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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고대 인도를 한번 상상해 볼게요. 그때는 큰 도시 사이로 길을 떠도는 사상가들이 아주 많았어요. 이들을 '사문'이라고 불렀는데, 집과 재산을 버리고 떠돌며 "세상은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같은 큰 질문을 던지던 사람들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정해진 교과서 하나 없이, 저마다 다른 답을 들고 시장 한복판에 모여 토론하던 분위기였어요. 누구는 영혼이 있다 하고, 누구는 없다 하고, 누구는 다음 생이 있다 하고요. 바로 그 시끌벅적한 광장 한구석에, 머리카락으로 짠 담요를 두른 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아지타 케사캄발리'예요.

'케사캄발리'라는 말은 '머리카락 담요'라는 뜻이에요. 진짜로 사람 머리카락을 엮어 만든 담요를 입고 다녔거든요. 머리카락으로 만든 옷은 여름엔 푹푹 찌고 겨울엔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입은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옷으로 꼽혔대요. 일부러 가장 불편한 걸 걸치고 몸의 욕심을 끊어 보려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의 이름은 거창한 본명이라기보다, "아, 그 머리카락 담요 두른 아지타?" 하고 사람들이 알아보던 별명에 가까웠어요. 이름만 들어도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림이 그려지죠.

그의 생각은 뜻밖에 단순했어요. 사람을 모래성에 한번 빗대 볼게요. 모래성은 아무리 멋져 보여도 결국 모래알이 잠깐 모여 있는 거잖아요. 파도가 한 번 치면 다시 흩어진 모래로 돌아가고요. 아지타는 사람도 똑같다고 봤어요. 우리 몸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 이 네 가지가 잠깐 모인 것이고, 죽으면 흙은 흙으로 물은 물로 다시 흩어진다는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 같은 건 따로 없다고요. 이렇게 세상과 사람을 눈에 보이는 물질만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을 '유물론'이라고 불러요. 손에 잡히지 않는 건 믿지 않겠다는 태도예요.

여기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몸이 흩어지면 그걸로 정말 끝이라는 거예요. 다음 생도 없고, 죽은 뒤에 받는 상도 벌도 없다고 봤어요. 이렇게 "죽으면 완전히 사라진다"는 생각을 '단멸론'이라고 해요. 끊어질 단, 사라질 멸, 말 그대로 뚝 끊겨 사라진다는 뜻이에요. 당시 인도에서는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 복을 받고, 제사를 잘 지내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믿음이 아주 흔했어요. 아지타는 거기에 대고 "그런 보상은 없다"고 말한 거예요. 똑똑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죽으면 똑같이 흩어질 뿐이라고요. 듣는 사람 입장에선 꽤 서늘한 말이었겠죠.

그의 주장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불교 경전은 그의 말을 "이런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다"는 예로 소개해요. 같은 시대를 살던 붓다도, 다른 사문들도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놨고, 아지타의 생각은 그중에서도 가장 한쪽 끝에 놓인 답이었어요. 후대에 인도에서 이어진 유물론의 흐름이 그를 먼 선배 격으로 꼽기도 하고요.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아지타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 시대 인도가 한 가지 정답만 외우던 곳이 아니라 "죽으면 끝"이라는 과감한 말까지 광장에 나올 만큼 토론이 활발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는 사문 전통이라는 넓은 토론 지형에서 가장 끝자리를 맡아, 나머지 생각들이 어디쯤 서 있는지 가늠하게 해 주는 기준점 같은 사람이었어요.

아지타 케사캄발리는 약 2500년 전 인도에서, 사람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이 잠깐 모인 것이고 죽으면 흩어져 그것으로 끝난다고 본 유물론과 단멸론의 대표 사상가예요. 그의 말이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과감한 주장이 오갔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대 사문들의 토론이 얼마나 넓고 치열했는지 보여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기억해요. 머리카락 담요를 두른 한 사람의 극단이, 나머지 생각들의 자리를 비춰 주는 거울이 되어 준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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