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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프란츠 파농은 폭력을 예찬한 사람이 아니에요. 식민지라는 체제가 이미 폭력으로 세워졌고 폭력으로만 유지된다는 사실을, 정신과 의사로서 진단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말로 알고 있는 "유럽인 한 명을 쏘아 죽이는 것은 일석이조다"라는 문장은 파농이 아니라 서문을 쓴 사르트르가 썼어요.
프란츠 파농은 1925년 7월 20일 카리브해의 섬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어요.
직업은 철학자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1953년부터 알제리 블리다졸랭빌 정신병원의 과장으로 일했어요.
그가 매일 마주한 장면을 그려 보면 그의 생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어요.
그는 고문을 하고 온 프랑스 군인과 장교의 마음을 치료하면서, 같은 병원에서 고문을 당한 알제리 사람도 치료했어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복도를 쓴 거예요.
파농에게 식민지는 책 속 이론이 아니라 진료실에 실려 오는 증상이었습니다.
1954년 11월 알제리 독립전쟁이 터지고, 1955년 그는 민족해방전선(FLN)에 가담해요.
1957년 1월 알제리에서 추방된 뒤 튀니지로 옮겨 FLN 기관지 《알 무자히드》 편집을 맡고, 알제리 임시정부의 가나 주재 대사까지 지냅니다.
그러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1961년 12월 6일 미국 메릴랜드에서 세상을 떠나요.
대표작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 나온 바로 그해입니다.
파농은 식민지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식민 세계는 두 개로 잘린 세계다."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높은 담을 세운다고 생각해 볼게요.
담 이쪽에는 포장된 길과 밝은 조명, 튼튼한 집이 있어요.
담 저쪽은 흙바닥이고 물도 잘 안 나와요.
그런데 담을 세운 쪽 아이들은 이렇게 말해요.
"저쪽 애들은 원래 지저분하고 거칠어."
파농이 말한 '정착민의 마을'과 '원주민의 마을'이 딱 이 모양이에요.
그는 식민주의를 "구획으로 나뉜 세계의 조직화"라고 불렀어요.
조직화라는 말이 중요해요.
어쩌다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설계했다는 뜻이거든요.
파농은 이 나뉨을 '마니교적 세계'라고도 불렀는데, 마니교는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만 딱 잘라 보던 옛 종교예요.
중간이 없는 세계라는 말입니다.
이 설계에는 마지막 단계가 있어요.
담 저쪽 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부르는 일이에요.
파농은 정착민이 원주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 '동물학적 용어'라고 지적했어요.
사람을 떼나 해충처럼 부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는 진료실에서 이미 보고 있었어요.
여기가 오해가 가장 많이 쌓인 자리예요.
순서를 먼저 봐야 해요.
파농의 설명에서 폭력은 식민 지배자가 먼저 들여온 것이에요.
땅을 빼앗고 담을 세우고 저항을 진압한 그 모든 과정이 폭력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이제 폭력을 씁시다"라고 새로 제안한 게 아니라, 이미 폭력으로 굴러가는 체제를 진단한 거예요.
그래서 그는 탈식민화가 '신사협정'으로는 안 된다고 봤어요.
식민화 자체가 오직 폭력으로만 이루어지고 유지됐으니까요.
힘으로 빼앗은 것을 예의 바른 대화만으로 돌려받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고리가 하나 더 있어요.
식민 당국은 원주민을 두고 "쟤들은 원래 폭력적이고 범죄를 저지른다"고 비난했어요.
그런데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게 식민주의 자신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았죠.
파농이 짚은 게 바로 그 모른 척이에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1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개인의 차원에서 폭력은 정화하는 힘이다. 폭력은 원주민을 열등감과 절망과 무기력에서 풀어놓고, 두려움 없게 만들며 자존감을 되찾아 준다."
무섭게 들리는 문장이에요.
다만 이건 정신과 의사가 억눌린 사람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을 적어 둔 문장이지, 아무나 때려도 좋다는 허가증이 아니에요.
연구자들이 거듭 지적하는 것도 이 지점이에요.
1장만 떼어 읽으면 파농이 '폭력의 사도'처럼 보이지만, 책 전체는 서로 당기는 긴장과 모순을 품고 있습니다.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앞에는 장폴 사르트르가 쓴 서문이 붙어 있어요.
사르트르는 그 서문을 1장 '폭력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썼고, 거기에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유럽인 한 명을 쏘아 죽이는 것은 일석이조다. 억압자와 그가 억압하는 인간을 동시에 없애는 것이다. 남는 것은 죽은 사람 하나와 자유로운 사람 하나다."
이 문장은 파농의 말로 널리 인용되지만, 파농이 쓴 게 아니에요.
| 구분 | 파농 본문 | 사르트르 서문 |
|---|---|---|
| 쓴 사람 | 프란츠 파농 | 장폴 사르트르 |
| 말하는 방식 | 체제를 진단하는 말 | 행동을 부추기는 말 |
| 초점 | 억눌린 사람의 심리 회복 | 죽임이 만들어 내는 효과 |
1970년 한나 아렌트는 《폭력론》에서 이 대목을 정면으로 비판했어요.
폭력을 인간이 자기를 다시 만드는 일로 미화한다는 것이었고, 아렌트는 사르트르를 신좌파의 '새로운 폭력 설교자들' 가운데 하나로 분류했어요.
그런데 아렌트가 겨눈 건 엄밀히 말해 사르트르의 서문이에요.
이걸 그대로 파농 비판으로 옮기면 번지수가 어긋납니다.
파농 읽기는 지금도 갈라져 있어요.
루이스 고든은 실존주의 틀을 중심에 놓고, 호미 바바는 언어와 주체성에 주목하며, 앤서니 알레산드리니는 푸코나 사이드와의 대화를 강조해요.
2015년에는 미발표 유고집 《소외와 자유에 관한 글들》이 나오면서, 그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다시 따져 보는 중입니다.
파농 자신도 답을 닫아 두지 않았어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마지막에 그는 "우리는 새로 시작해야 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야 하며,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썼어요.
첫 책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고요.
"오 나의 몸이여, 나를 언제나 질문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다오."
파농의 식민지 폭력론을 이해하는 열쇠는 순서예요.
폭력은 저항하는 쪽이 시작한 게 아니라 담을 세운 쪽이 먼저 들여왔고, 파농은 그 사실을 진료실에서 확인한 다음 글로 옮겼어요.
식민 세계가 두 개로 잘린 이유도 우연이 아니라 그렇게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봤고요.
그러니 파농을 '폭력의 사도'로 부르는 건 1장만 떼어 읽은 결과예요.
가장 자주 인용되는 그 문장은 사르트르가 썼고, 아렌트의 비판도 원래는 그쪽을 겨눴습니다.
이름표를 제자리에 붙이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정리돼요.
서른여섯에 병상에서 세상을 떠난 의사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말은 폭력이 아니라 질문하는 인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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