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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영을 글로 배운다고 생각해 볼까요. 물의 저항, 팔 젓는 각도, 숨 쉬는 박자를 아무리 정확히 외워도, 물에 한 번 들어가 보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헤엄칠 줄 모릅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약 천백 년 전 중국에 살았던 한 스님은 깨달음도 꼭 이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부처가 어떻고 진리가 어떻고 책으로 설명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 설명을 외우느라 정작 자기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 스님은 아주 별난 방법을 씁니다. 제자가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진지하게 물으면, 대답 대신 갑자기 천둥 같은 고함을 질렀어요. 이 스님이 바로 임제 의현입니다.

임제 의현은 중국 당나라 때, 그러니까 9세기에 활동한 스님이에요. 86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젊은 시절 그는 누구보다 경전을 열심히 공부한, 말하자면 우등생이었어요.
그런데 황벽이라는 스승 밑에서 그는 이상한 경험을 합니다. "불교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승이 대답은 안 하고 몽둥이로 때렸대요. 다시 물어도 때리고, 또 물어도 때렸습니다.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거죠. 답답해진 임제는 절을 떠나 다른 스님을 찾아갔는데, 그 스님의 한마디에 그만 무언가가 탁 트였어요. 매를 맞을 때마다 스승이 사실은 가장 친절한 답을 주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챈 겁니다. 말로 떠먹여 주는 대신, 스스로 깨치도록 밀어붙이고 있었던 거예요.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를 떠올려 볼게요. 부모가 뒤에서 잡아 주는 동안에는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진짜로 타는 게 아니죠. 손을 놓는 그 순간, 잠깐 휘청하다가 아이는 비로소 혼자 달리게 됩니다.
임제의 고함은 바로 그 "손을 놓는" 순간이었어요. 제자가 부처를 머리 밖 어딘가에서 찾으려 할 때, 갑작스러운 고함은 그 생각의 흐름을 뚝 끊어 버립니다. 외우던 답, 기대하던 설명이 한순간 날아가고, 제자는 멍하니 지금 이 자리에 그냥 서 있게 되죠. 임제는 그 텅 빈 자리에서 깨달음이 번쩍 일어난다고 본 거예요. 이 고함을 한자로 '할'이라고 부릅니다. 스승의 몽둥이와 함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마음을 곧장 가리키는 임제만의 방식이 된 거죠.

임제가 남긴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인 한마디가 있어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입니다. 무시무시하게 들리지만, 폭력을 부추기는 말이 전혀 아니에요.
좋아하는 가수의 포스터를 방에 잔뜩 붙여 두고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목소리는 잃어버리고 흉내만 남을 때가 있죠. 임제가 말한 '죽이라'는 건 바로 이 흉내를 끊으라는 뜻이에요. 부처라는 멋진 이름, 위대한 스승이라는 권위에 절하며 매달리는 한, 우리는 영원히 남의 그림자만 좇게 됩니다. 깨달음은 저 멀리 거룩한 부처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밥 먹고 길 걷는 평범한 내 안에 이미 있다는 거예요. 임제는 이렇게 아무 꾸밈없는 본래의 사람을 '차별 없는 참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대단한 누군가가 따로 되려 애쓰지 말고,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믿으라는 말이었죠.

임제는 만년에 임제원이라는 작은 절에 머물렀어요. 그의 이름 '임제'도 이 절 이름에서 왔습니다. 그곳에서 고함을 지르고 몽둥이를 들며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 파격적인 방식에 반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임제종의 탄생이에요.
임제종은 훗날 중국 선불교의 여러 갈래 가운데 가장 큰 줄기로 자라났어요. 제자들이 임제의 말과 가르침을 모아 '임제록'이라는 책으로 엮었고, 이 가르침은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전해져 그곳에서도 큰 흐름이 됩니다. 깨달음을 책 밖으로, 말 밖으로 끌어내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온 한 사람의 고집이, 천 년 넘게 이어지는 학파의 출발점이 된 거죠.

임제 의현은 깨달음이란 수영처럼 글로는 전할 수 없고 직접 부딪쳐 몸으로 알아야 한다고 믿은 스님이었어요. 그래서 설명 대신 고함과 몽둥이로 제자의 생각을 끊어, 스스로 깨치도록 밀어붙였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은 남을 흉내 내지 말고 지금 그대로의 나를 믿으라는 뜻이었고요. 이 별난 방식에 사람들이 모여 임제종이 태어났고, 그 흐름은 일본까지 건너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고 밥 먹고 걷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그의 말은, 천 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여전히 한 번쯤 멈춰 서게 만드는 외침으로 남아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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