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 공장주 아들이 맨체스터 뒷골목에서 본 것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는 엥겔스가 1844년 9월부터 1845년 3월까지 맨체스터의 가난한 동네를 직접 걸으며 쓴 첫 책이에요. 이 책은 노동자가 일찍 죽는 일을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가 저지른 살인, 곧 '사회적 살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장주 아들이 공장 도시에서 본 것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20년 11월 28일 프로이센 라인주 바르멘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바르멘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했고, 영국 맨체스터의 면방적 공장 '에르멘 앤드 엥겔스'에도 동업자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엥겔스는 1842년 10월부터 1844년까지 그 공장 일로 맨체스터에 머물렀어요.
쉽게 말하면 가업을 물려받을 아들이 실습을 나간 셈이에요.
그런데 그는 스무 살 무렵 상업 견습 생활을 '개 같은 삶'이라고 부를 만큼 이 길을 싫어했습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장부를 보고, 남는 시간에는 그 공장을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사는지 보러 다녔어요.
그렇게 모은 것을 1844년 9월부터 1845년 3월까지 원고로 옮겼고, 184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독일어로 펴냈습니다.
엥겔스의 첫 책이에요.
어떻게 조사한 책일까요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주장보다 방법에 있어요.
엥겔스는 맨체스터의 앤코츠, 리틀아일랜드 같은 빈민가를 직접 걸어 다니며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기에 사망률 통계, 공장 조사보고서, 지역 신문 기사를 겹쳐 놓았어요.
음식점 후기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남이 쓴 글을 옮겨 적은 후기가 아니라, 직접 가게에 가서 먹어 보고 손님들에게 물어보고 위생 점검 기록까지 떼어 본 후기예요.
그래서 오늘날 이 책은 사회학 현장조사의 초기 사례로 꼽히고, 산업혁명과 노동의 역사를 다루는 연구에서 1차 사료로 쓰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출판부 같은 곳에서 지금도 학술판이 나와요.
이 시기 엥겔스는 맨체스터에서 노동계급 여성 메리 번스와 정식 결혼 없이 오랜 동반 관계를 맺었어요.
역사가들은 메리가 그를 노동자 거주지로 안내했으리라고 봅니다.
다만 메리를 아일랜드 태생이라거나 엥겔스 공장의 여성 노동자였다고 쓴 설명은 널리 퍼져 있어도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어요.
사회적 살인이 무슨 뜻일까요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이렇게 시작해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죽음에 이르는 상해를 입히면 우리는 그것을 과실치사라 부르고, 가해자가 그 상해가 치명적일 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살인이라 부른다."
이어지는 논리는 단순합니다.
좁고 축축한 집, 더러운 물, 긴 노동시간이 사람을 일찍 죽게 만든다는 사실을 지배계급이 이미 알고 있다면,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라는 거예요.
후대 학자들은 이 개념을 네 가지로 정리합니다.
노동자가 생활과 노동 조건 때문에 일찍 죽고, 그 조건은 착취에서 나오고, 그 조건으로 이익을 얻는 쪽이 있고, 알면서도 그대로 둔다는 것.
한 가지 짚을 게 있어요.
'사회적 살인'은 엥겔스가 혼자 만든 말이 아닙니다.
노동자 조직들이 이미 쓰던 표현을 가져다 쓴 것이라고 엥겔스 자신이 밝혔어요.
초판 서문에서 그는 노동계급의 처지가 "오늘날 존재하는 사회적 비참함의 가장 높고 가장 감춰지지 않은 정점"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운동의 실제 출발점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책은 믿을 만한 기록일까요
여기서는 정직할 필요가 있어요.
이 책의 사료 신뢰도는 아직 학계에서 완전히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 입장 | 누가 | 요지 |
|---|---|---|
| 비판 | 헨더슨과 챌로너, 1958년 | 원자료를 전수 검토한 결과 통용되는 학문 기준에 못 미치고 정치 선전물에 가깝다 |
| 옹호 | 에릭 홉스봄 | 저서 『Labouring Men』에서 엥겔스의 서술을 적극 변호했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역사가들도 학생에게 권할 만한 기록으로 받아들였다 |
| 절충 | 당대 독일의 한 경제학자 | 세부적으로는 진실이지만 전체로서는 부정확하다 |
흥미로운 건 당대의 부르주아 비평가들조차 세부 관찰이 정확하다는 점은 인정했다는 거예요.
그들이 반발한 쪽은 관찰이 아니라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완벽한 통계서로도, 순전한 선전물로도 못 박지 않는 편이 정확해요.
자주 헷갈리는 두 가지
첫째, 이 책은 마르크스와의 공저가 아니라 엥겔스 단독 저작입니다.
두 사람은 1842년에 처음 만났고 1844년 파리에서 다시 만나면서 평생의 동반자가 됐는데, 그때 이 원고가 마르크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마르크스는 이 작업을 "경제 범주 비판에 관한 뛰어난 스케치"라고 평했습니다.
본격적인 공동 저술은 이 책 다음부터 시작돼요.
둘째, 영어판 제목에 붙은 '1844년의'라는 말은 1845년 독일어 원제에 없었어요.
1887년 뉴욕에서 나온 영어판부터 붙었습니다.
번역자는 플로렌스 켈리였고, 런던판은 1891년 무렵에 나왔어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남았을까요
방법이 남았어요.
어떤 사람들이 왜 더 아프고 더 일찍 죽는지 물을 때, 현장을 직접 보고 통계를 겹쳐 확인하는 방식 말이에요.
산업재해나 주거 문제를 두고 구조의 문제라고 말할 때, 그 말투의 뿌리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엥겔스는 그 뒤로도 반세기 가까이 일했어요.
1883년 마르크스가 죽은 뒤에는 남은 원고를 정리해 『자본론』 2권을 1885년에, 3권을 1894년에 펴냈습니다.
자신은 1895년 8월 5일 런던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언에 따라 화장한 뒤 유골은 이스트본 앞바다에 뿌려졌어요.
정리
스물넷 무렵의 청년이 가업을 배우러 간 도시에서 장부 대신 골목을 봤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은 숫자로 완결된 책이 아니라, 걸어서 확인한 것과 통계로 확인한 것을 겹쳐 놓은 책이에요.
그래서 어떤 대목은 지금도 반박당하고, 어떤 대목은 백 년 넘게 인용됩니다.
이 책을 기억하는 방법은 하나면 충분해요.
가난 때문에 일찍 죽는 일을 누군가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건 불운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