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를 전시할까, 한병철의 투명사회와 디지털 파놉티콘

모든 걸 보여 주는데 왜 마음이 편치 않을까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는 아침밥 사진을 찍어 올렸을 거예요. 어디에 갔는지, 무얼 먹었는지, 기분이 어떤지 우리는 자꾸 보여 주려고 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다 보여 주면 후련할 것 같은데, 막상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어쩐지 더 지치고 허전할 때가 있어요. 분명 사람들과 이어져 있는데도요.
1959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한병철이라는 사람은 바로 이 장면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그는 '투명사회'라는 책에서 묻습니다. 모든 걸 환하게 드러내는 우리 시대가, 정말 우리가 믿는 것만큼 자유롭고 좋은 걸까 하고요.

옛날 감옥에는 가운데 망루가 있었어요
먼저 오래된 그림 하나를 떠올려 볼게요. 둥글게 생긴 감옥이 있어요. 한가운데에 높은 망루가 하나 서 있고, 죄수 방들은 그 둘레를 빙 둘러싸요. 망루 안에서는 모든 방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죄수 쪽에서는 망루 안이 어두워서 지금 감시당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이 구조에는 '파놉티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요. 무서운 점은 이거예요. 감시당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죄수들은 늘 누가 본다고 여기고 알아서 얌전해져요. 사람을 길들이는 건 채찍이 아니라, '지금 보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인 셈이죠.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 망루에 올라가요
그런데 한병철은 오늘날의 감시는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해요. 옛 감옥에서는 누가 억지로 가두고 지켜봤지만, 지금은 아무도 시키지 않아요. 우리가 스스로 사진을 찍어 올리고, 좋아요 숫자를 세고, 보여 줄 거리를 부지런히 찾아다녀요.
그래서 그는 이것을 '디지털 파놉티콘'이라고 불러요. 가장 큰 차이는 이거예요. 우리는 갇힌 죄수이면서, 동시에 즐겁게 망루에 올라가는 감시자이기도 해요. 감시가 괴롭기는커녕 오히려 신나는 일이 되어 버려서, 우리는 거기서 빠져나갈 생각조차 잘 안 해요. 창살이 없는 감옥이 가장 빠져나오기 어려운 법이에요.

다 보여 주는 게 정말 좋기만 할까
'투명하다'는 말은 보통 칭찬이에요. 숨김없이 솔직하다는 뜻이니까요. 유리컵은 투명해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한눈에 보이죠. 그래서 우리는 사회도, 사람도 투명할수록 무조건 좋다고 쉽게 믿어요.
한병철은 바로 여기서 살짝 멈춰 서요. 무언가가 전부 다 보이려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 먼저 사라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늘도, 비밀도, 머뭇거림도요. 친구를 한 명 떠올려 볼게요. 우리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건 그 애를 다 알아서가 아니라, 아직 모르는 면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해요. 전부 다 들여다보이는 사이에는 설렘도, 궁금함도 들어설 자리가 없어요. 투명함은 깨끗해 보이지만, 그만큼 밋밋하기도 한 거죠.

전부 전시되면 값이 닳아요
한병철이 또 하나 걱정하는 건 '전시'예요. 박물관 유리장 속 물건은 가만히 놓여서 오직 보이기 위해 존재해요. 그는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진열대 위에 올린다고 봐요.
아주 옛날 그림은 동굴이나 사원 깊은 곳에 있어서, 평소엔 잘 안 보여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귀하게 여겨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예요. 보이지 않으면 아예 없는 셈이 돼요. 그래서 우리는 쉬지 않고 보여 줄 거리를 만들어 내요. 문제는 이거예요. 무엇이든 더 많이 보이려고 전시될수록 그 값이 조금씩 닳는다는 점이에요. 밤새 켜 둔 가게 불빛처럼, 늘 환할수록 특별함은 점점 옅어져요.

환한 세상에는 쉴 그늘이 없어요
그럼 이 이야기가 왜 중요할까요. 다 보여 주는 세상은 얼핏 솔직하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한병철은 거기엔 쉴 그늘이 없다고 말해요. 비밀도 거리도 없이 모두가 서로를 보고 또 보이는 곳에서는, 잠깐 숨어서 한숨 돌릴 데가 없거든요. 아침에 휴대폰을 내려놓을 때 느낀 그 허전함의 정체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몰라요.
이건 누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 생긴 일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즐겁게 한 장 한 장 만들어 가는 풍경이라서, 오히려 발을 빼기가 더 어려워요.

정리
한병철은 다 보여 주는 '투명사회'가 정말 자유로운지 의심한 철학자예요. 옛 감옥의 파놉티콘에서는 누군가 억지로 감시했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우리가 스스로 망루에 올라 자신을 전시해요. 그런데 모든 게 환하게 드러나면 비밀도, 궁금함도, 잠시 쉴 그늘도 함께 사라져요. 다음에 무언가를 올리기 전에 잠깐, '이건 내가 보여 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보여 줘야 할 것 같아서일까' 하고 한 번 멈춰 보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