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에게 빚진 게 있다고 말한 철학자 토머스 스캔런

친구들과 과자를 나눌 때 생기는 일
친구 다섯 명이 모여서 과자 한 봉지를 나눠 먹는다고 해 볼게요. 누군가 "내가 사 왔으니까 내가 절반 먹을래"라고 하면, 나머지 네 명은 바로 "그건 좀 아니지"라고 받아치죠. 반대로 "똑같이 다섯으로 나누자"라고 하면 아무도 화내지 않아요. 왜 한쪽은 거절당하고 한쪽은 통과될까요? 우리 머릿속에는 '이건 다른 사람한테 대놓고 말해도 떳떳한가'를 재는 자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토머스 스캔런은 바로 이 자의 정체를 평생 파고든 철학자예요.
토머스 스캔런은 누구인가요
스캔런은 1940년에 태어난 미국 철학자예요. 오랫동안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가 1998년에 펴낸 책 제목이 그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정도예요.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은 아까 그 과자 이야기와 똑같은 질문이에요.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대우를 해 줄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걸 따지는 거죠.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규칙이라는 기준
스캔런의 핵심 생각은 의외로 단순해요. 어떤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알고 싶으면, 그 행동을 허락하는 규칙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래요. 그리고 그 자리에 영향받는 모든 사람을 앉혀 놓고 물어보는 거예요. "이 규칙, 받아들일 수 있어요?" 만약 그중 누구라도 합당한 이유로 "난 이건 못 받아들여"라고 거절할 수 있다면, 그 행동은 잘못된 거예요. 반대로 아무도 제대로 된 이유를 대며 거절하지 못하는 규칙이라면, 그건 옳은 거고요.
이걸 어려운 말로 '계약주의'라고 불러요. 사람들이 마주 앉아 함께 살 규칙을 정하는 모습을 떠올린 거예요. 단, 진짜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서로에게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삼자는 비유예요.

다수의 행복보다 한 사람의 거절
스캔런의 생각이 왜 특별한지는 다른 입장과 비교하면 잘 보여요. 흔히 우리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은 일'이라고 여기죠. 그런데 이 계산법은 위험할 때가 있어요. 열 명 중 아홉 명이 즐겁자고 한 명에게 큰 고통을 떠넘겨도, 합계만 보면 이득처럼 보이거든요. 스캔런은 여기에 제동을 걸어요. 행복의 총합을 더하지 말고, 가장 손해 보는 그 한 사람이 "난 이 규칙 거절할래"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보라고요.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이유를 대며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흥미롭게도 이 책은 2016년 즈음 한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철학책치고는 꽤 알려졌어요. 어려운 윤리 이론이 안방까지 들어간 셈이죠.
정리
토머스 스캔런이 우리에게 건넨 건 거창한 도덕 목록이 아니라, 단순한 질문 하나예요.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을, 영향받는 모든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중 누군가 합당하게 거절하지는 않을까." 과자를 나눌 때든 사회의 규칙을 정할 때든, 우리가 서로에게 뭔가를 빚지고 있다면 그 빚은 바로 '서로에게 이유를 대 줄 의무'라는 거예요. 다음에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양보하거나 요구할 때, 이 질문 하나만 떠올려도 스캔런의 생각을 절반은 쓰고 있는 거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