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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에서 423년 사이에 아테네에서 태어나 기원전 348년 또는 347년에 세상을 떠난 고대 그리스 철학자예요. 감각으로 파악되는 변화하는 물질 세계 너머에, 이성으로만 파악되는 불변의 형상(이데아)이 따로 있다고 주장했어요. 기원전 383년경 아테네 근교에 아카데메이아를 세웠고, 이 학원은 기원후 529년까지 이어졌습니다.
| 항목 | 내용 |
|---|---|
| 생몰 | 기원전 428~423년경 출생(학계 추정), 기원전 348/347년 사망 |
| 출신 | 아테네 귀족 가문. 어머니 페릭티오네를 통해 정치가 솔론의 후손 |
| 형제 | 글라우콘, 아데이만토스, 여동생 포토네, 이복형제 안티폰 |
| 활동지 | 아테네, 메가라, 시라쿠사 |
| 세운 학원 | 아카데메이아(기원전 383년경 설립, 기원후 529년까지 존속) |
| 대표 저작 | 국가, 파이돈, 향연, 메논, 파이드로스, 티마이오스, 법률, 에우튀프론 |
| 핵심 개념 | 형상(이데아) 이론, 영혼 삼분설, 철인정치, 상기설, 미메시스 |
| 1차 자료 문제 | 전통적으로 귀속된 대화편 35편과 서한 13편 중 일부는 위작 의심. 편지는 일곱 번째 편지만 진작 가능성이 있음 |
| 후계 |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학원장 승계 |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에서 423년 사이에 태어나 기원전 348년 또는 347년에 사망한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예요. 출생 연도가 범위로 적히는 건 확정된 기록이 없어서 학계가 추정하기 때문이에요.
플라톤의 집안은 아테네 귀족 가문이었어요. 어머니 페릭티오네를 통해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놓은 정치가 솔론의 후손이었고, 형제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있었습니다. 이 두 형제는 훗날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에 등장인물로 나와요. 여동생 포토네와 이복형제 안티폰도 있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플라톤은 기원전 348년 또는 347년에 세상을 떠나 아카데메이아 안 자신의 정원에 묻혔어요. 학원장 자리는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이었고, 죽을 무렵 플라톤은 자급자족은 했지만 부유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플라톤은 젊은 시절 시를 썼지만 소크라테스를 만난 뒤 자기 시를 불태우고 철학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고대 저술가들이 전해요. 디티람보스, 서정시, 비극 4부작 같은 작품을 썼다는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플라톤의 청년기는 정치적으로 험한 시기였어요.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이기고 나서 30인 참주정이 들어섰는데, 플라톤의 친척인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가 여기 포함되어 있었어요. 플라톤은 참여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고, 기원전 403년 민주정이 복원되는 과정의 무뉘키아 전투에서 두 친척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어요. 소크라테스는 아뉘토스에게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됐고, 이 일이 플라톤의 정계 진출 계획을 끝냈습니다. 이후 플라톤은 아테네에 3년쯤 더 머물며 헤라클레이토스 계열의 크라튈로스와 파르메니데스 계열의 헤르모게네스에게 배웠고, 기원전 396년경에는 메가라로 가 메가라 학파의 창시자 유클레이데스에게 배웠어요. 타렌툼의 아르퀴타스, 테아이테토스 등과는 수학을 함께 연구했습니다.
형상 이론은 존재를 두 종류로 나누는 주장이에요. 하나는 감각으로 파악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질 세계고, 다른 하나는 이성으로만 파악되는 불변하고 보이지 않는 형상의 세계입니다 (영어 위키백과).
감이 잘 안 잡히면 수학을 떠올리면 쉬워요. 플라톤이 형상의 예로 가장 자주 든 것 중 하나가 피타고라스 정리 같은 기하학의 진리였습니다. 종이에 그린 삼각형은 언젠가 찢어지고 색이 바래지만, 삼각형에 관한 기하학적 참은 그것 때문에 바뀌지 않아요.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리로 붙잡는 것이 서로 다른 층에 있다는 게 이 구분의 핵심입니다.
형상 이론이 처음 소개되는 곳은 대화편 파이돈이에요.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에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가장 유력한 대응으로 여겨지던 아낙사고라스의 다원론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다시 말해 형상 이론은 진공에서 나온 착상이 아니라, 변화를 강조한 쪽과 불변을 강조한 쪽 사이에서 어떻게 답할 것인가라는 당시의 논쟁 한복판에서 나온 대답이었어요.
상기설은 지식을 새로 얻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에 접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일로 보는 견해예요. 대화편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교육받지 못한 노예 소년에게서 기하학적 사실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이 견해를 예증합니다 (영어 위키백과).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형상 이론과 맞물리기 때문이에요. 배운 적 없는 사람에게서 기하학적 참을 끌어낼 수 있다면, 그 참은 감각 경험으로 주입된 것이 아니라 원래 영혼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플라톤의 영혼 삼분설은 영혼을 이성, 기개, 욕망 세 부분으로 나누는 주장이고, 국가 4권에 나옵니다. 티마이오스에서는 이 세 부분에 몸의 자리까지 배정해서, 이성은 머리에, 기개는 가슴 상부에, 욕망은 배꼽까지의 몸통 중간부에 있다고 설명해요 (영어 위키백과).
영혼 삼분설은 정치 구상과 그대로 짝을 이룹니다.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생산자, 수호자(전사), 통치자(철학자왕) 세 계급이 각각 욕망, 기개, 이성에 대응한다고 말해요. 개인의 영혼 구조와 도시의 계급 구조를 같은 틀로 읽는 셈입니다.
철인정치는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흔히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는 문구로 요약돼요 (위키백과).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회가 아리스토크라티아, 곧 최선자정에서 시작해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 순으로 타락해간다고 말합니다. 이 타락의 순서 끝에 참주정이 놓인다는 서술은, 30인 참주정과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겪은 사람의 이력과 떼어 읽기 어려워요.
다만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정치적 견해를 곧바로 플라톤 자신의 견해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견해가 대화편마다 다르고, 플라톤은 어느 대화편에서도 자기 목소리로 직접 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카데메이아는 플라톤이 기원전 383년경 헤카데모스의 신성한 올리브 숲 근처에 세운 학원이에요. 플라톤 자신이 젊은 시절 공부하던 바로 그 숲이었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아카데메이아를 거쳐 간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예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67년에 아카데메이아에 도착했는데, 이는 플라톤이 시라쿠사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어요. 플라톤이 죽은 뒤 학원장은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이었고, 아카데메이아 자체는 기원후 529년까지 존속했습니다 (위키백과).
플라톤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를 세 번 찾아갔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문은 참주를 철학으로 교육해 보려던 시도와 얽혀 있어요.
첫 방문은 플라톤이 마흔 살쯤이던 기원전 385년경이었어요. 이때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처남인 디온이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지만, 참주 본인은 플라톤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두 번째는 디오니시오스 1세가 죽은 기원전 367년으로, 디온의 요청을 받아 디오니시오스 2세를 철인왕으로 교육하려고 갔지만 결국 실패하고 아테네로 돌아왔어요. 세 번째는 기원전 361년인데, 디오니시오스가 그를 억류하는 바람에 친구 아르퀴타스에게 도움을 청해 풀려났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디온은 기원전 357년부터 354년까지 시라쿠사를 통치하다가 아테네인 칼립포스에게 자리를 빼앗겼어요. 일곱 번째 편지에서 플라톤은 칼립포스가 아카데메이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은 시가 진리에서 멀고 젊은이의 영혼에 나쁜 본을 준다고 보아, 국가에서 시를 검열하고 모방자를 도시 밖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국가 10권에서 소크라테스는 신이 만든 침대(형상), 장인이 만든 침대(개별 사물), 화가가 그린 침대(모방)라는 세 단계 구도를 제시합니다. 그림은 침대 자체가 아니라 침대의 겉모습을 모방한 것이므로, 모방자는 “왕과 진리로부터 세 번째”라고 불려요(597e). 흥미롭게도 이 표현은 국가 9권에서 참주의 쾌락을 과두정적 영혼의 쾌락에 대해 “세 번째 우상”이라 부른 대목(587c)과 같은 용어를 씁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
국가 398a에는 이 태도가 한 장면으로 압축되어 있어요.
“If a man were to arrive in the city whose wisdom [sophia] empowered him to become everything and to mimic all things... we would worship him as someone holy and wonderful and pleasant, but tell him there is no man like him in our city, nor by our traditional law can come to be here; and we would send him off to another city after pouring myrrh on his head and crowning him with wool.”
법률 719c에서는 시인이 무사 여신의 삼각의자에 앉으면 제정신이 아니라 샘물처럼 흐를 준비가 된 상태가 되고, 서로 대립하는 인물들을 만들어내느라 자주 자기모순에 빠지며 자기 말 중 무엇이 참인지 모른다고 말해요 (스탠퍼드 철학백과).
국가에서 검열의 표적이 된 건 특히 신들을 나쁘게 그리는 이야기였어요. 크로노스가 아버지를 거세하고 다시 제우스에게 전복당하는 식의 이야기를 젊은 수호자들에게 들려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377e–392c).
향연에서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하나의 대상에서 시작해 점점 넓어지는 상승 과정으로 그립니다. 소크라테스가 스승 디오티마의 가르침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영혼이 하나의 아름다운 육체에서 출발해 모든 아름다운 육체, 아름다운 영혼들, 법과 지식의 종류를 거쳐 마침내 미 자체에 이른다고 말해요(210a–211d) (스탠퍼드 철학백과).
자연 경관을 두고는 드문 대목이 하나 있어요. 파이드로스 230b에서 소크라테스가 어느 아름다운 쉴 곳(kalê katagôgê)을 묘사하는 장면인데, 고대 그리스 문헌 가운데 자연 경관을 아름답다고 부른 거의 유일한 현존 사례로 꼽힙니다.
플라톤에게 전통적으로 귀속되는 글은 대화편 35편과 서한 13편이지만, 현대 학계는 그중 일부의 진위를 의심해요. 알키비아데스 II, 에피노미스, 히파르코스, 미노스, 연인들, 테아게스 등이 특히 위작 의심을 받습니다 (영어 위키백과, 위키백과).
플라톤의 텍스트는 기원후 1세기 멘데스의 트라쉴로스가 편집한 형태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전해져요. 1578년 앙리 에티엔이 전집을 출판하면서 확립된 스테파누스 페이지 표기는 오늘날에도 플라톤 인용의 표준으로 쓰입니다.
대화편은 흔히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요.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같은 초기 대화편은 대개 결론 없이 아포리아로 끝나는 반면, 파이돈, 국가, 향연 같은 중기 대화편은 형상 이론 같은 적극적 견해를 담습니다. 초기 대화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물음이 에우튀프론 10a에 있어요.
“Is the pious (τὸ ὅσιον) loved by the gods because it is pious, or is it pious because it is loved by the gods?”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플라톤이 어떤 대화편에서도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법률을 빼면 모든 대화편에 소크라테스가 나옵니다.
플라톤은 서양 철학사에서 출발점으로 취급되는 인물이에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
한국어 위키백과는 이 말을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로 옮겨 소개해요.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다”라고 했습니다 (위키백과).
제도로 보면 영향은 더 길어요. 플라톤이 기원전 383년경 세운 아카데메이아는 기원후 529년까지, 그러니까 90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통념: 플라톤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였고 플라톤은 별명이다.
실제로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이야기일 뿐이에요. 아리스토클레스(Ἀριστοκλῆς)는 최고의 명성이라는 뜻이라고 전해지지만, 현대 학계는 이 설을 대체로 거짓으로 봅니다 (영어 위키백과).
통념: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이 곧 플라톤의 정치사상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어요. 견해가 대화편마다 다르고, 플라톤은 어느 대화편에서도 자기 목소리로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통념: 대화편의 초기·중기·후기 구분은 확정된 저술 순서다.
실제로는 학계의 관습적 분류일 뿐이에요. 최근 연구는 저술 순서를 정밀하게 확정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에 회의적입니다.
통념: 플라톤의 편지는 그의 삶을 알려주는 1차 자료다.
실제로는 13편 가운데 위작이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일곱 번째 편지뿐이에요. 나머지는 대부분 위작으로 여겨지므로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면 안 됩니다 (위키백과).
통념: 히피아스 마이어는 위작이다.
실제로는 오늘날 대다수 학자가 다시 플라톤의 저작으로 인정해요. 고대에는 플라톤의 것으로 여겨졌다가 19세기와 20세기에 위작 논쟁을 거쳤고, 지금은 진작 쪽으로 정리된 상태입니다. 오래된 위작설을 그대로 사실처럼 옮기지 않도록 조심할 대목이에요 (스탠퍼드 철학백과).
통념: 플라톤이 지식을 정당화된 참인 믿음으로 정의했다.
실제로는 그 소개가 절반만 맞아요. 테아이테토스에서 플라톤 자신이 그 정의가 순환적이라는 문제를 지적하며 결론에 이르지 못합니다.
통념: 플라톤의 모방론은 하나로 정리된 이론이다.
실제로는 국가 3권과 10권의 미메시스 개념이 서로 완전히 양립 가능한지가 플라톤 미학 연구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제로 남아 있어요. 하나의 통일된 모방론으로 단순화하면 안 됩니다.
통념: 플라톤은 시와 예술을 전면 부정했다.
실제로는 예외를 남겨두었어요. 신을 기리는 찬가나 영웅을 기리는 송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은 남겨두었으므로, 플라톤을 예술 전면 배격론자로 요약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플라톤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나요?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에서 423년 사이에 태어나 기원전 348년 또는 347년에 사망했어요. 출생 연도는 범위로만 알려진 학계 추정치입니다.
아카데메이아는 언제 세워졌고 얼마나 이어졌나요?
아카데메이아는 기원전 383년경 헤카데모스의 신성한 올리브 숲 근처에 세워졌고, 기원후 529년까지 존속했어요. 플라톤이 죽은 뒤에는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학원장을 이었습니다.
형상(이데아) 이론은 어느 대화편에 처음 나오나요?
형상 이론은 대화편 파이돈에서 처음 소개돼요.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당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유력한 대응이던 아낙사고라스의 다원론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만났나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67년에 아카데메이아에 도착했어요. 이는 플라톤이 시라쿠사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저작 중 진짜가 아닌 것도 있나요?
네. 전통적으로 귀속되는 대화편 35편과 서한 13편 중 알키비아데스 II, 에피노미스, 히파르코스, 미노스, 연인들, 테아게스 등이 위작 의심을 받아요. 편지는 일곱 번째 편지만 진작 가능성이 있습니다.
플라톤을 읽을 때 붙잡아둘 것은 세 가지예요. 첫째, 형상 이론은 변화하는 감각 세계와 불변하는 이성의 세계를 나누는 존재론이고, 영혼 삼분설과 세 계급의 국가 구상이 같은 틀 위에 얹혀 있습니다. 둘째, 이 사상은 30인 참주정과 소크라테스의 처형, 그리고 시라쿠사에서 세 번 되풀이된 좌절이라는 정치적 경험과 붙어 있어요. 셋째, 플라톤은 어느 대화편에서도 자기 목소리로 말하지 않으므로 등장인물 소크라테스의 말을 곧 저자의 결론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저작 문제도 함께 기억해두면 좋아요. 대화편 일부와 편지 대부분은 진위 논란이 있고, 초기·중기·후기 구분도 확정된 순서가 아니라 관습적 분류입니다. 화이트헤드가 유럽 철학 전통을 플라톤의 각주라고 불렀지만, 정작 그 각주가 무엇을 받아 적은 것인지는 지금도 계속 다시 읽히는 중이에요.

플라톤
Plato
기원전 428년
현실 너머에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본 사람.

소크라테스
Socrates
기원전 470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걸 안다, 질문으로 진리를 캐물은 철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기원전 384년
세상을 관찰하고 분류한, 거의 모든 학문의 출발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기원전 535년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기원전 515년
변화는 착각이고 진짜 존재는 하나이며 영원하다고 본 사람.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년
세계를 고정된 사물이 아닌 과정으로 본 철학자.

아낙사고라스
Anaxagoras
기원전 500년
만물에 씨앗이 섞여 있고 누스가 이끈다 본 사람.

디오게네스
Diogenes
기원전 412년
통 속에 살며 관습을 비웃은 견유학파의 기인.

플라톤
Plato
기원전 428년
현실 너머에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본 사람.

소크라테스
Socrates
기원전 470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걸 안다, 질문으로 진리를 캐물은 철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기원전 384년
세상을 관찰하고 분류한, 거의 모든 학문의 출발점.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기원전 535년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기원전 515년
변화는 착각이고 진짜 존재는 하나이며 영원하다고 본 사람.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년
세계를 고정된 사물이 아닌 과정으로 본 철학자.

아낙사고라스
Anaxagoras
기원전 500년
만물에 씨앗이 섞여 있고 누스가 이끈다 본 사람.

디오게네스
Diogenes
기원전 412년
통 속에 살며 관습을 비웃은 견유학파의 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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