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에티카와 신 즉 자연, 파문당한 사람이 도달한 하나의 실체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계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스물세 살에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한 뒤, 렌즈를 갈아 생계를 이으며 『에티카』를 쓴 네덜란드 철학자예요. 스피노자는 존재하는 실체가 오직 하나뿐이며 그 실체가 곧 신이자 자연이라고 논증했고, 이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는 명제로 근대 유럽의 신 개념을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그의 주요 저작은 대부분 그가 죽은 해에 친구들이 익명으로 묶어 낸 유고집으로 세상에 나왔어요.
| 항목 | 내용 |
|---|---|
| 생몰 | 1632년 11월 24일 암스테르담 출생, 1677년 2월 21일 헤이그 사망(44세) |
| 이름 | 히브리어 ברוך שפינוזה(바뤼흐), 포르투갈어 Bento de Espinoza, 라틴어 필명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
| 활동지 | 암스테르담, 레이던, 라인스부르크, 포르뷔르흐, 헤이그(네덜란드 공화국) |
| 전통 | 합리론, 실체 일원론(substance monism) |
| 대표 저작 |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1663), 『신학정치론』(1670, 익명 출판), 『에티카』(1677년 유고집에 수록) |
| 핵심 개념 | 신 즉 자연, 실체와 속성과 양태,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 코나투스 |
| 생계 | 렌즈 연마와 망원경·현미경 제작, 가르치는 일 |
| 1차 자료 문제 | 1656년 파문장에 구체적 신학 쟁점이 기록되지 않음, 주요 저작 다수가 사후 익명 출판 |
스피노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활동한 합리론 철학자로, 신과 자연을 하나의 실체로 보는 세계관을 논증으로 세운 사람이에요. 1632년 11월 24일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계 유대인(마라노) 가문에서 태어났고, 1677년 2월 21일 헤이그에서 마흔넷에 세상을 떠났습니다(영어 위키백과).
이름이 여럿인 것도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줘요. 히브리어로는 ברוך שפינוזה(바뤼흐), 포르투갈어로는 Bento de Espinoza, 라틴어 필명은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였습니다. 1656년 파문을 겪은 뒤로는 유대식 이름 바뤼흐 대신 라틴어 이름 베네딕트를 주로 썼어요(위키백과).
스피노자는 대학에 자리를 잡은 직업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1656년부터 1661년 사이에는 암스테르담과 레이던 등지에서 가르치는 일과 렌즈 연마, 망원경·현미경 제작으로 먹고살았어요. 편지를 봉할 때는 '조심하라(Caute)'라는 라틴어 문구와 가시 돋친 장미가 새겨진 인장 반지를 썼습니다.
왜 스물세 살에 파문당했나요
스피노자는 1656년 7월 27일 암스테르담 탈무드 토라 공동체 지도부로부터 헤렘, 곧 파문을 선고받았어요. 아보아브 데 폰세카 등이 포함된 지도부가 내린 이 파문은 그 공동체 역사상 가장 가혹한 것이었습니다(영어 위키백과).
파문 선고문의 문구는 이렇습니다. '천사들의 결의와 성인의 판결에 따라 스피노자를 저주하고 제명하여 영원히 추방한다. 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저주받으라. 나갈 때도 들어올 때에도 저주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그를 용서 마옵시고 분노가 이자를 향해 불타게 하소서! 어느 누구도 그와 교제하지 말 것이며 그와 한 지붕에서 살아서도 안 되며 그의 가까이에 가서도 안 되고 그가 쓴 책을 봐서도 안 된다.'(위키백과)
다만 파문의 이유는 분명하게 남아 있지 않아요. 파문장은 '가증스러운 이단'과 '괴이한 행위'만을 사유로 적었을 뿐, 어떤 신학적 주장이 문제였는지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3월에 있었던 일도 배경으로 거론돼요. 1654년 아버지 미겔이 죽으면서 물려받은 수입상 가업이 제1차 영란전쟁으로 선박과 화물을 나포당해 빚더미에 오르자, 스피노자는 아버지의 빚을 면하려고 암스테르담 시 당국에 자신을 '고아'로 선언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공동체 내 분쟁은 공동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시나고그 규정을 어긴 행동이었고, 상인으로서의 평판에도 영구적인 손상을 남겼어요.
이 파문은 끝내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파문과 달리 스피노자가 참회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신 즉 자연이 무슨 뜻인가요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은 스피노자가 유일한 실체인 신을 자연과 동일시하며 쓴 표현이에요. 신이 자연 바깥에서 자연을 만들어 놓고 지켜보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신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이 말을 '신은 눈에 보이는 물질 덩어리다'로 읽으면 스피노자 본인의 부인을 받게 돼요. 그는 올덴부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신을 (일종의 덩어리 내지 물체적 물질로서의) 자연과 동일시한다는 일각의 견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썼습니다(영어 위키백과).
여기서 스피노자가 나눈 두 자연을 알아두면 도움이 돼요. 그는 자연을 산출하는 자연인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과 산출된 자연인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으로 구분했습니다(위키백과). 칼 야스퍼스는 신 즉 자연이라는 표현을 신을 능산적 자연으로 본 것이지 소산적 자연과 단순히 같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요.
실체 일원론이 왜 중요한가요
실체 일원론은 존재하는 실체가 신 하나뿐이라는 스피노자의 결론이고, 그의 철학 전체가 여기서 갈라져 나옵니다. 『에티카』 1부 명제14가 그 핵심이에요. '신을 제외하고는 어떤 실체도 존재할 수 없고 파악될 수도 없다'(스탠퍼드 철학백과).
논증의 출발점은 정의들입니다. 스피노자는 실체를 '그 자체 안에 있으며 그 자체를 통해 파악되는 것'으로 정의했는데, 이는 마이모니데스의 정의를 따른 것이었어요. 1부 정의1에서는 자기원인(causa sui)을 '그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곧 그 본성이 존재하는 것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정의6에서는 신을 '무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실체이며, 그 각 속성은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논쟁적인 대목이 명제9예요. 스피노자는 '각 사물이 지닌 실재성 내지 존재가 많을수록 그것에 속하는 속성도 많다'는 원리를 명시적인 논증 없이 제시하는데, 데카르트는 하나의 실체가 하나 이상의 주요 속성을 가질 수 없다고 봤기 때문에 이 대목은 이후 큰 쟁점이 되었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양태는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나요
양태(mode)는 스피노자 체계에서 신 이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에티카』 1부 명제15에 따라 신 아닌 모든 것은 신의 양태 내지 변용(affection)이고, 양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 채 실체에 의존합니다. 색깔 같은 성질, 크기 같은 관계, 개별 사물들이 모두 여기 해당해요(영어 위키백과).
양태는 다시 무한양태와 유한양태로 나뉩니다. 무한양태 중에서 신의 속성의 절대적 본성에서 곧바로 따라 나오는 것이 직접무한양태(1부 명제21), 거기서 다시 따라 나오는 것이 매개무한양태(명제22)예요. 스피노자는 게오르크 슐러에게 보낸 서한(Ep64)에서 무한양태의 예로 '우주 전체의 모습(the face of the whole universe)'과 '절대적으로 무한한 지성(absolutely infinite intellect)'을 들었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문제는 유한양태입니다. 1부 명제28의 증명에서 스피노자는 유한양태가 신의 속성의 절대적 본성으로부터 직접 따라 나올 수 없고 언제나 다른 유한양태에 의해 결정되며 그 계열이 무한히 소급된다고 말해요. 그렇다면 유한한 것이 대체 어떻게 무한한 신으로부터 나오는가. 이것이 이른바 '간극의 문제(problem of the gap)'이고,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 사후 1년 만에 이미 제기한 난제입니다.
오늘날 학계도 이 문제를 두고 갈립니다. 컬리(Curley, 1969)는 유한양태가 신의 본성으로부터 부분적으로만 따라 나온다고 보아 스피노자를 전면적 필연론자로 읽지 않고, 개럿(Garrett, 1991)은 유한양태 전체 계열이 신의 절대적 본성에서 간접적으로 따라 나오므로 개별 유한양태도 결국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석해요.
코나투스는 무엇인가요
코나투스(conatus)는 자아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완성하려는 욕구 내지 노력을 뜻하는 말로, 스피노자 윤리학의 핵심 개념이에요(위키백과).
이 개념이 윤리학의 자리에 놓인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은 신이라는 유일한 실체의 양태이고, 그 양태가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힘이 곧 코나투스예요. 선악이 바깥에서 주어진 계명이 아니라 이 힘의 증감에서 이해된다는 점에서, 그의 윤리학은 명령이 아니라 자연학에 가깝게 짜여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자유의지를 부정했나요
스피노자는 사람이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그 믿음 자체가 착각이라고 봤어요. 『에티카』의 유명한 대목이 그 논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갓난아기는 자유의지로 젖을 원한다고 믿고, 화난 소년은 자유의지로 복수를 원한다고 믿으며, 겁쟁이는 자유의지로 도망친다고 믿고, 술 취한 자는 술이 깨면 하지 않았을 말을 자유로운 정신의 명령으로 한다고 믿는다 ... 모두 자유로운 정신의 명령으로 말한다고 믿지만, 실은 말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누를 힘이 없다.'(영어 위키백과)
같은 생각을 그는 편지에서 더 짧게 정리했어요. 슐러에게 보낸 편지(Letter 58)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은 의식하지만 그 욕망을 결정짓는 원인은 의식하지 못한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욕망은 의식에 떠오르지만 그 욕망을 만든 원인은 의식 아래에 있다는 거예요.
에티카는 왜 죽은 뒤에야 나왔나요
『에티카』가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이유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그런 책을 내는 일이 실제로 위험했기 때문이에요. 스피노자가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름으로 낸 책은 두 권뿐이었고, 그중 하나가 1663년 라인스부르크에서 2주 만에 써낸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Renati Descartes principiorum philosophiae)였습니다(영어 위키백과).
1670년에 나온 『신학정치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은 가짜 출판사명과 가짜 출판지를 붙여 익명으로 나왔어요. 그럼에도 1674년 네덜란드 정부는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함께 이 책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했습니다(위키백과). 위험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어요. 친구 아드리안 코르바흐는 조직 종교를 비판하고 성서의 신적 저작성을 부인하는 책을 냈다가 투옥되어 감옥에서 죽었는데, 스피노자와 비슷한 견해였습니다.
결국 『에티카』, 『정치론』, 『헤브라이어 문법』, 서한집 등 미출간 원고는 로데베이크 마이어르, 게오르크 헤르만 슐러, 요하네스 바우마이스터 같은 친구들이 압수와 훼손을 피해 비밀리에 편집했고, 1677년 『Opera Posthuma』라는 유고집으로 익명 출판되었어요.
스피노자는 어떻게 살다가 죽었나요
스피노자는 자리와 보호를 마다하며 살았고, 마흔넷에 폐질환으로 죽었어요. 그는 1654년에서 1657년 사이 전직 예수회원이자 무신론자였던 프란시스퀴스 판 덴 엔덴에게 라틴어를 배웠고 이 무렵 데카르트 철학을 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1658년경에는 레이던 대학에서 데카르트 철학 강의를 청강했어요(영어 위키백과).
1663년 포르뷔르흐로 옮겨 살면서 네덜란드 공화국의 정치 지도자 얀 드 비트와 교유했고, 1670년에는 헤이그로 이주했습니다. 1673년경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제안한 철학 교수직을 거절했는데, 자유로운 사상 활동이 제약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학계는 추정해요. 1675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옛 제자 알베르트 부르흐가 그의 사상을 비난하는 편지를 보내오자, 그 가족의 요청을 받아 가톨릭교회를 조롱하고 종교적 미신을 규탄하는 답장을 썼습니다. 1676년에는 라이프니츠가 헤이그로 찾아와 사흘간 머물며 시사와 철학을 논했어요.
사인은 폐질환으로 결핵이 추정되며, 렌즈를 갈면서 마신 유리 분진에 의한 규폐증이 병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유언은 남기지 않았어요. 임종 때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참회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18세기 들어 사그라들었습니다. 죽고 나흘 뒤 헤이그 신교회(Nieuwe Kerk)에 다른 여섯 사람과 함께 합장되었고, 그때는 그를 위한 별도의 기념 명판이 없었어요. 지금 있는 기념 명판은 교회 바깥에 있습니다.
후대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스피노자는 죽은 뒤 100여 년이 지나 유럽 지성사 한복판으로 돌아왔어요. 1785년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가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는데, 레싱이 임종 때 자신이 '스피노자주의자'라고 고백했다는 소문이 계기였습니다. 이 논쟁은 유럽 지성사의 주요 쟁점이 되었어요(영어 위키백과).
헤겔의 평가는 그 위상을 한 문장으로 보여줍니다. '그대는 스피노자주의자이거나 아예 철학자가 아니다.'(위키백과)
20세기에는 아인슈타인의 말로 다시 대중에게 알려졌어요. 1929년 랍비 허버트 골드스타인이 전보로 신을 믿느냐고 묻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존재하는 것들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여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흔히 오해하는 것들
통념: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그가 이 말을 했다는 근거가 없어요. 이 문구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말로 알려져 있고, 독일 아이제나흐 루터 하우스 비석에 'Martin Luther'라는 이름과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잘못 유통되는 대표적인 사례예요(위키백과).
통념: 스피노자는 범신론자다.
'범신론'이라는 라벨 자체가 학계에서 논쟁적이에요. 스티븐 나들러 등은 스피노자의 신이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아니고 신성(divinity)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무신론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범재신론(panentheism), 고전적 범신론(Classical Pantheism) 같은 대안 용어도 제시되어 있어요(영어 위키백과).
통념: 신 즉 자연은 신이 물질 우주 덩어리와 같다는 뜻이다.
스피노자 본인이 올덴부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해석을 명시적으로 부인했어요. 칼 야스퍼스도 이 표현이 신을 능산적 자연으로 본 것이지 소산적 자연과 단순 동일시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합니다.
통념: 파문의 이유는 삼위일체 부정이나 영혼불멸 부정 같은 특정 교리 문제였다.
1656년 파문장에는 '가증스러운 이단'과 '괴이한 행위'만 적혀 있고 구체적인 신학 쟁점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후대의 여러 추정은 정황을 재구성한 것이지 1차 사료의 문구가 아닙니다.
통념: 스피노자는 1675년에 죽었다.
1677년 2월 21일이 정설이에요. 일부 한국어 자료 첫머리에 사망년도가 1675년으로 적힌 경우가 있는데, 같은 문서의 다른 서술과 영어 위키백과 모두 1677년으로 명시하므로 표기 오류로 보입니다. 인용할 때 반드시 교차확인하는 게 좋아요.
통념: 스피노자의 친할머니가 가톨릭교회에 의해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
이 서술은 한국어 위키백과에만 나오고,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를 상세히 다루는 영어 위키백과의 가계 서술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단일 출처 정보이므로 교차검증이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스피노자는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나요
스피노자는 1632년 11월 24일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1677년 2월 21일 헤이그에서 마흔넷에 죽었어요. 사인은 폐질환으로 결핵이 추정되며, 렌즈 연마 과정의 유리 분진에 의한 규폐증이 병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무신론자인가요 범신론자인가요
대중적으로는 범신론자로 불리지만 학계에서는 이 라벨이 논쟁적이에요. 스티븐 나들러 등은 스피노자의 신 개념이 숭배의 대상도 아니고 신성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무신론에 가깝다고 보고, 범재신론이나 고전적 범신론 같은 대안 용어도 제시되어 있습니다.
에티카는 언제 출판됐나요
『에티카』는 스피노자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고, 그가 죽은 1677년에 친구들이 익명으로 펴낸 유고집 『Opera Posthuma』에 실려 나왔어요. 로데베이크 마이어르, 게오르크 헤르만 슐러, 요하네스 바우마이스터 등이 압수와 훼손을 피해 비밀리에 편집했습니다.
스피노자는 왜 대학 교수직을 거절했나요
스피노자는 1673년경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 교수직 제안을 거절했어요. 자유로운 사상 활동이 제약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학계는 추정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스피노자의 신'은 무엇인가요
1929년 아인슈타인은 랍비 허버트 골드스타인의 전보 질문에 '나는 존재하는 것들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지, 인간의 운명과 행위에 관여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어요. 인격적으로 개입하는 신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적 질서와 같은 신을 가리킨 말입니다.
정리
스피노자를 읽을 때 붙잡을 것은 세 가지예요. 실체는 하나뿐이고 그것이 신이자 자연이라는 것, 우리를 포함한 모든 것은 그 실체의 양태라는 것, 그래서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도 원인을 모르는 욕망이라는 것.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름을 걸고 낸 책은 두 권뿐이었고, 『신학정치론』은 가짜 출판지를 달고 나왔다가 4년 만에 금지됐어요. 같은 생각을 책으로 낸 친구는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편지 봉인에 '조심하라'를 새겨둔 사람의 원고가 세상에 나온 건 그가 죽고 친구들이 몰래 묶어낸 뒤였고, 그 사이 그는 헤이그 신교회에 이름 없이 여섯 사람과 함께 묻혀 있었어요.
참고 자료
- 영어 위키백과
- 위키백과
- 스탠퍼드 철학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