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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1090년부터 1153년까지 살았던 프랑스 수도사예요. 느슨해진 수도원을 원래 규칙으로 되돌린 시토회 개혁을 이끌었고, 하느님을 머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만나자는 신비 신학을 펼쳐 중세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영적 스승이 되었어요.

1113년, 스물세 살 청년 베르나르가 형제들과 친구 약 30명을 데리고 시토 수도원 문을 두드렸어요.
혼자 조용히 들어가도 될 텐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함께 끌고 왔을까요.
그만큼 그의 진심에 사람들이 끌렸다는 뜻이에요.
이 글에서는 그가 무엇을 바꿨고, 신비 신학이 무슨 말인지 쉬운 비유로 풀어 볼게요.
그리고 2년 뒤인 1115년, 베르나르는 스물다섯 나이에 클레르보라는 골짜기에 새 수도원을 세워요.
클레르보는 '맑은 골짜기'라는 뜻이에요.
젊은 나이에 수도원의 책임자가 된 그는 여기서 평생을 보내며 유럽 곳곳에서 그의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됐어요.

동아리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처음엔 소박하게 시작했는데 인기가 많아지면 어느새 규칙이 흐지부지되고 처음 마음도 옅어지죠.
베르나르 시대의 큰 수도원들이 딱 그랬어요.
재산이 늘고 생활이 편해지면서 원래의 검소함을 잃어 갔어요.
시토회는 여기에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답했어요.
오래전 성 베네딕도가 정한 규칙 그대로, 수도사가 직접 밭을 갈고, 화려한 장식을 걷어 내고, 말을 아끼며 기도에 집중했어요.
베르나르의 손에서 이 개혁 수도원은 빠르게 퍼져서,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시토회 수도원이 340곳이 넘게 늘어났어요.

말은 어렵지만 뜻은 단순해요.
하느님을 수학 문제처럼 증명해 아는 게 아니라, 친한 친구를 사귀듯 사랑으로 직접 느껴 안다는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을 설명서로 이해하지 않고 함께 지내며 알아 가는 것과 비슷해요.
베르나르는 성경 가운데 사랑 노래인 '아가'를 두고 설교를 86편이나 남겼어요.
그는 이 노래를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사랑으로 읽었어요.
글이 어찌나 부드럽고 달았던지 후대 사람들은 그에게 '꿀처럼 흐르는 박사'라는 별명을 붙였답니다.

같은 시대 파리에는 아벨라르라는 이름난 학자가 있었어요.
그는 신앙도 논리로 하나하나 따져 보자고 했어요.
베르나르는 이걸 걱정했어요.
하느님은 따지기 전에 먼저 사랑하고 믿는 대상이라고 봤거든요.
두 사람의 결은 이렇게 달랐어요.
| 견주는 점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 아벨라르 |
|---|---|---|
|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 | 사랑과 체험 | 이성과 논리 |
| 무엇을 강조했나 | 기도하고 느끼기 | 묻고 따지기 |
| 주로 활동한 곳 | 조용한 수도원 | 도시의 학교 |
둘은 1141년 상스 교회 회의에서 정면으로 부딪혔고, 이 자리에서는 베르나르 쪽 주장이 힘을 얻었어요.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았다기보다, 믿음에 다가가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고 보면 좋아요.
1146년, 베르나르는 프랑스 곳곳을 다니며 제2차 십자군에 나설 것을 설교했어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만큼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십자군은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했고, 베르나르는 큰 비난을 받으며 마음 아파했어요.
아무리 영향력이 큰 사람도 모든 결과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에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스물다섯에 골짜기로 들어가, 느슨해진 수도원을 처음의 검소함으로 되돌린 사람이에요.
그는 하느님을 논리로 증명하기보다 사랑으로 느껴 안다는 신비 신학을 남겼고, 이성을 앞세운 아벨라르와 다른 길을 걸었어요.
십자군 설교처럼 실패도 겪었지만, 사랑으로 믿음을 말한 그의 목소리는 지금도 중세 영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으로 남아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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