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데이비드 차머스는 지금의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봐요. 다만 앞으로 나올 후속 모델은 의식의 진지한 후보가 될 수 있으니 미리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손을 뜨거운 물에 넣으면 우리 몸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요.
하나는 온도를 감지하고 손을 빼는 일이에요.
이건 온도 센서를 단 로봇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 순간 '앗 뜨거'라는 느낌이 마음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로봇도 이 느낌을 겪을까요?
여기서 말문이 막힙니다.
1966년 4월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난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는 1995년 논문에서 바로 이 막힘에 이름을 붙였어요.
뇌가 무엇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전부 밝혀내도 '왜 그 처리에 느낌이 따라붙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는 겁니다.
그는 이걸 '의식의 어려운 문제'라고 불렀어요.
이 이름이 붙은 뒤로 30년 가까이 심리철학과 인공지능 논쟁은 이 질문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 쉬운 문제 | 어려운 문제 | |
|---|---|---|
| 묻는 것 | 뇌가 어떻게 이 일을 해내는가 | 왜 그 일에 느낌이 따라붙는가 |
| 예 | 색을 구별하고, 정보를 분류하고, 말로 보고하는 과정 | 빨강을 볼 때 마음에 떠오르는 그 선명한 느낌 자체 |
| 전망 | 시간이 걸려도 과학이 답할 수 있다 | 위를 다 밝혀도 질문이 그대로 남는다 |
쉬운 문제가 진짜 쉽다는 뜻은 아니에요.
답을 얻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죠.
다만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언젠가 답이 나오는 종류의 질문이고, '왜 느껴지는가'는 그 답을 다 받아든 뒤에도 남는 질문이라는 구분입니다.
차머스가 즐겨 쓰는 상상 실험이 있어요.
나와 물리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존재를 떠올려 봅니다.
신경세포 하나까지 같고, 웃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겉으로는 구별이 안 돼요.
그런데 그 안에 아무런 경험이 없습니다.
불이 꺼진 집 같은 상태죠.
이런 존재를 철학적 좀비라고 불러요.
중요한 건 차머스가 좀비가 진짜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저 '이런 존재를 모순 없이 상상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상상이 가능하다면, 물리적 사실을 다 채워 넣어도 의식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뜻이 되니까요.
이 아이디어 자체는 그가 처음 만든 게 아니라 17세기 데카르트 전통에서 왔고, 1970년대에 다시 쓰이던 것을 차머스가 체계적으로 다듬었어요.
차머스는 2022년 11월 28일 기계학습 학회 뉴립스(NeurIPS)에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고, 그 강연을 2023년 논문 「대규모 언어모델이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로 펴냈어요.
그가 꼽은 걸림돌은 세 가지입니다.
결론은 조심스러워요.
지금의 대규모 언어모델이 의식을 가질 가능성은 다소 낮지만, 그 후속 모델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의식을 가질 가능성은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논문이 '차머스가 AI에 의식이 있다고 했다'로 자주 옮겨지는데, 그가 실제로 쓴 문장은 그 반대에 가깝게 판단을 미루고 있어요.
차머스는 자기 입장을 자연주의적 이원론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어렵지만 뜻은 단순해요.
의식은 뇌 상태에 딱 붙어서 함께 움직이니 초자연적인 무엇이 아니고, 그 점에서 자연주의예요.
동시에 의식은 물리적 성질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별개의 것이라 이원론이고요.
데카르트식 이원론과는 다릅니다.
데카르트 쪽은 별도의 정신이 물리 세계에 끼어들어 몸을 움직인다고 봤지만, 차머스는 물리 세계가 물리 법칙만으로 닫혀 있다는 과학의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여요.
다만 그 안에서 왜 느낌이 생기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고 말할 뿐입니다.
1998년 차머스는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와 25년짜리 내기를 했어요.
2023년까지 뇌에서 의식을 만들어 내는 지점을 딱 짚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코흐가 와인 한 상자를 걸었습니다.
2023년 6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학회에서 두 사람은 아직 그런 지점을 찾지 못했다는 데 공개적으로 합의했어요.
코흐는 와인 한 상자를 건넸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기한을 2048년으로 미룬 새 내기를 다시 걸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25년 뒤에도 여전히 열려 있었던 셈이에요.
차머스의 물음은 '기계가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에요.
아무리 말을 잘해도 그 안에 느낌이 있는지는 밖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철학적 좀비는 그 확인이 왜 불가능한지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장치고요.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한 그의 답도 조심스럽습니다.
지금은 아닐 것 같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그러니 미리 생각해 두자는 쪽이에요.
다음에 챗봇과 대화하다 상대가 뭔가 느끼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면, 그 기분이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부터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