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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변증법적 유물론은 세상 만물이 서로 부딪히며 변해 간다고 보는 사고방식이에요. 엥겔스가 『반뒤링론』과 『자연변증법』에서 그 뼈대를 세웠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이름은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 플레하노프가 1891년쯤 붙인 말이고 엥겔스도 마르크스도 이 용어를 직접 쓴 적이 없어요.
이름이 길고 어렵지만, 사실은 두 낱말을 붙여 놓은 거예요.
'유물론'은 물질이 먼저라는 생각이고, '변증법'은 모든 것이 서로 부딪히면서 변한다는 생각이에요.
유물론부터 볼게요.
배가 고파서 밥 생각이 나는 걸까요, 밥 생각이 나서 배가 고픈 걸까요.
엥겔스는 이런 질문이 철학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이라고 했어요.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그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에서 이 답에 따라 철학사 전체를 관념론 진영과 유물론 진영으로 갈랐어요.
이 책은 1886년 사회주의 잡지 《디 노이에 차이트》에 연재된 뒤 1888년에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시작은 소박했어요.
편집진이 덴마크 철학자 카를 슈타르케의 신간을 서평해 달라고 부탁한 게 계기였거든요.
변증법은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라면 물을 데울 때 온도를 1도씩 올려도 한동안은 그냥 뜨거운 물이에요.
그런데 100도가 되는 순간 물이 아예 수증기로 바뀌어요.
조금씩 쌓인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뒤집히는 것, 엥겔스는 이런 일이 자연에서도 사회에서도 사람 머릿속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봤어요.
『반뒤링론』은 1878년에 나왔어요.
원제를 옮기면 '오이겐 뒤링 씨가 과학에서 일으킨 변혁'인데, 제목부터 비꼬는 말이에요.
뒤링은 독일의 사회주의 이론가였고, 이것저것 그럴듯하게 섞어 놓은 자기 체계를 내세워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어요.
엥겔스는 이 책을 쓴 이유가 개인적인 관심이 아니었다고 직접 밝혔어요.
뒤링의 이론이 운동 안으로 퍼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 때문이었죠.
그러니까 원래는 남을 반박하려고 쓴 글이었어요.
그런데 반박을 하려면 자기 쪽 생각을 처음부터 정리해서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렇게 하다 보니 당대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을 가장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이 되어 버렸고, 제2인터내셔널의 사상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싸우려고 쓴 반박문이 교과서가 된 셈이에요.
『반뒤링론』 12장은 '양과 질', 13장은 '부정의 부정'을 다뤄요.
엥겔스가 정식화한 세 법칙을 정리하면 이래요.
| 법칙 | 쉬운 말로 | 이렇게 생각하면 쉬워요 |
|---|---|---|
| 양에서 질로의 전화 | 조금씩 쌓인 변화가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 물을 계속 데우면 100도에서 수증기가 된다 |
| 대립물의 상호침투 | 반대되는 두 힘이 서로 맞물려 하나를 이룬다 | 자석은 N극만 떼어낼 수 없다 |
| 부정의 부정 | 앞을 뒤집고 그 뒤집음을 다시 뒤집으면 더 높은 자리로 간다 | 씨앗이 사라지며 싹이 되고, 싹이 사라지며 더 많은 씨앗을 남긴다 |
엥겔스에게 이 셋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지어낸 규칙이 아니었어요.
자연과 사회와 정신의 발전을 실제로 지배하는 객관적인 법칙이었죠.
다만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짚어야 해요.
이 세 법칙을 두고 '헤겔이 만든 법칙을 엥겔스가 유물론으로 뒤집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지 않아요.
헤겔 연구자 카이 캉갈은 헤겔이 자기 저작 어디에서도 이 셋을 '변증법의 법칙'이라고 이름 붙인 적이 없다고 지적해요.
양질전화는 헤겔 『논리학』 1부의 '척도'론에, 부정의 부정은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 95절의 논의에 부분적으로 대응할 뿐이에요.
캉갈은 엥겔스가 헤겔 논리학의 일부만 뽑아 단순하게 다듬었고, 그 과정에서 빠뜨린 세부 때문에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평가해요.
엥겔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사회만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역사를 가지고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본 거예요.
이 생각을 담은 원고가 『자연변증법』이에요.
그는 이 원고를 주로 1873년부터 1883년까지, 일부는 1886년까지 썼어요.
다윈의 진화론에서 큰 영향을 받아서, 물질이 점점 복잡하게 조직되면 생명이나 정신처럼 질적으로 새로운 층위가 생겨난다는 그림을 그렸죠.
물 분자 하나에는 없던 '젖는 성질'이 물이 모이면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그런데 이 원고를 완성된 책처럼 생각하면 안 돼요.
13년에 걸쳐 쓴 노트와 초고와 단편의 묶음이고, 엥겔스는 살아 있는 동안 이걸 출판하지 않았어요.
세상에 나온 건 사후인 1925년 소련에서였고,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나란히 실은 판본이었어요.
영어판은 1939년에 홀데인의 번역으로 나왔고요.
왜 마무리를 못 했을까요.
마르크스가 1883년에 세상을 떠난 뒤, 엥겔스는 남겨진 원고를 정리해 『자본론』 2권을 1885년에, 3권을 1894년에 내놓느라 자기 작업을 뒤로 미뤄야 했어요.
『반뒤링론』 1부 11장에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이 있어요.
엥겔스는 헤겔이 자유와 필연의 관계를 처음으로 올바르게 말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정리해요.
필연은 이해되지 않는 동안에만 눈먼 것이고, 자유란 자연법칙에서 벗어나는 꿈이 아니라 그 법칙을 알아서 일정한 목적을 향해 부릴 수 있게 되는 데 있다고요.
중력을 없앨 수는 없어요.
하지만 중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면 비행기를 만들 수 있죠.
그게 엥겔스가 말한 자유예요.
다만 '자유는 필연성의 인식이다'라는 문장은 헤겔의 직접 인용처럼 돌아다니는데, 실제로는 엥겔스가 헤겔의 생각을 자기 말로 요약한 표현이에요.
헤겔 책에 글자 그대로 있는 문장이 아니에요.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생각을 아무 이견 없이 이어받아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말하면, 그건 아직 논쟁 중인 문제를 결론처럼 말하는 거예요.
게오르크 루카치를 비롯한 서구 마르크스주의 계열은 엥겔스가 변증법을 자연에 억지로 갖다 씌워 마르크스를 왜곡했다고 비판했어요.
알프레드 슈미트는 차이를 이렇게 짚었어요.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을 안에서부터 파고들며 변증법을 드러낸 반면, 엥겔스는 이미 나와 있는 자연과학의 결과를 바깥에서 변증법 범주에 맞춰 해석했다는 거죠.
슈미트는 이걸 독단적인 형이상학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봤어요.
테럴 카버는 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요.
두 사람이 모든 핵심 문제에서 한목소리를 냈다는 통념 자체가 사실이 아니고, 마르크스가 『반뒤링론』이나 『자연변증법』에 정말로 동의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거예요.
반대편에는 엥겔스를 독학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세운 천재로 떠받드는 입장이 오래 있었어요.
캉갈은 2019년 《Science & Society》 83권 2호에 실은 글에서 논쟁이 이 두 극단으로 갈려 있었다고 정리하면서, 엥겔스의 변증법은 흔히 여겨지는 것보다 덜 완결적이지만 비판자 다수가 인정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이뤘다는 재평가를 내놓았어요.
엥겔스가 한 일은 흩어진 생각들에 뼈대를 세운 거예요.
물질이 먼저라는 입장을 정하고,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을 세 법칙으로 묶고, 그 틀을 사회를 넘어 자연에까지 밀어붙였어요.
그 덕에 마르크스주의는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세계관이 됐고, 제2인터내셔널 세대는 이 틀 위에서 생각했어요.
동시에 뼈대를 세운다는 건 무언가를 깎아낸다는 뜻이기도 해요.
헤겔 논리학에서 세 항목만 뽑아 법칙이라 부른 것, 자연과학의 결과에 변증법을 바깥에서 씌운 것, 그리고 정작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이 나중에 붙였다는 것.
지금 이 개념을 읽을 때 함께 봐야 할 건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원고를 정리하느라 자기 원고를 서랍에 넣어 둔 사람이 남긴 미완의 묶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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