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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베로에스는 12세기 이슬람 세계의 철학자로, 거의 잊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꼼꼼히 해설해 유럽에 다시 전한 사람이에요. 유럽은 그의 주석서를 읽고 고대 그리스 철학을 되찾았어요.

여러분이 아주 오래된 명작 소설을 읽는데, 글씨가 흐려서 무슨 말인지 통 알 수 없다고 해 봐요.
그런데 누군가 옆에 또박또박 해설을 달아 준다면 어떨까요.
12세기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에 살던 아베로에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어요.
아랍어 이름은 이븐 루시드, 유럽에서는 라틴어로 아베로에스라고 불렀어요.
1126년부터 1198년까지 살았지요.
그는 원래 철학만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코르도바의 재판관이었고, 그도 재판관으로 일했어요.
게다가 의사이기도 해서 몸에 관한 두꺼운 의학책까지 남겼지요.
낮에는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고, 밤에는 오래된 책을 펴 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게 아베로에스였어요.
그가 살던 시절, 스페인 남부는 이슬람 문화가 활짝 꽃핀 곳이었어요.
도서관에는 그리스에서 건너온 책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가득했지요.
아베로에스는 그 책 더미 속에서 한 사람에게 푹 빠졌어요.
바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별의 움직임부터 개구리의 몸까지, 세상 거의 모든 것을 궁금해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가 남긴 책은 시간이 흐르며 유럽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어요.
로마가 무너지고 전쟁이 이어지면서, 그 어려운 그리스어 책을 읽을 사람도, 지킬 곳도 줄었거든요.
좋은 보물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읽을 사람이 사라지면 보물은 묻혀 버리는 것과 같아요.
아베로에스는 이 잊힌 책을 그냥 읽고 끝내지 않았어요.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이 말은 이런 뜻이에요" 하고 해설을 붙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어려운 교과서 옆에 붙는 친절한 자습서를 통째로 쓴 셈이에요.
그것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거의 모든 책에 말이지요.
어찌나 꼼꼼했던지, 훗날 유럽 사람들은 그의 이름 대신 그냥 "주석가"라고 불렀어요.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설한 사람은 많았지만, "그 해설가"라고 하면 다들 아베로에스를 떠올렸다는 뜻이에요.

고대 그리스의 지혜는 곧장 유럽으로 이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슬람 세계를 한 바퀴 돌아서 되돌아왔어요.
마치 물이 산을 넘어 다른 마을로 흘러갔다가, 더 맑아져 돌아오는 것과 비슷해요.
| 단계 | 무슨 일이 있었나 |
|---|---|
| 고대 그리스 | 아리스토텔레스가 책을 씀 |
| 이슬람 세계 | 아랍어로 번역하고 아베로에스가 해설을 붙임 |
| 중세 유럽 | 그 해설서를 라틴어로 옮겨 대학에서 배움 |
12세기부터 유럽 학자들은 아베로에스의 주석서를 라틴어로 번역해 읽기 시작했어요.
갓 생겨난 파리와 옥스퍼드 같은 대학에서 이 책들은 큰 화제가 됐어요.
학생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우려면 먼저 아베로에스의 해설부터 펼쳤지요.
유럽이 고대 철학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문 앞에, 아베로에스가 열쇠를 쥐고 서 있던 거예요.

아베로에스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가잘리라는 이름난 학자가 있었어요.
그는 "철학자들의 모순"이라는 책에서, 머리로만 따지는 철학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세게 몰아붙였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많던 한 친구를 누군가 조목조목 흉본 것과 비슷해요.
많은 사람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요.
아베로에스는 가만있지 않았어요.
"모순의 모순"이라는 책을 써서, 가잘리의 비판을 한 대목씩 되받아쳤어요.
제목부터 "네 지적이야말로 앞뒤가 안 맞아" 하고 맞선 거예요.
철학은 위험한 게 아니라 세상을 더 또렷이 보게 돕는 도구라는 게 그의 믿음이었어요.
이렇게 그는 평생 이성으로 생각하는 일을 힘껏 변호했어요.
아베로에스가 살던 세상에서는 종교의 가르침이 무엇보다 컸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물었어요.
머리로 따지는 철학과 마음으로 믿는 종교가 서로 다른 답을 내놓으면 어쩌지요?
아베로에스의 대답은 이랬어요.
둘은 같은 산꼭대기에 오르는 서로 다른 길일 뿐이라고요.
철학은 차근차근 따져서, 종교는 이야기와 비유로 진리에 다가가지만, 도착하는 곳은 하나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생각하는 일과 믿는 일이 원래 싸울 필요가 없다고 봤어요.
이 생각은 뒷날 유럽에서 큰 논쟁을 일으켰어요.
그의 책을 열렬히 따르는 학자들이 생기자, 반대로 위험하다며 가르치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도 나왔어요.
아베로에스 자신도 말년에는 그의 책이 불태워지고 잠시 도시에서 쫓겨나는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만큼 그의 물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세게 흔들었다는 뜻이에요.
아베로에스의 영향은 그가 죽은 뒤에 오히려 더 커졌어요.
유럽 최고의 신학자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베로에스의 해설을 열심히 읽으면서, 어떤 대목은 받아들이고 어떤 대목은 조목조목 반박했어요.
상대를 무시한 게 아니라, 진지하게 맞붙을 만큼 무게 있는 상대로 대접한 거예요.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저승을 그린 긴 시에서,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존경받는 옛 현인들이 모인 자리에 아베로에스를 넣었어요.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 곁에 나란히 세운 거예요.
종교가 다른 사람에게 이만한 자리를 내준 건 흔한 일이 아니었어요.
믿음이 서로 달라도 좋은 생각은 국경과 종교를 넘어 이어진다는 것을, 아베로에스의 이야기가 잘 보여 줘요.
아베로에스는 잊혔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되살린 해설가였고, 이슬람 세계에 쌓인 지혜를 유럽으로 건네준 다리였어요.
그가 없었다면 유럽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훨씬 늦게, 어쩌면 반쪽만 되찾았을지도 몰라요.
이름은 낯설어도, 오늘 우리가 배우는 서양 철학의 밑바탕 한쪽을 이 12세기 철학자가 조용히 받쳐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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