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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빵집 주인이 우리에게 빵을 파는 건 우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런 각자의 이기심이 모이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사회에 필요한 물건이 골고루 돌아가게 돼요. 애덤 스미스는 이 신기한 힘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불렀어요.
아침마다 동네 가게에는 빵과 우유와 달걀이 놓여 있어요.
누가 "모두가 아침을 먹게 하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빵집 주인은 빵을 팔아 돈을 벌고, 목장 주인은 우유를 팔아 돈을 벌어요.
각자 자기 돈벌이를 했을 뿐인데, 그 덕분에 우리 식탁이 차려져요.
아무도 지휘하지 않는데 도시 전체가 매일 밥을 먹는 셈이죠.
애덤 스미스는 바로 이 장면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불렀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이익을 좇아 움직였을 뿐인데,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좋은 결과가 저절로 생기는 거예요.
1723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이 도덕철학자는 1776년에 낸 『국부론』에서, 장사꾼이 자기 이익만 챙겼을 뿐인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이루게 된다"고 적었어요.
스미스가 든 예시가 아주 유명해요.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건 정육점 주인이나 술 만드는 사람, 빵집 주인의 착한 마음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풀어서 말하면 이래요.
빵집 아저씨는 나를 사랑해서 새벽부터 빵을 굽는 게 아니에요.
빵을 팔아 돈을 벌려는 거죠.
그런데 그 덕분에 나는 갓 구운 빵을 먹어요.
아저씨도 좋고 나도 좋고, 둘 다 웃는 거예요.
여기엔 '분업'이라는 비밀도 숨어 있어요.
핀 하나를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면 하루에 한 개도 겨우 만들어요.
그런데 철사를 자르는 사람, 뾰족하게 가는 사람, 머리를 붙이는 사람으로 일을 나누면 같은 사람들이 하루에 수만 개를 만들 수 있어요.
각자 잘하는 몫을 나눠 맡으면 물건이 싸지고 많아지는 거죠.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을 딱 한 번 썼어요.
넓은 땅을 가진 부자가 맛있는 걸 먹고 사치를 부려도, 그 큰 밥상을 혼자서 다 먹지는 못하잖아요.
남는 몫은 결국 하인과 농부와 요리사,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에게 일자리와 먹을거리로 흘러가요.
스미스는 부자들이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준 것처럼 생필품을 골고루 퍼뜨린다고 봤어요.
자기 이익을 좇는 행동이 뜻밖에 남까지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죠.
여기서 큰 오해가 하나 생겨요.
"스미스는 이기적으로 살라고 했고,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해결한다고 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는 『국부론』보다 먼저, 1759년에 『도덕감정론』을 냈어요.
열네 살에 글래스고 대학에 들어가 도덕철학을 공부하고, 평생 친구였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가깝게 지낸 사람이거든요.
그 『도덕감정론』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해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본성에는 분명 남의 행복을 신경 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이 책에서 스미스가 아낀 개념이 '공감'과 '공정한 관찰자'예요.
공감은 '내가 저 사람 처지라면 어떨까' 하고 남의 입장을 상상해 보는 마음이에요.
공정한 관찰자는 내 마음속에 심어 둔 심판 같은 거예요.
어깨 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냉정한 친구가 "그건 좀 부끄러운 짓이야"라고 말해 주는 느낌이죠.
신기하게도 이 관찰자는 나중엔 사회가 잘못했을 때 그 사회를 나무라는 기준까지 돼요.
두 책을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구분 | 도덕감정론(1759) | 국부론(1776) |
|---|---|---|
| 다루는 것 | 사람 마음과 도덕 | 시장과 경제 |
| 핵심 개념 | 공감, 공정한 관찰자 | 분업, 보이지 않는 손 |
| 사람을 보는 눈 | 남을 신경 쓰는 존재 | 자기 이익을 좇는 존재 |
19세기 독일 학자들은 두 책이 서로 모순된다며 '애덤 스미스 문제'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대부분, 이건 모순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닌 두 얼굴이라고 봐요.
우리도 친구에게는 다정하면서 시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깎으려 하잖아요.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에 다 맡기면 만사형통"이라는 만능 법칙처럼 아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이 말은 스미스의 책 전체에서 딱 세 번, 그중 경제 이야기로는 두 번밖에 안 나와요.
원래는 작은 비유였는데, 20세기 경제학자들이 슬로건처럼 크게 키운 거예요.
스미스가 정부는 필요 없다고 한 것도 아니에요.
그는 국방과 재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공사업을 정부의 몫으로 봤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교육을 지원하는 일에도 정부 역할을 인정했어요.
'자본주의'라는 말은 아예 쓴 적도 없고, 대신 '상업 사회'라고 불렀죠.
요즘도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안 보이는 건 사실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라며 시장을 너무 믿지 말라고 꼬집어요.
스미스를 두고는 이렇게 옹호와 비판이 갈려요.
보이지 않는 손은 각자 자기 이익을 좇았을 뿐인데 사회 전체에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비유예요.
마법 같은 만능 법칙이 아니라, 시장이 지닌 신기한 성질을 짚은 표현이죠.
기억할 건 두 가지예요.
첫째, 스미스는 이기심만 외친 사람이 아니라 공감하는 마음까지 함께 살핀 도덕철학자였어요.
둘째, 그는 시장을 믿되 맹신하지는 않았어요.
정부의 역할도, 사람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챙긴 균형 잡힌 사람이었죠.
그러니 빵집 주인의 이기심과 나를 향한 배려, 그 둘을 같이 봐야 스미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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