기려는 마음이 남아 있어요.
셋째 칸에서 비로소 한 가지를 깨쳐요. '나'라고 굳게 믿던 것이, 사실은 딱 정해진 알맹이가 아니라는 걸요. 모래로 쌓은 성을 우리는 '성'이라 부르지만, 들여다보면 그저 모래알이 잠깐 모여 있는 것뿐인 것처럼요.
넷째 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요. '나'만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보는 세상 모든 것에도 딱 정해진 알맹이가 없다는 걸 알아요. 나도, 내 둘레의 사물도 다 그렇다는 거예요. 셋째 칸이 나 하나를 풀어 본 거라면, 넷째 칸은 그 눈으로 온 세상을 다시 보는 셈이지요.

다섯째 칸이 종밀이 가장 높이 친 자리예요. 이름은 여래청정선이라고 해요. 풀어 보면 '부처의 맑은 선'쯤 되지요.
여기서는 이렇게 봐요. 내 마음이 원래부터 맑고, 나는 이미 부처라는 걸 단박에 아는 거예요. 앞의 칸들은 무언가를 더 쌓거나 더 닦아서 위로 올라가려 해요. 그런데 다섯째 칸은 방향이 아예 달라요. 새로 닦아서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깨끗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거예요.
때 묻은 거울을 떠올려 보세요. 앞의 칸들이 거울을 부지런히 닦는 일이라면, 다섯째 칸은 '이 거울은 본래 맑았고, 때는 잠깐 앉았던 먼지였구나' 하고 보는 일이에요. 닦는 손길조차 필요 없이, 보는 순간 환해지는 거지요.

종밀의 다섯 계단은 단순히 등수를 매겨 누구는 잘났고 누구는 못났다 가르려는 게 아니에요.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예요. 경전을 읽는 공부도, 가만히 앉는 선도, 낮은 칸에서 높은 칸까지 하나로 쭉 이어진 같은 길 위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경전이 옳다", "선이 옳다" 하며 등을 돌릴 일이 아니에요. 둘 다 같은 산을 오르는 서로 다른 길목일 뿐이니까요. 종밀이 두 공부를 한 몸에 지녔기에, 이렇게 한 장의 지도를 그려서 보여 줄 수 있었던 거예요.

겉으로 똑같이 앉은 명상도 속으로 무얼 깨쳤느냐에 따라 다섯 갈래로 나뉜다, 이것이 규봉 종밀이 그린 지도예요. 가장 낮은 칸은 더 좋은 곳에 가길 바라는 마음이고, 가장 높은 칸은 내 마음이 본래 맑았음을 단박에 알아차리는 자리예요. 그리고 이 계단의 진짜 뜻은, 경전 공부와 선 수행이 서로 등진 사이가 아니라 같은 산을 오르는 한 길이라는 데 있어요. 다음에 누군가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 있는 걸 보거든, 그 잔잔한 겉모습 너머에 어떤 깊이가 담겨 있을지 한 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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