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머스 범심론, 전자에도 아주 작은 마음이 있다는 생각
차머스는 물질에서 어떻게 느낌이 생기는지 설명이 자꾸 막히자, 아주 작은 마음 비슷한 성질이 물질의 밑바닥에 처음부터 있었을지 모른다는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다만 그 자신은 이 생각이 맞다고도, 틀렸다고도 확신하지 않아요.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 뭐가 다를까
데이비드 차머스는 1966년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나 애들레이드에서 자랐어요.
대학에서는 순수수학을 공부하다가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지도로 철학과 인지과학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1993년의 일이에요.
그리고 이듬해인 1994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열린 학회에서 짧은 말 두 마디를 꺼냈어요.
의식의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요.
쉬운 문제는 뇌가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묻는 거예요.
빨간 사과를 보면 눈에서 뇌로 신호가 가고, 뇌가 그걸 구분하고, 입이 "빨갛다"고 말하죠.
이건 어렵긴 해도 언젠가 과학이 풀 수 있는 종류예요.
차머스도 세부 사항을 다 밝히려면 한두 세기의 힘든 연구가 필요할 거라고 했으니, 쉽다는 말이 이미 다 풀렸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려운 문제는 다른 질문이에요.
그 모든 처리가 일어나는 동안, 왜 안쪽에서 무언가가 느껴지느냐는 거죠.
신호만 오가면 될 텐데 왜 빨강이 빨갛게 보일까요.
차머스는 1995년 논문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의식적 경험보다 우리가 더 친밀하게 아는 것은 없지만, 그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이 논문을 쓸 때 그는 애리조나 대학교에 있었고, 지금은 뉴욕대학교 교수예요.
좀비 이야기는 왜 나올까
차머스가 널리 퍼뜨린 사고실험이 하나 있어요.
철학적 좀비예요.
영화에 나오는 그 좀비가 아니라, 나와 원자 하나까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아, 이 커피 맛있다"고 말하는데, 안쪽은 완전히 깜깜한 존재예요.
아무 느낌도 없는 거죠.
중요한 건 이런 존재가 실제로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차머스도 좀비가 진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어요.
그가 묻는 건 이거예요.
이런 존재를 모순 없이 상상할 수 있나요?
상상이 된다면, 물질에 대한 사실을 아무리 빠짐없이 모아도 느낌이 있다는 사실은 거기서 저절로 따라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돼요.
조립 설명서를 끝까지 읽어도 왜 불이 켜지는지는 안 적혀 있는 셈이죠.
범심론은 어떤 생각일까
여기서 막다른 길이 생겨요.
마음이 물질이 하는 일이라고 하면 느낌을 설명 못 하고, 마음이 물질과 아주 별개라고 하면 그럼 둘이 어떻게 붙어 있느냐가 문제가 돼요.
차머스는 이 교착 상태를 정반합의 모양으로 정리하고 자기 논증에 헤겔식 논증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 입장 | 핵심 주장 | 밀어주는 근거 |
|---|---|---|
| 유물론 (정) | 마음은 물질이 하는 일이다 | 인과 논증 |
| 이원론 (반) | 마음은 물질과 별개다 | 좀비 논증 |
| 범심론 (합) | 물질의 밑바닥에 마음 비슷한 성질이 있다 | 앞의 두 근거를 모두 살림 |
범심론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모든 것에 마음이 있다"는 학설이에요.
그런데 차머스가 다루는 뜻은 훨씬 조심스러워요.
근본적인 물리적 존재들 가운데 일부가 아주 원시적인 심적 상태를 가진다는 정도죠.
전자가 생각을 하거나 기분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케이크가 달다고 해서 밀가루 한 알이 단맛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설탕에는 단맛의 재료가 들어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느낌의 재료가 아주 밑바닥에 이미 깔려 있을지 모른다는 발상이에요.
러셀의 힌트, 물리학이 말하지 않는 것
차머스가 가장 유력하게 보는 형태는 러셀식 범심론이에요.
버트런드 러셀은 물리학이 물질에 대해 알려주는 게 관계와 구조뿐이라는 점을 지적했어요.
질량이 뭐냐고 물으면 다른 것을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로 답하고, 전하가 뭐냐고 물으면 또 다른 것과 어떻게 밀고 당기는지로 답해요.
사전에서 단어를 찾았는데 뜻풀이가 전부 또 다른 단어들뿐인 것과 비슷하죠.
러셀은 이런 그림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의 빨랫감일 뿐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그 관계들을 떠받치는 속살, 그러니까 물질의 내재적 본성은 비어 있는 칸으로 남아요.
범심론은 그 빈칸에 경험의 아주 작은 조각을 넣어보자고 제안해요.
설명이 막히던 자리와 설명이 비어 있던 자리를 서로 끼워 맞춰보는 셈이에요.
왜 차머스는 확신하지 않을까
여기서 제일 오해받는 대목이 나와요.
차머스는 범심론 신봉자가 아니에요.
그는 2013년에 예정된 애머스트 철학 강연 원고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나로서는 범심론이 참이라고 전혀 확신하지 않지만, 참이 아니라고도 확신하지 않는다."
이 원고가 범심론을 믿을 최선의 이유를 모아둔 글이라면, 자매 논문에서는 믿지 않을 최선의 이유를 모았다고 스스로 밝혔고요.
그 최선의 이유가 결합 문제예요.
아주 작은 경험들이 있다 치고, 그것들이 어떻게 합쳐져서 지금 이 글을 읽는 하나의 나가 되느냐는 거죠.
차머스는 2016년에 이 문제를 주체가 합쳐지는 문제, 감각의 질이 합쳐지는 문제, 구조가 합쳐지는 문제, 이렇게 셋으로 나눴어요.
부분마다 의식이 있는데 전체에는 의식이 없는 존재도 모순 없이 상상되는 것 같다고 그는 지적해요.
근본 실재가 의식 자체는 아니고 의식이 될 수 있는 성질만 가진다고 보는 판프로토사이키즘이 대안으로 나오지만, 여기에도 그는 그때그때 둘러대는 답 같다며 거리를 둬요.
원래 이 이론을 매력 있게 만들었던 단순함을 잃는다는 이유예요.
답이 얼마나 먼지는 내기 하나가 보여줘요.
1998년 차머스는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와 2023년까지 의식에 대응하는 뇌 활동이 밝혀질지를 두고 내기를 걸었어요.
25년 뒤인 2023년 학회에서 코흐가 패배를 인정하고 샴페인을 건넸어요.
문제는 아직 열려 있어요.
그 사이 차머스는 대형언어모델을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인공지능 시스템 중 하나로 꼽으면서, 앞으로 십 년쯤 뒤에는 이런 계열이 의식의 후보로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놨어요.
정리
차머스의 범심론은 결론이 아니라 막다른 길에서 나온 제안이에요.
뇌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과학이 언젠가 다 밝힐 수 있지만, 그 일이 벌어지는 동안 왜 무언가가 느껴지는지는 그 방법으로 잡히지 않아요.
물질만으로 설명하려니 느낌이 빠지고, 마음을 따로 떼어놓으려니 연결이 끊겨요.
그래서 물질의 밑바닥에 느낌의 씨앗을 놓아보는 세 번째 길이 열려요.
그 길에도 결합 문제라는 큰 구멍이 있고, 차머스 본인이 그 구멍을 제일 크게 그려 보여요.
이상한 생각을 믿는 철학자가 아니라, 이상해 보이는 선택지까지 남겨두고 각각이 치러야 할 대가를 정직하게 따져보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이 하필 가장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은, 지금도 그대로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