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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애덤 스미스는 빵집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기기 때문에 우리 저녁 식탁이 차려진다고 봤어요. 다만 그 이기심은 공감과 정의의 규칙 안에서 움직일 때만 시장 질서가 된다는 것이 그의 진짜 주장이에요.
"우리가 저녁을 기대하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1776년 3월 9일에 펴낸 『국부론』 1권 2장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생각해 보면 정말 그래요.
아침에 빵집 문이 열려 있는 이유는 주인이 우리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빵을 팔아야 생활이 되기 때문이에요.
스미스가 말하려던 핵심은 여기 있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몫을 챙기려고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이 서로 맞물리면서 아무도 지시하지 않은 질서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는 이것을 '이기심'이라 부르며 나쁘게 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의 선의에 기대지 않아도 돌아가는 구조라서 튼튼하다고 봤어요.
스미스는 『국부론』을 핀 공장 이야기로 열어요.
핀 하나를 혼자 만들면 하루에 몇 개도 못 만들지만, 철사를 자르고 끝을 갈고 머리를 붙이는 식으로 열여덟 개 공정으로 쪼갠 뒤 노동자 열 명이 나눠 맡으면 하루에 핀 4만 8천 개가 나온다는 거예요.
이것이 분업이에요.
여기서 각자가 원한 것은 자기 임금이지 나라의 번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쓸 핀이 넘치게 만들어졌어요.
스미스는 이 대목에서 그 유명한 표현을 써요.
상인은 자기 안전과 이익만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기 의도에 없던 목적을 이루게 된다"고요.
다만 여기서 오해 하나를 풀고 가야 해요.
스미스가 백만 단어가 넘는 저작을 통틀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을 쓴 건 딱 세 번뿐이에요.
미출간 원고인 『천문학사』에 한 번, 『도덕감정론』에 한 번, 『국부론』 4권 2장에 한 번이에요.
이 말이 '정부는 손 떼라'는 구호처럼 굳어진 것은 1950년대 이후 경제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면서 생긴 일이에요.
스미스가 세상에 먼저 내놓은 책은 『국부론』이 아니라 1759년의 『도덕감정론』이에요.
그리고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해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그 본성에는 분명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원리들이 있다."
이기심을 말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지요.
그래서 19세기 후반 독일 학자들은 두 책 사이에 끊긴 데가 있다며 '다스 아담 스미스 문제'라는 논쟁을 만들었어요.
스미스가 세상을 떠나고 백 년 가까이 지난 뒤의 일이고, 정작 스미스 본인이 이걸 문제라고 여긴 흔적은 없어요.
오늘날 연구자들은 대체로 오독이라고 봐요.
두 책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거든요.
| 『도덕감정론』(1759년) | 『국부론』(1776년) | |
|---|---|---|
| 다루는 범위 | 사람이 함께 사는 삶 전체 | 그중 사고파는 한 영역 |
| 중심 개념 | 공감, 공정한 관찰자 | 자기 이익, 분업 |
| 사람을 보는 눈 | 남의 처지를 상상하는 존재 | 자기 몫을 계산하는 존재 |
스미스가 말한 공감은 남의 감정이 저절로 옮아오는 게 아니라, 내가 저 사람 자리에 서 보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생기는 감정이에요.
그리고 옳은 감정인지 판단할 때는 마음속에 '공정한 관찰자'를 하나 세워요.
나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감정인가,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아니에요.
그는 상인과 제조업자를 꽤 의심스럽게 봤어요.
『국부론』 1권 10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같은 업종 사람들은 즐기려고 모이는 일조차 드물지만, 그 대화는 대중을 상대로 한 음모나 값을 올릴 궁리로 끝난다."
요즘 말로 담합이에요.
3권 4장에서는 봉건 영주들을 비판해요.
상업이 발달하자 영주들이 소작인과 가신에게 나눠 주던 몫을 사치품 사는 데 돌려 버렸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면서 이렇게 적어요.
"모든 것은 우리 것으로, 남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어느 시대에나 인간의 주인들이 지녀 온 비열한 격률로 보인다."
그러니까 스미스가 말한 자기 이익은 아무렇게나 풀어놓아도 되는 게 아니에요.
정의의 규칙과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움직일 때 비로소 질서가 되는 거예요.
울타리가 없으면 그 이기심은 담합과 로비로 흘러가요.
중고 거래 앱을 떠올려 보세요.
파는 사람은 돈이 필요하고 사는 사람은 싸게 사고 싶어요.
서로 선의가 없어도 거래는 성사돼요.
스미스가 본 시장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사기꾼이 늘고 신고가 통하지 않으면 그 앱은 금세 망해요.
규칙이 무너지면 이기심은 질서가 아니라 혼란을 만든다는 것, 이게 스미스가 두 책에 걸쳐 하려던 말이에요.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 커콜디에서 태어나 1790년 7월 17일 에든버러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숨을 거두기 일주일쯤 전에는 친구들에게 미출간 원고 열여섯 권을 태워 달라고 부탁했고요.
자기 이름으로 남길 것과 남기지 않을 것을 끝까지 스스로 골랐던 셈이에요.
스미스의 이기심은 '남을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남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도 돌아가는 구조를 보자'는 뜻이었어요.
빵집 주인의 계산과 핀 공장의 분업이 모여 아무도 계획하지 않은 질서를 만들어요.
그렇다고 시장을 신처럼 여기지도 않았어요.
그는 같은 책에서 담합하는 상인과 몫을 독차지하는 영주를 나란히 비판했어요.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보다 먼저, 남의 자리에 서 보는 공감을 다룬 책을 썼어요.
이기심을 말한 경제학자와 공감을 말한 도덕철학자를 굳이 둘로 나눌 필요는 없어요.
스미스에게 그건 처음부터 한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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