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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탈창조는 자기를 부수는 일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내가 세상의 한가운데라고 여겨온 자리를 비우는 일이에요. 시몬 베유는 그렇게 자리를 비우는 것이 곧 사랑이라고 봤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머릿속에 지도를 한 장씩 들고 다녀요. 그 지도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내가 있습니다. 친구가 인사를 안 받아주면 "쟤가 나한테 왜 저러지"부터 떠오르는 게 그 지도 때문이에요. 그 친구는 그냥 배가 아팠을 뿐인데도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가 말한 탈창조(décréation)는 이 지도를 찢어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한가운데를 비우는 일이에요. 베유는 『신을 기다리며』에서 탈창조를 "자신의 거짓된 신성을 비우고, 자신을 부정하고, 상상 속에서 세계의 중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풀었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썼습니다. 내가 한가운데서 한 발 물러나야 앞에 있는 사람이 제 크기대로 보인다는 뜻이에요.
베유는 1909년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1943년 잉글랜드 켄트에서 서른네 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1928년 파리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에서 1등을 했는데, 그때 2등이 시몬 드 보부아르였습니다. 오빠 앙드레 베유는 부르바키 그룹에서 활동한 수학자였고요. 머리 좋은 집안의 최우등생이었던 셈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은 책상 앞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1934년부터 1935년까지 약 24주 동안 파리의 공장에 미숙련 여성 노동자로 자원해 들어가 일했어요. 여기서 그가 발견한 건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아니라 굴욕감이었습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때 사람 안에서 무언가가 꺼진다는 것을 몸으로 겪은 거예요. 이 경험은 사후에 나온 공장 일지에 남아 있습니다.
1933년경에는 망명 중이던 트로츠키가 가족과 함께 베유 부모의 아파트에 머물렀는데, 두 사람은 크게 다퉜고 트로츠키는 그를 "우울한 혁명가"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1938년 부활절 성주간, 솔렘 수도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으며 조지 허버트의 시 「사랑」을 외우다가 그리스도가 내려와 자기를 사로잡았다고 스스로 기록한 체험을 합니다. 공장의 굴욕과 수도원의 체험, 이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탈창조가 나왔어요.
여기서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결국 자기를 없애라는 말 아니냐"는 거예요. 베유 본인이 이 오해를 딱 잘라 막아뒀습니다. 『중력과 은총』에서 그는 이렇게 갈라놓아요.
| 탈창조 | 파괴 | |
|---|---|---|
| 하는 일 | 창조된 것을 비창조 상태로 넘김 | 창조된 것을 무로 넘김 |
| 남는 것 | 자기 중심만 빠지고 존재는 남음 | 아무것도 남지 않음 |
| 비유 | 사진 한가운데서 옆으로 비켜서기 | 사진을 찢어버리기 |
비켜서는 사람은 여전히 사진 안에 있어요. 찢는 사람은 사진을 없애버리고요. 겉보기에는 둘 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게 되는 일"처럼 보이지만,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베유의 우주에는 두 가지 힘이 있어요. 중력(pesanteur)은 모든 것을 아래로, 신에게서 멀어지는 쪽으로 끌어당기는 자연의 힘입니다. 물건이 떨어지듯 마음도 자동으로 자기 이익 쪽으로 떨어져요. 은총(grâce)은 그 반대 방향에서 오는 힘이고요. 탈창조는 중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은총이 들어올 틈을 남겨두는 상태예요.
왜 자리를 비우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베유는 신이 세상을 만든 행위 자체를 자기 축소로 봤어요. 우주가 존재할 수 있도록 신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거예요.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 벽 쪽으로 붙어 서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공간을 만드는 장면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러니 사람이 자기 중심에서 물러나는 것은 그 물러남을 따라 하는 일이 되는 거예요.
탈창조는 눈 감고 명상하는 일이 아니에요. 베유에게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능력, 곧 주의(attention)로 나타납니다. 그는 주의를 "우리의 생각을 중단시키고 그것을 분리되고 비어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친구가 힘든 이야기를 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은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 무슨 말을 해줄지 고르고 있어요. 그건 여전히 내가 한가운데 있는 상태예요. 머릿속을 비우고 상대의 말이 있는 그대로 들어오게 두는 것, 베유는 그게 진짜 주의라고 봤습니다. "주의는 가장 드물고 가장 순수한 형태의 너그러움"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그의 것인데, 흔히 『중력과 은총』의 구절로 인용되지만 원래는 1942년 시인 조에 부스케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 말이에요.
베유는 가톨릭에 깊이 끌렸지만 끝내 세례를 받지 않고 죽었어요. 탈창조도 정통 교리를 그대로 옮긴 개념이 아닙니다. 그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비활동적 행동"이라는 생각을 얻었다고 노트에 적었고, 여기에 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신비주의가 뒤섞여 있어요.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아예 베유를 기독교 신학자보다 플라톤주의자로 다시 읽었습니다.
비판도 만만치 않아요. 아감벤이나 에스포지토 같은 학자들은 탈창조의 비인칭성을 현대 정치철학에 끌어다 쓰지만, 반대편에서는 자기를 지우라는 요구가 정치적으로 행동할 힘까지 지워버린다고 지적합니다. 페미니즘 쪽에서는 더 날카로운 질문이 나와요. 이미 목소리를 빼앗겨온 여성에게 "자아를 비우라"는 말이 무슨 뜻이 되겠느냐는 거죠.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도 조심스러워요. 검시관은 정신적 균형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식사를 거부해 스스로 죽었다고 판정했지만, 폐결핵 때문에 먹기 어려웠던 사정과 배급량 이상으로 먹지 않으려 했던 윤리적 태도가 겹쳐 있다는 재해석이 유력합니다. 굶어 죽은 성녀 이야기로 정리해버리면 정작 그가 쓴 것을 놓치게 돼요.
탈창조는 자기를 없애라는 명령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한가운데라고 믿는 착각에서 내려오라는 제안이에요. 베유는 파괴와 탈창조를 분명히 갈랐고, 그 차이가 이 개념의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무로 사라지는 것과, 자리만 비켜주고 그대로 있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가 남긴 실천은 거창하지 않아요.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내 대답을 준비하지 않은 채 끝까지 듣는 것, 베유는 그것을 가장 드문 너그러움이라고 불렀습니다. 생전에 그의 책은 한 권도 출판되지 않았고, 『중력과 은총』도 『뿌리내림』도 모두 그가 죽은 뒤에야 나왔습니다. 자기 이름을 한가운데 놓지 않은 사람의 글이, 그렇게 뒤늦게 남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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