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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공정한 관찰자'는 내 마음속에 살면서 나를 지켜보는 상상 속 심판관이에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사정을 다 아는 공정한 사람이 이걸 보면 뭐라고 할까'를 떠올리는 것, 스미스는 우리가 그렇게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고 봤어요.
친구랑 과자를 나눠 먹다가 나도 모르게 큰 조각을 집었다고 해볼게요.
그 순간 마음 한쪽에서 '야, 그건 좀 치사하잖아' 하는 목소리가 들려요.
애덤 스미스는 바로 이 목소리에 이름을 붙였어요.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 우리말로는 '가슴 속의 인간(man within the breast)'이라고도 불렀지요.
이 관찰자는 진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사정을 잘 알고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제3자예요.
스미스는 1759년에 펴낸 책 『도덕감정론』에서,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바로 이 '잘 알고 공정한 관찰자'의 마음에 내 감정을 맞춰 보려 한다고 썼어요.
남이 진짜로 칭찬해 줘서가 아니라, 내 안의 심판관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인가를 스스로 따지는 거예요.
여기서 스미스가 말한 '공감(sympathy)'은 오해하기 쉬워요.
흔히 공감이라고 하면 우는 친구를 보고 나도 덩달아 슬퍼지는 '동정'을 떠올리죠.
그런데 스미스의 공감은 조금 달라요.
친구의 감정이 그냥 나에게 옮겨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저 친구 처지라면 어떤 마음일까'를 상상으로 그려 보는 일이에요.
비유하자면 감기처럼 옮는 게 아니라, 상대의 신발을 잠깐 신어 보는 쪽에 가까워요.
그래서 스미스는 상대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그 상황에 어울리는지까지 따져 봐요.
이렇게 남과 나를 수없이 지켜보고 '잘했다, 못했다'를 주고받는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마음속에 옳고 그름의 기준이 조금씩 만들어진다고 봤어요.
도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난다는 거예요.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펴낸 『국부론』으로 더 유명하죠.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건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의 착한 마음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남긴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헷갈려해요.
착한 마음을 말한 『도덕감정론』의 스미스와 자기 이익을 말한 『국부론』의 스미스가 정말 같은 사람인가 하고요.
실제로 19세기 독일 학자들은 두 책이 서로 모순된다며 이를 '애덤 스미스 문제'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두 책은 한 사람이 세운 큰 그림의 다른 부분일 뿐이라는 거죠.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를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시장에서도 남을 함부로 속이지 않을 테니까요.
참고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도 스미스는 『국부론』 전체에서 딱 한 번밖에 쓰지 않았어요.
| 구분 | 도덕감정론(1759년) | 국부론(1776년) |
|---|---|---|
| 다루는 것 | 사람의 도덕과 감정 | 나라의 경제와 시장 |
| 핵심 말 | 공감, 공정한 관찰자 | 분업, 자기 이익 |
| 흔한 오해 | 착함만 말한 책 | 이기심만 말한 책 |
스미스는 재미있게도 지독한 건망증으로도 유명했어요.
공장을 구경하며 이야기에 푹 빠졌다가 무두질 구덩이에 풍덩 빠진 적도 있고, 잠옷 바람으로 넋을 놓고 걷다가 24킬로미터나 떨어진 마을까지 간 적도 있대요.
그런 그가 평생 붙잡고 있던 질문은 '사람은 어떻게 착해질 수 있을까'였어요.
'공정한 관찰자'가 바로 그 답이에요.
내 안에 공정한 눈 하나를 길러 두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멈출 수 있으니까요.
스미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관찰자가 우리 사회의 낡은 편견까지 비판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봤어요.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뭐'라는 말에 '그래도 이건 아니야'라고 답하는 목소리인 셈이죠.
다만 내 안의 심판관이 우리 동네의 편견을 정말로 넘어설 수 있는지는 지금도 학자들이 토론하는 어려운 숙제예요.
애덤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는 내 마음속에 앉힌 공정한 제3자예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사정을 다 아는 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게 스미스가 말한 도덕의 출발이었어요.
공감은 남의 감정에 전염되는 게 아니라 그 처지를 상상해 보는 일이고, 그렇게 길러진 내면의 심판관은 아무도 없을 때의 나를, 나아가 세상의 편견까지 돌아보게 만들어요.
착함을 말한 『도덕감정론』과 시장을 말한 『국부론』은 그렇게 한 사람 안에서 이어져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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