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섀넌, 디지털 시대를 만들고 마지막에 잊어버린 수학자
섀넌은 스물한 살 석사논문으로 디지털 시대를 열었다
우리가 매일 손에 쥐는 스마트폰의 모든 회로는 1937년 MIT 어느 석사생의 노트 한 권에서 출발했어요.
그 석사생의 이름은 클로드 섀넌이었고, 나이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섀넌이 그 논문에서 한 일은 단순해 보였어요.
19세기 영국 수학자 조지 부울이 만든 논리 대수, 즉 "참이면 1, 거짓이면 0"이라는 수학을 전기 스위치에 적용한 거예요.
켜지면 1, 꺼지면 0. 그게 전부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 하나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놨어요.
스위치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하면 "둘 다 켜져 있을 때만 전기가 흐른다"는 논리가 됩니다.
오늘날 CPU 안에서 수십억 번씩 반복되는 바로 그 AND 연산이에요.
훗날 이 논문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석사논문"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어요.
지도교수도, 학과 동료도, 심지어 섀넌 본인도 자기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완전히 알지는 못했을 겁니다.
섀넌은 정보의 단위를 비트라 처음 이름 붙였다
와이파이 신호와 음성통화의 원리를 처음 수학으로 적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어요.
1948년, 섀넌은 벨 연구소에서 「수학적 통신 이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벨 연구소는 당시 AT&T가 운영하던 세계 최고의 민간 연구소로,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도 이곳에서 발명됐어요.
이 논문에서 섀넌은 처음으로 정보를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양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위를 비트(bit)라고 이름 붙였어요.
"예스 또는 노, 딱 하나를 골라야 할 때 필요한 정보의 양"이 1비트입니다.
여기서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당시 동료인 수학자 폰 노이만이 섀넌에게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그 개념을 엔트로피라고 불러. 아무도 그 뜻을 모르니까, 토론에서 늘 이길 수 있거든."
당대 동료들은 이 논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 5G, 압축 알고리즘, 오류 수정 코드가 전부 이 한 편의 논문에서 파생됐습니다.
우리가 요금제 문자에서 신경 쓰는 1GB라는 단위 자체가 섀넌의 비트에서 출발한 거예요.
섀넌은 외발자전거를 타고 벨 연구소 복도를 누볐다
디지털 시대를 연 사람의 점심시간 취미는 외발자전거 위에서 공을 돌리는 것이었어요.
섀넌은 벨 연구소 복도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며 저글링을 동시에 했습니다.
연구실 복도에서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불을 뿜는 트럼펫도 만들었고, 스위치를 누르면 작은 손이 나와서 그 스위치를 다시 꺼버리는 "무용기계(useless machine)"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기계예요. 그냥 재미로요.
1950년에는 전기 쥐 테세우스를 발표했어요.
테세우스는 미로를 스스로 학습해서 출구를 찾아내는 기계였고, 오늘날 머신러닝의 최초 시연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기업 임원이 회의실에서 직접 만든 AI 로봇으로 미로 풀기 시연을 보여주는 셈이에요.
그리고 섀넌은 자기 정보이론을 주식시장에 적용해서 상당한 수익도 냈다고 알려져 있어요.
가장 진지한 수학자가 가장 장난기 많은 발명가였던 겁니다.
이 두 가지가 아무 모순 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했어요.
섀넌은 알츠하이머로 자기 이론을 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정보의 단위를 처음 만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부터 잃었어요.
1990년대 초, 섀넌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습니다.
알츠하이머는 뇌세포가 점점 죽어가면서 기억과 인지 능력을 빼앗아가는 병이에요.
아이러니는 타이밍에 있었어요.
섀넌이 병을 앓는 동안, 그가 수학적으로 설계한 인터넷이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월드와이드웹이 탄생하고, 이메일이 퍼지고, 검색 엔진이 생겨나는 바로 그 시간이었어요.
그 모든 것의 수학적 토대를 만든 사람은 정작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2001년, 섀넌은 84세에 매사추세츠의 한 요양원에서 눈을 감았어요.
정보를 비트로 정의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잃어버린 채로요.
하지만 그가 만든 이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읽고 있는 이 화면의 모든 데이터를 0과 1로 쪼개고 전달하고 있어요.
본인은 잊었지만, 세상은 매 순간 그를 쓰고 있는 거죠.
과연 그는 자신이 만든 세상을 잊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세상이 그를 너무 빨리 당연하게 여긴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