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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엥겔스는 1884년에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물려줄 재산이 쌓이면서 가족의 모습이 바뀌었고, 그 재산을 지키려고 국가가 생겨났다고 설명했어요. 가족도 국가도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역사가 만들어낸 제도라는 이야기예요.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20년 11월 28일 프로이센 바르멘에서 태어나 1895년 8월 5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난 사회철학자예요.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썼고, 마르크스가 1883년에 죽은 뒤에는 남겨진 원고를 정리해 『자본론』 2권과 3권을 완성했어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도 그 정리 작업에서 나왔어요.
마르크스는 살아 있을 때 미국 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이 1877년에 낸 『고대사회』를 읽고 발췌와 메모를 잔뜩 남겨 두었어요.
엥겔스는 그 노트를 이어받아 1884년 3월 말부터 5월 26일까지 두 달 남짓 만에 책 한 권을 써냈어요.
흔히 두 사람의 공저로 소개되지만 집필은 엥겔스 혼자 했어요.
책이 처음 나온 곳은 독일이 아니라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팅엔이에요.
당시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의 반사회주의자법이 시행 중이라 이런 책을 찍을 수 없었거든요.
취리히에서 인쇄한 뒤 국경 너머로 몰래 들여보냈어요.
모건은 이로쿼이족, 그중에서도 세네카족에게 입양되어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사람이에요.
거기서 본 사회는 우리가 아는 가족과 달랐어요.
아이는 어머니 쪽 혈통으로 이어졌고, 결혼한 부부는 여자 쪽 집에 살았어요.
어머니 쪽을 중심으로 묶인 이런 집단을 모계 씨족이라고 불러요.
엥겔스는 모건이 정리한 가족의 발전 순서를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짝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방향이에요.
| 순서 | 가족 형태 | 짝의 범위 |
|---|---|---|
| 1 | 혈족가족 | 가장 넓음 |
| 2 | 푸날루아가족 | 조금 좁아짐 |
| 3 | 대우혼가족 | 한 쌍이 느슨하게 짝을 이룸 |
| 4 | 일부일처제 | 한 사람으로 고정됨 |
엥겔스에게 이 순서는 단순한 풍습의 변화가 아니었어요.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가 달라지자 가족의 모습도 따라 움직인 결과였어요.
딸기 몇 알을 따 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오늘 안 먹으면 상하니까 나눠 먹는 게 당연해요.
그런데 소나 양은 달라요.
놔두면 새끼를 낳아 늘어나고, 다른 물건과 바꿀 수도 있고, 무엇보다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어요.
엥겔스는 바로 이 지점을 짚었어요.
바꿀 수 있는 재산이 쌓이자 그 재산을 누구에게 물려줄지가 중요해졌고, 혈통을 세는 기준이 어머니 쪽에서 아버지 쪽으로 넘어갔다는 거예요.
사는 곳도 여자 쪽 집에서 남자 쪽 집으로 바뀌었고요.
그리고 물려줄 사람이 정말 내 자식인지 확실해야 했어요.
엥겔스는 일부일처제가 남자의 우위 위에 서 있으며, 그 목적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다툼의 여지가 없는 자녀를 낳는 데 있다고 못 박았어요.
그는 어머니 쪽 권리가 무너진 일을 두고 여성이라는 성별이 겪은 세계사적 패배라고 썼어요.
나아가 결혼 안에서 남녀 사이에 생긴 이 대립이 역사에 처음 나타난 계급 대립이고, 남성이 여성을 누른 것이 최초의 계급 억압이라고 봤어요.
다만 그는 어머니 쪽 권리가 정확히 어떤 과정으로 무너졌는지는 선사시대 일이라 알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어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그가 세운 추측이에요.
스무 명쯤 되는 교실을 떠올려 보세요.
다들 서로를 알고 있으면 다툼이 나도 자기들끼리 이야기해서 풀 수 있어요.
그런데 반이 커지고 나눠 가질 것이 생기고 사이가 갈라지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들끼리는 정리가 안 돼요.
엥겔스가 본 국가가 그래요.
그는 사회가 스스로 풀 수 없는 모순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지점에서 국가가 나온다고 썼어요.
무장한 사람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자, 사람들 위에 따로 선 특수한 공권력이 생겼다는 거예요.
군대와 감옥 같은 강제 기구가 여기에 들어가요.
그래서 그는 계급이 사라지면 국가도 따라 사라진다고 봤어요.
생산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모여 일을 다시 짜면 국가라는 기계 전체가 옛 물건을 모아 둔 박물관으로 들어갈 거라고 했어요.
칭찬만 받은 책은 아니에요.
20세기 사회인류학자 대다수는 어머니 쪽 혈통이 인류 어디에서나 먼저였다는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어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사회주의 계열과 급진 페미니즘 계열 학자들이 이 주장을 다시 살려 보려 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어요.
현대 고고학은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옛 인류 집단 상당수가 남자 쪽에 살림을 차리고 여자가 다른 집단으로 옮겨 가는 방식을 따랐다고 봐요.
엥겔스가 기댄 모건의 인류학은 1877년 기준으로는 최신이었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낡은 부분이 많아요.
엥겔스도 1891년 4판을 내면서 새 연구를 반영해 내용을 손봤고요.
그래도 남는 것이 있어요.
가족의 모양과 국가의 존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두지 않고, 무엇을 가졌느냐와 연결해 물어본 방식이에요.
여성 억압을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본 시각도 이 책에서 나왔어요.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남긴 독서 노트를 들고 두 달 만에 이 책을 썼고, 비스마르크의 법을 피해 취리히에서 찍었어요.
그가 그린 그림은 간단해요.
바꾸고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이 생기자 혈통을 세는 기준이 어머니 쪽에서 아버지 쪽으로 넘어갔고, 그 재산을 지키려는 힘이 굳어져 국가가 되었다는 거예요.
인류학의 세부 주장은 지금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그러니 이 책은 사실 기록이 아니라 질문의 틀로 읽는 편이 정확해요.
오늘 당연해 보이는 가족과 국가도 어느 시점에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것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질문이요.
1884년 취리히에서 찍혀 몰래 국경을 넘던 책 한 권이 남긴 것도 결국 그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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