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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 절에 두 무리의 스님이 살았다고 상상해 볼게요. 한쪽은 아침부터 밤까지 경전을 펼쳐 놓고 한 글자씩 따져 읽어요. "부처님 말씀이 여기 다 적혀 있는데, 이 글을 모르고 어떻게 깨달아?" 다른 한쪽은 방석에 앉아 눈을 감고 좌선만 해요. "글자만 파고들면 머리만 커져. 진짜 깨달음은 말이 끊긴 자리에서 마음으로 곧장 보는 거야." 두 무리는 서로 핵심을 놓쳤다며 못마땅해했어요. 책상에 붙은 쪽과 방석에 붙은 쪽이 등을 돌리고 앉은 셈이죠. 천이백 년쯤 전 중국에서 실제로 이런 다툼이 있었어요. 경전을 공부하는 길을 교, 앉아서 수행하는 길을 선이라 불렀는데, 두 길은 서로를 한 수 아래로 봤답니다.

이 다툼 한가운데에 규봉 종밀이라는 스님이 있었어요. 중국 당나라 때 사람으로, 780년부터 841년까지 예순한 해를 살았어요. 규봉은 그가 오래 머문 산 이름이고, 종밀이 본래 이름이에요. 종밀이 특별한 건, 다투던 두 무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점이에요. 이십 대 초반까지는 유학 책을 읽던 선비였다가, 좌선을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 선 수행에 빠졌어요. 그러다 원각경이라는 경전을 읽던 중 마음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고는, 경전 공부에도 깊이 들어갔죠. 끝내 화엄이라는 큰 학파를 잇는 다섯 번째 스승까지 되었어요. 좌선의 길과 경전의 길, 둘 다 끝까지 가 본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러니 두 무리의 다툼이 그의 눈엔 한집안 식구끼리의 말다툼처럼 보였어요.

교와 선이 뭔지 익숙한 것에 빗대 볼게요. 교는 부처가 말과 글로 남긴 가르침, 곧 경전이에요. 산 정상까지 가는 길을 그려 놓은 지도와 비슷해요. 어디서 꺾고 어디를 조심할지 친절하게 적혀 있죠. 선은 그 길을 말없이 두 발로 직접 걷는 일이에요. 지도를 덮고 흙을 밟으며 정상의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는 거예요. 자, 지도만 들여다보면 어떻게 될까요? 길을 통째로 외워도 방에서 한 걸음도 안 나갔으니 정상엔 닿지 못해요. 반대로 지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하면 엉뚱한 골짜기에서 길을 잃기 쉽고요. 종밀이 보기에 책상파와 방석파의 약점이 딱 이거였어요. 한쪽은 길을 알고도 안 걷고, 한쪽은 걷되 길을 모를 위험에 놓인 거죠.

종밀은 이 다툼을 풀 한마디를 내놓았어요. 경전은 부처의 말이고, 선은 부처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한 사람의 말과 마음이 서로 싸우는 일은 없잖아요. 내가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 때, 그 말과 "같이 가고 싶다"는 마음은 같은 나에게서 나온 거니까요. 경전과 선도 마찬가지예요. 둘 다 같은 부처에게서 나왔으니 사실은 한 몸인 셈이죠. 이렇게 교와 선이 둘이 아니라 하나로 통한다고 본 것이 바로 교선일치예요. 갈라져 있던 말과 마음을 다시 붙여 놓은 거예요. 종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여러 선 수행의 갈래와 여러 경전의 가르침을 하나씩 짝지어 정리한 책도 남겼어요. 선원제전집도서라는 긴 이름의 책인데, 어떤 선이 어떤 가르침과 통하는지 지도처럼 펼쳐 보인 거예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게요. 교선일치는 "그냥 다 같으니 대충 섞자"는 말이 아니에요. 종밀은 오히려 선에도 여러 갈래가 있고 경전에도 깊고 얕은 차이가 있다며, 그 차이를 꼼꼼히 줄 세워 정리했어요. 지도에 큰길과 샛길이 다 그려져 있듯이요. 그가 말한 건 "차이를 지우자"가 아니라 "차이를 알되, 결국 한 봉우리로 이어진 길임을 잊지 말자"였어요. 그래서 그의 교선일치는 두루뭉술한 화해가 아니라, 길마다 자리를 정해 준 꼼꼼한 지도에 가까웠어요.

왜 이게 중요할까요? 종밀은 사람들에게 한쪽만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길을 열어 줬어요. 경전으로 먼저 이치를 환히 안 다음, 그 앎을 좌선으로 몸에 익히면 된다는 거죠. 지도를 읽고 나서 직접 걷는 순서예요. 이 생각은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삼백 년쯤 뒤 고려의 지눌이라는 큰 스님이 종밀의 책을 깊이 읽고, 경전 공부와 좌선을 나란히 닦는 길을 우리 불교에 단단히 심었어요. 오늘날 한국 절에서 스님들이 경전도 보고 참선도 하는 모습 속에, 천이백 년 전 종밀이 묶어 둔 매듭이 그대로 살아 있는 셈이에요.

종밀은 경전을 파는 교와 좌선을 닦는 선이 서로 등을 돌리던 시절에, 두 길을 모두 걸어 본 사람이었어요. 그는 경전을 부처의 말, 선을 부처의 마음에 빗대며 한 부처에게서 나온 둘이 다를 리 없다고 했어요. 이렇게 말과 마음, 지도와 걷기를 하나로 묶은 생각이 교선일치예요. 단, 차이를 지운 게 아니라 길마다 자리를 정해 주며 묶었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책으로 길을 환히 알고 그 길을 두 발로 걷는 것, 둘 중 하나만 골라 다툴 일이 아니라는 거죠. 공부가 먼저냐 실천이 먼저냐를 두고 편이 갈릴 때, 종밀의 답을 한번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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