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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요하네스 둔스 스코투스는 700여 년 전 중세 유럽에서 활동한 철학자예요. 세상 모든 것에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것다움'이 있다고 봤고, 사람의 의지가 정해진 답을 그냥 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고른다는 점을 특히 힘주어 말했어요.

옛날 유럽에는 궁금한 게 생기면 몇 년씩 매달려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중 한 명이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둔스'에서 1266년쯤 태어난 요하네스 둔스 스코투스예요.
이름 뒤에 붙은 '스코투스'는 '스코틀랜드 사람'이라는 뜻이니, 이름 안에 고향이 담겨 있는 셈이에요.
그는 수도사가 되어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공부하고 가르쳤어요.
사람들은 그를 '정교한 박사'라고 불렀어요.
남들이 대충 넘어가는 부분을 아주 얇게 쪼개서 따지고 들었기 때문이에요.
안타깝게도 마흔두 살쯤이던 1308년, 독일 쾰른에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짧게 살았지만 그가 남긴 생각은 지금까지도 이야기돼요.
그만큼 그의 물음이 깊었다는 뜻이겠죠.

여러분 반에 쌍둥이가 있다고 해봐요.
얼굴도 목소리도 똑같아서 선생님도 가끔 헷갈려요.
그런데도 둘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에요.
이 '똑같아 보여도 결국 다른 그 하나'를 만드는 무언가, 스코투스는 여기에 이름을 붙였어요.
라틴어로 '해케이타스', 우리말로 풀면 '이것임' 또는 '이것다움'이에요.
나뭇잎 수천 장이 다 비슷해 보여도 그중 딱 한 장을 '바로 이 잎'으로 만들어 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예요.
키, 색깔, 모양 같은 특징을 아무리 나열해도 '바로 이것'을 콕 집어내지는 못해요.
그 특징들을 다 합친 뒤에도 남는 마지막 한 조각, 그게 바로 이것다움이에요.
그 전까지 많은 학자들은 '사람이라는 공통점'처럼 큰 묶음을 더 중요하게 봤어요.
낱낱의 개인은 그 큰 묶음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요.
스코투스는 반대로 눈길을 돌렸어요.
정말 진짜인 것은 '사람 일반'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 바꿀 수 없는 이 하나'라고 본 거예요.
여러분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이유를 700년 전에 진지하게 고민한 셈이에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섰다고 생각해 봐요.
머리로는 '딸기가 제일 싸고 양도 많아'라고 계산이 끝났는데도, 손은 초코를 가리킬 때가 있죠.
사람 마음은 계산 결과를 그대로 따르지만은 않아요.
스코투스 이전에는 '머리로 가장 좋은 답을 알면 마음은 자연히 그걸 따른다'고 보는 생각이 힘이 셌어요.
스코투스는 여기에 고개를 저었어요.
아무리 좋은 답을 알아도, 그것을 고를지 말지는 결국 내 의지가 자유롭게 정한다는 거예요.
| 무엇이 앞서는가 | 스코투스 이전 | 둔스 스코투스 |
|---|---|---|
| 중심에 둔 것 | 지성(머리의 판단) | 의지(마음의 선택) |
| 선택을 정하는 힘 | 가장 좋은 답이 이끈다 | 내가 자유롭게 고른다 |
이 생각이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선택이 진짜 내 자유라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내 것이 되니까요.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가 아니라 '내가 골랐다'가 되는 거예요.
자유가 있어야 책임도 있다는 이 생각은 오늘날 우리가 옳고 그름을 따질 때도 바탕에 깔려 있어요.
그 시절 사람들은 '믿음의 문제'와 '이성으로 따지는 문제'를 다른 방에 나눠 두려 했어요.
신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믿는 것, 세상 이치는 머리로 따지는 것, 이렇게요.
스코투스는 두 방 사이의 벽을 얇게 만들었어요.
신을 이야기할 때도 대충 넘기지 않고, 세상 이치를 따질 때 쓰던 그 날카로운 논리를 똑같이 들이댔어요.
믿는 것과 따지는 것을 한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놓은 셈이에요.
그렇다고 믿음을 논리로 억지로 증명하려 든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어디까지가 따져서 알 수 있는 영역이고 어디부터가 믿음의 영역인지, 그 경계를 아주 조심스럽게 그었어요.
그래서 그의 글은 읽기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바로 그 꼼꼼함 덕분에 후대 철학자들이 두고두고 참고했어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영어에서 '멍청이'를 뜻하는 단어 '던스'는 바로 이 둔스 스코투스의 이름에서 나왔어요.
훗날 그의 방식을 낡았다고 비웃던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무리를 놀리며 쓴 말이 그대로 굳어진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다던 학자의 이름이 정반대 뜻이 되다니, 조금 억울한 반전이죠.
하지만 그가 던진 두 가지 질문은 지금도 살아 있어요.
'나는 왜 세상에 단 하나뿐인가', 그리고 '내 선택은 정말 내 자유인가'.
친구를 따라 하지 않고 나만의 무언가를 지키고 싶을 때, 남이 정해 준 답 대신 내가 직접 고르고 싶을 때, 여러분은 이미 스코투스가 고민한 자리에 서 있는 거예요.
700년 전 한 수도사가 그 자리에서 먼저 함께 고민하고 있었던 셈이죠.
요하네스 둔스 스코투스는 '이것다움'이라는 말로 각자가 바꿀 수 없는 하나임을 짚었고, 사람의 의지가 자유롭게 고른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또 믿음과 이성을 한 책상 위에 올려 신학과 철학의 벽을 얇게 만들었어요.
그의 이름이 엉뚱하게 '멍청이'라는 단어가 됐지만, 나는 왜 유일한 존재인지, 내 선택은 정말 내 것인지 묻게 만든 그의 물음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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