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거절당한 논문이 고전이 된 이야기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이 1952년에 낸 책이에요. 식민 지배를 받은 흑인이 백인처럼 말하고 생각하려 애쓰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마음의 상처를, 개인의 성격 탓이 아니라 식민주의가 만들어 낸 병으로 분석했어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무슨 뜻일까
전학 첫날 사투리를 감추려고 표준어를 연습해 본 적 있나요?
여기까지는 흔한 일이에요.
그런데 말투를 아무리 고쳐도 아이들이 나를 계속 '굴러온 애'로만 본다면, 그리고 그게 몇 년씩 이어진다면, 어느 순간 원래의 나를 부끄러워하게 될지도 몰라요.
파농이 말한 '하얀 가면'이 그거예요.
프랑스 식민지에서 자란 흑인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프랑스식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요.
그렇게 하면 프랑스 사람으로 대접받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가면은 얼굴에 눌어붙고, 가면 아래 얼굴은 점점 미워져요.
파농은 이 상태를 '소외',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 상태라고 불렀어요.
이 책은 정신분석과 현상학, 실존주의, 네그리튀드 이론까지 끌어와 그 마음을 파헤치는데, 사례로는 파농 자신이 겪은 일을 그대로 써요.
거절당한 박사논문이 책이 되기까지
프란츠 파농은 1925년 7월 20일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섬 포르드프랑스에서 태어났어요.
8남매 중 다섯째였고 아버지는 세관원이었어요.
명문고 리세 셀셰르에서 시인 에메 세제르에게 배웠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자유프랑스군에 자원해 1944년 8월 프로방스 상륙작전에 참여했다가 포탄 파편에 다쳐 두 달간 입원했어요.
전쟁십자훈장도 받았고요.
프랑스를 위해 피를 흘린 청년이 정작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피부색으로 먼저 분류돼요.
이 어긋남이 그의 평생 질문이 됐어요.
전쟁이 끝나고 리옹대학에서 의학과 정신의학을 공부해 1951년 의사 자격을 땄어요.
생 알방 병원에서는 급진적인 정신의학자 프랑수아 토스켈 밑에서 사회요법을 배웠고요.
같은 해 리옹대학에 낸 박사논문의 원래 제목은 '흑인의 탈소외에 관한 시론'이었는데, 지도교수단이 이 원고를 거절했어요.
파농은 대신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이라는 신경 질환의 정신과적 문제를 다룬 기술적인 논문으로 학위를 받아요.
그리고 거절당한 그 원고가 이듬해인 1952년 파리 쇠유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왔어요.
그게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에요.
기차에서 아이가 외친 한마디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5장에 나와요.
기차 안에서 백인 아이가 파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에게 외쳐요.
"엄마, 저기 좀 봐!"
이때 아이가 쓴 프랑스어 단어는 흑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었어요.
아이는 그 말을 반복하고, 반복할수록 점점 더 무서워해요.
길을 걷는데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저기 괴물!" 하고 소리치고, 그 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 나는 이름도 사연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무서워하는 덩어리가 돼요.
파농은 이 짧은 장면에서 백인의 시선이 흑인을 사람에서 사물로, 사물에서 괴물로 바꿔 놓는 과정을 읽어냈어요.
몸이 내 것이 아니라 남이 붙여 놓은 이름표가 되는 거예요.
덧붙이면 이 5장 제목은 번역본마다 달라요.
1967년 마크만의 영어 번역본은 '흑인성이라는 사실'로 옮겼고, 2008년 필콕스의 번역본은 '흑인 남성의 체험된 경험'으로 고쳤어요.
원제에 담긴 '겪어 낸 경험'이라는 뜻이 앞 번역에서 빠졌다는 비판이 있었거든요.
표피화,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해도
파농이 만든 말 중에 '표피화'가 있어요.
표피는 피부의 가장 바깥층이에요.
사회가 만든 차별이 사람 피부 겉면에 눌어붙어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도 전에 피부부터 읽힌다는 뜻이에요.
성적표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기회 자체가 오지 않아요.
그래서 파농은 말해요.
프랑스어를 아무리 완벽하게 구사해도, 피부색이라는 표지가 백인 사회에 동등하게 끼는 길을 근본에서 막는다고요.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파농은 사르트르가 쓴 반유대주의 분석을 참고하면서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어요.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우월할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나오고, 반흑인 인종주의는 흑인이 열등하다는 경멸에서 나온다고 봤거든요.
같은 차별처럼 보여도 작동하는 방향이 반대라는 거예요.
인정받으려 애쓸수록 왜 힘들어질까
3장에서 파농은 르네 마랑의 자전 소설 속 인물 장 브뇌즈를 분석해요.
백인 여성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어떻게 자기를 부정하는 병으로 굴러가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에요.
여기서 하나 주의할 게 있어요.
이건 파농 본인의 고백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을 놓고 하는 비평이에요.
7장에서는 헤겔의 인정 개념을 다뤄요.
주인이 노예에게 던져 주는 인정은 진짜 인정이 아니에요.
상을 주는 사람이 언제든 도로 뺏을 수 있으니까요.
파농은 식민자가 베푸는 인정을 받아 챙기는 대신, 그 관계의 형식 자체를 부수고 다른 방식의 인정을 찾자고 말해요.
그가 쓴 '비존재의 지대'라는 말도 그래서 이중적이에요.
반흑인 세계에서 흑인이 밀려나 있는 밑바닥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없으니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거든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과 헷갈리는 지점
파농이 살아서 낸 책은 두 권뿐이에요.
1952년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과 1961년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에요.
『아프리카 혁명을 향하여』나 『알제리 혁명의 5년차』는 세상을 떠난 뒤 엮인 논집이고요.
이 두 권을 뭉뚱그리는 오해가 흔해서 표로 정리해 둘게요.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1952) |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1961) | |
|---|---|---|
| 다루는 층위 | 한 사람의 마음속 소외 | 식민지 해방 투쟁의 정치 |
| 주된 도구 | 정신분석, 현상학, 자기 체험 서술 | 혁명 전략과 폭력 문제 |
| 흔한 오해 | 여기에 폭력론이 있다고 여기는 것 | 여기 논의를 1952년 책에 겹쳐 읽는 것 |
네그리튀드 운동을 두고 파농이 보인 태도도 한쪽으로만 요약하면 틀려요.
흑인다움을 본질로 못 박는 존재론은 비판했지만, 그 운동이 흑인들의 자기 감정을 실제로 바꿔 놓은 힘은 인정했거든요.
파농은 그 뒤 어떻게 살았을까
1953년 파농은 알제리 블리다주앵빌 정신병원의 정신과장이 됐어요.
프랑스 지배 아래 있던 알제리에서 그는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진료하게 돼요.
1956년 11월 사직서를 내고 튀니스로 옮겨 알제리민족해방전선에 공식 합류했어요.
기관지 『엘 무자히드』 편집에 참여했고, 알제리 임시정부의 가나 주재 대사로도 일했어요.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에도 알제리와 튀니지 국경 가르디마오에서 해방군 장교들에게 강의를 계속했어요.
1961년 12월 6일 치료를 위해 옮겨 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국립보건원 임상센터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백혈병은 기저 질환이었고 직접적인 사인은 투병 중 생긴 폐렴이었어요.
서른여섯이었어요.
튀니지에서 영결식을 치른 뒤 알제리 아인 케르마의 순국자 묘지에 묻혔어요.
정리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거절당한 박사논문에서 출발한 책이에요.
파농은 여기서 세 가지를 말해요.
첫째, 식민지에서 자란 사람이 지배자를 닮으려 애쓰다 자기를 미워하게 되는 건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병이에요.
둘째, 표피화 때문에 말과 실력으로는 그 벽을 넘을 수 없어요.
셋째, 남이 던져 주는 인정을 받아 챙기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고 관계의 형식이 바뀌어야 해요.
루이스 고든은 이 책을 실존주의로 읽고 호미 바바는 탈구조주의로 읽어요.
정신분석으로 읽는 사람도, 마르크스주의로 읽는 사람도 있고요.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어요.
파농은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닫았어요.
"오, 나의 몸이여, 나를 언제나 질문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다오!"
답을 쥐여 주는 문장이 아니에요.
기차에서 손가락질당한 그 몸으로, 계속 묻겠다는 말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