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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영을 배운다고 생각해 볼게요. 한 친구는 "일단 물에 풍덩 뛰어들어서 몸으로 느껴 봐, 그럼 알게 돼"라고 해요. 또 다른 친구는 "무슨 소리야, 먼저 책을 펴고 팔은 어떻게 젓고 다리는 어떻게 차는지 읽어야지"라고 하고요. 둘 다 수영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은데, 가는 길이 정반대예요. 그리고 둘은 만날 때마다 "네 방법은 틀렸어"라며 티격태격하죠.
먼 옛날 중국 불교 안에도 꼭 이런 두 무리가 있었어요. 한쪽은 두꺼운 책 대신 조용히 앉아 자기 마음을 곧장 들여다보며 깨치자고 했어요. 이걸 '선'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아는 참선이 바로 이거예요. 다른 한쪽은 부처님 말씀이 적힌 경전을 한 글자 한 글자 공부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건 '교', 곧 가르침이라는 뜻이에요. 두 무리는 서로 "너희는 진짜 중요한 걸 놓쳤다"며 사이가 영 좋지 않았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다툼을 가만히 지켜보다 뜻밖의 답을 내놓은 사람이에요.

주인공은 규봉 종밀이라는 스님이에요. 780년에 태어나 841년까지, 예순 살 남짓 살았던 당나라 사람이에요.
종밀은 처음부터 스님은 아니었어요. 젊을 때는 공자의 가르침, 그러니까 유학을 공부하던 평범한 선비 지망생이었어요. 시험을 보고 벼슬길에 나가려던 보통 청년이었죠. 그러다 스물일곱 살 무렵, 우연히 한 선 스승을 만나요. 그 자리에서 마음이 크게 흔들린 종밀은 그길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됩니다.
여기서 기억해 둘 게 있어요. 종밀은 원래 '몸으로 느끼는' 선 쪽 사람으로 출발했다는 거예요. 조용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는 길, 책보다 직접 경험을 앞세우는 그 길에서 첫발을 뗐던 거죠. 그러니 다음 이야기가 더 놀라워요.

스님이 된 종밀에게 인생을 바꾼 순간이 찾아와요. 어느 날 그는 '화엄경'이라는 아주 방대한 경전을 풀이한 해설서를 손에 넣어요. 화엄경은 불교 경전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길고 어려운 책이에요. 그걸 당대 최고로 이름났던 학승 징관이라는 스님이 알기 쉽게 풀어 놓은 책이었죠.
종밀은 이 책을 읽다가 그만 푹 빠져 버려요. 밤낮으로 읽고 또 읽었고,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전해져요.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에요. 마음으로만 곧장 깨치면 된다고 여기던 선 쪽 사람이, 글로 빼곡히 적힌 가르침 앞에서 무릎을 친 거니까요. 마치 "책은 필요 없어, 몸으로 느껴"라던 수영 친구가, 어느 날 수영 교본을 읽고 "와, 이게 답이었네" 하고 감탄한 셈이죠.
종밀은 망설이지 않았어요. 곧장 징관에게 편지를 보내 제자가 되기를 청하고, 먼 길을 걸어 찾아가 그의 가르침을 직접 받아요. 그리고 훗날 화엄의 가르침을 잇는 다섯 번째 큰 스승으로 꼽히게 됩니다. 선에서 출발한 사람이 화엄의 기둥이 된 거예요.

그렇다면 종밀을 이토록 사로잡은 화엄 사상이란 대체 뭘까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래요. "세상 모든 것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를 비추며 하나로 이어져 있다."
화엄에는 이걸 보여 주는 유명한 비유가 있어요. 하늘 끝까지 펼쳐진 거대한 그물을 떠올려 보세요. 그물의 매듭마다 작고 투명한 구슬이 하나씩 달려 있어요. 그런데 이 구슬 하나하나가 자기 둘레의 다른 모든 구슬을 제 안에 비춰요. 구슬 하나만 가만히 들여다봐도 그 안에 온 세상이 다 비쳐 들어와 있는 거예요. 아주 작은 것 하나에 전체가 담기고, 그 전체는 다시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생각이죠.
이 그림으로 세상을 보면 달라지는 게 있어요. '마음'과 '세상', '나'와 '남'이 따로 노는 남남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 하나의 커다란 그물로 연결돼 서로를 비추고 있으니까요. 아마 종밀은 바로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토록 다투던 선과 교도, 사실은 따로 떨어진 둘이 아니지 않을까 하고요.

여기서 종밀의 가장 큰 생각이 나와요. 그는 선과 교가 서로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봤어요. 둘은 그저 같은 산꼭대기에 오르는 두 갈래 등산로일 뿐이라는 거죠.
마음을 곧장 들여다보는 선은, 자칫 길을 잃으면 자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엉뚱한 데로 흘러갈 수 있어요. 그럴 때 경전이라는 잘 그려진 지도가 길을 바로잡아 줘요. 반대로 글공부만 파고드는 교는, 머리로만 알고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박제된 죽은 지식이 되기 쉬워요. 그럴 때 참선이 그 지식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어 주죠. 둘은 서로의 약한 곳을 채워 주는 짝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종밀은 "선이 곧 가르침이고, 가르침이 곧 선"이라며 둘을 한 몸으로 묶으려 했어요. 이 생각을 '교선일치'라고 불러요. 가르침과 참선이 하나로 만난다는 뜻이에요. 그는 평생에 걸쳐 선과 교를 나란히 견주고 정리한 책을 남겨서, 뒷사람들이 두 길을 두고 다투는 대신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든든한 다리를 놓아 주었어요.

종밀은 본래 마음으로 깨치는 선 쪽 사람이었지만, 화엄경 해설서 한 권을 만나 글로 된 가르침의 힘에 새롭게 눈을 떴어요. 화엄이 보여 준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그림은, 선과 교마저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고요. 그래서 종밀을 기억할 때는 이렇게 묶어 두면 좋아요. 그는 서로 등을 돌리고 있던 두 길을, 결국 같은 곳으로 가는 하나의 길로 이어 준 사람이라고요. 무언가를 제대로 알려면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과 글로 차근차근 배우는 것이 둘 다 필요하다는 오래된 지혜를, 그가 자기 삶으로 보여 준 셈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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