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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철학적 좀비는 나와 원자 하나까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지만, 속에서 느끼는 것은 하나도 없는 가상의 존재예요. 데이비드 차머스는 그런 존재를 모순 없이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의식을 물질만으로 전부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했어요.
친구와 매운 떡볶이를 먹는다고 해 볼게요. 친구는 얼굴을 찌푸리고 "아 맵다" 하면서 물을 벌컥벌컥 마셔요. 그런데 그 친구 속에서는 매운 느낌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 볼게요. 화끈거림도, 아픔도, 아무것도요. 겉은 완벽하게 똑같은데 안은 텅 비어 있는 거예요. 철학에서 말하는 좀비가 바로 이런 존재예요.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철학적 좀비를 이렇게 설명해요. 물리적인 면에서 우리와 정확히 똑같지만 의식 경험은 전혀 없는 가상의 존재, 행동으로는 의식 있는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존재요.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그것으로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가 전혀 없는" 존재고요.
여기서 두 가지를 짚고 갈게요. 첫째, 좀비는 행동만 사람을 흉내 내는 로봇이 아니에요. 원자 하나, 신경세포 하나까지 나와 완전히 같다고 가정된 존재예요. 둘째, 이 좀비가 실제로 어딘가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는 사실상 없어요. 좀비 논증을 지지하는 쪽조차 그래요. 오직 "상상할 수 있느냐"만 따지는 사고실험이에요.
데이비드 차머스는 1966년 4월 20일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났어요. 애들레이드 대학교에서 순수수학을 전공했고,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에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지도를 받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박사논문 제목이 '의식 이론을 향하여'였으니 평생 붙들 주제를 처음부터 잡은 셈이에요. 지금은 뉴욕대학교에서 철학과 신경과학을 가르쳐요.
1995년 논문 '의식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기'에서 그는 의식 연구를 두 덩어리로 갈랐어요.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요. 쉬운 문제는 자극을 구별하고 분류하는 능력,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는 능력, 자기 마음 상태를 말로 보고하는 능력, 주의를 어디에 둘지 정하는 능력, 깨어 있음과 잠의 차이 같은 것들이에요. 쉽다고 해서 금방 풀린다는 뜻은 아니고, 언젠가 뇌 과학이 원리를 밝혀 줄 종류라는 뜻이에요.
어려운 문제는 결이 달라요. 차머스는 이렇게 물어요. "전자기파가 망막에 닿고 시각 시스템이 그것을 구별하고 분류할 때, 왜 그 구별과 분류가 선명한 빨강이라는 감각으로 경험될까요?" 다르게도 물어요. "왜 이 모든 정보 처리가 아무 느낌 없이 깜깜한 채로 일어나지 않을까요?"
좀비 논증은 세 걸음으로 움직여요.
요리로 바꿔 볼게요. 재료와 불 세기와 조리 순서를 레시피대로 완벽히 똑같이 맞췄는데 맛만 안 나는 요리가 정말 가능하다면, 맛은 레시피에 다 적혀 있지 않다는 뜻이 되죠. 차머스는 의식이 그런 위치에 있다고 본 거예요.
싸움이 붙는 곳은 두 번째 걸음이에요. 상상할 수 있다고 진짜 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차머스는 이 연결을 떠받치려고 프랭크 잭슨과 함께 발전시킨 2차원 의미론을 끌어와요. 한 단어가 1차 내포와 2차 내포라는 두 층의 뜻을 갖는다고 보는 틀이에요. 그는 1996년 책 '의식하는 마음'에서 이 논의를 본격적으로 펼쳤어요. 좀비 사고실험 자체를 그가 처음 만든 건 아니고, 널리 알리고 체계를 세운 사람이에요.
자주 뒤섞이는데 다른 이야기예요. 어려운 문제, 곧 하드 프라블럼은 "왜 물리적 과정에 느낌이 따라붙는지 설명이 안 된다"는 설명적 간극의 문제예요. 좀비 논증은 그 간극을 발판 삼아 "그러니 물리주의는 틀렸다"는 결론까지 밀고 가는 별도의 논증이고요. 앞은 설명이 막혔다는 진단, 뒤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주장이에요.
| 누가 | 어떤 반박인가 |
|---|---|
| 대니얼 데닛 | 좀비를 제대로 상상한 적이 없다. 의식은 떼어낼 수 있는 하나의 속성이 아니라 여러 기능이 얽힌 거대한 복합체다 |
| 로버트 커크 | 아무 인과적 작용도 하지 않는 느낌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알 방법 자체가 없다 |
| 브라이언 로어 | 개념이 다르다고 존재까지 다른 건 아니다. 물리주의자도 좀비를 상상은 할 수 있다 |
| 프랭키시·피치니니 | 물리적 사실만으로 의식이 보장되는 안티좀비도 똑같이 상상된다. 두 번째 걸음이 무너진다 |
차머스 본인도 물러선 대목이 있어요. 스톨야르와 함께 러셀식 일원론을 고려하면 좀비 세계가 실은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고 논했거든요.
승부는 안 났어요. 2013년 차머스와 부르제가 전문 철학자들에게 물었을 때 답이 네 갈래로 갈렸어요. 36퍼센트는 상상은 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23퍼센트는 가능하다, 16퍼센트는 상상조차 안 된다, 25퍼센트는 기타였어요. 2019년 스탠퍼드 철학백과 항목을 고쳐 쓴 커크는 양쪽 논증이 정교해지긴 했어도 더 설득력 있어지진 않았다고 적었어요.
챗봇이 "오늘 좀 슬퍼요"라고 말할 때, 안쪽에 정말 슬픈 느낌이 있는지 우리는 밖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말과 행동은 얼마든지 똑같을 수 있으니까요. 좀비 사고실험이 30년 전에 그려 둔 곤란함이 지금 AI 논쟁의 한복판에 그대로 서 있는 셈이에요.
장면 하나만 덧붙일게요. 1998년 브레멘의 한 술집에서 차머스는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와 내기를 했어요. 25년 안에 뇌에서 의식의 신경 서명을 찾아내겠다며 코흐가 와인 한 상자를 걸었죠. 2023년 6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의식과학연구협회 학회에서 두 사람은 아직 답이 안 나왔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고, 코흐는 패배를 받아들이며 와인을 건넸어요.
철학적 좀비는 겁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의식이 물질에서 저절로 따라 나오는지 묻기 위해 만든 도구예요. 차머스는 그 도구로 어려운 문제를 눈에 보이게 만들었고, 좀비 논증으로 물리주의를 흔들려 했어요. 데닛부터 안티좀비까지 반박이 줄줄이 붙었고 설문 결과는 네 갈래로 갈렸으니, 이 사고실험을 외울 때 결론까지 함께 외울 필요는 없어요. 기억할 건 이거예요.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부 알아내도, 왜 그게 깜깜하지 않고 무언가로 느껴지는지는 아직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어요. 와인 한 상자가 25년 뒤에 그냥 건네진 이유도 거기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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