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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9세기 아일랜드 출신 철학자예요. 대표작 『페리퓌세온』에서 세상 만물을 '자연'이라는 한 이름으로 묶어 네 종류로 나눴고, 신을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시작이자 모든 것이 돌아가는 끝에 두었어요.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9세기 프랑크 왕국의 대머리왕 샤를 앞에서 함께 밥을 먹던 중, 왕이 장난스레 물었대요.
"술꾼과 스코투스 사이엔 뭐가 있나?"
스코투스는 '아일랜드 사람'을 부르던 말이었어요.
에리우게나는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답했죠.
"식탁 하나요."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엔 딱 식탁 너비만큼의 거리뿐이라는 재치였어요.
왕을 은근히 술꾼 자리에 앉힌 대답이기도 했고요.
이 재치 있는 사람이 바로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예요.
800년대 초에 태어나 877년 무렵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해요.
이름 속 '스코투스'와 '에리우게나'는 둘 다 '아일랜드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당시 서유럽에서는 그리스어를 읽을 줄 아는 학자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는데, 그는 그리스어로 된 어려운 책을 라틴어로 척척 옮길 정도였어요.
그 실력 덕분에 왕의 궁정 학교로 초대받아 가르치고 글을 썼답니다.

에리우게나의 대표작은 『페리퓌세온』, 우리말로 옮기면 '자연의 구분에 관하여'예요.
여기서 그는 신부터 길가의 돌멩이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연'이라는 한 단어로 크게 묶어요.
그리고 이 자연을 네 종류로 나눠요.
어렵게 들리니 강물에 비유해 볼게요.
샘에서 물이 솟아 강을 이루고, 그 강은 흘러 흘러 바다로 돌아가요.
에리우게나가 본 세상도 이런 모습이에요.
모든 것이 신에게서 흘러나와, 한 바퀴 돌아 다시 신에게로 돌아가는 커다란 흐름이죠.
| 자연의 종류 | 뜻 | 강물 비유 |
|---|---|---|
| 창조하지만 창조되지 않는 자연 | 신, 모든 것의 시작 | 물이 솟는 샘 |
| 창조되면서 창조하는 자연 | 신 안에 담긴 설계도 | 갈라져 나오는 물줄기 |
| 창조되지만 창조하지 않는 자연 | 우리가 보고 만지는 세계 | 흐르는 강물 |
| 창조하지도 창조되지도 않는 자연 | 모든 것이 돌아가 쉬는 신 | 되돌아간 바다 |
둘째 자연이 조금 낯설죠?
집을 짓기 전 설계도를 떠올려 보세요.
아직 집은 아니지만 집이 될 밑그림이에요.
에리우게나는 신 안에 세상 모든 것의 밑그림이 먼저 들어 있다고 봤어요.
그 밑그림을 따라 우리가 사는 셋째 자연, 곧 나무와 강과 사람이 생겨나고요.
재밌는 점은 첫째와 넷째가 똑같이 '신'이라는 거예요.
신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샘이면서, 모든 것이 결국 돌아가 쉬는 바다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그 신은 대체 어떤 분일까요?
에리우게나의 대답은 좀 뜻밖이에요.
"신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말할 수 없어요."
너무 밝은 빛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눈이 부셔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이죠.
그에게 신은 딱 그런 존재였어요.
우리의 작은 말과 생각으로 담기엔 너무 커서, '신은 이런 분이다'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대신 '신은 이런 게 아니다'라고 하나씩 지워 나갈 수는 있어요.
신은 우리가 아는 어떤 사물도 아니고, 심지어 '있다'는 말조차 우리가 흔히 쓰는 뜻으로는 딱 맞지 않는다고 봤죠.
이렇게 '아니다, 아니다'를 거쳐 오히려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을 부정의 길이라고 불러요.
몰라서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너무 커서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겸손인 셈이에요.
문제는 그가 신마저 '자연'이라는 목록 안에 넣었다는 점이었어요.
자칫 '세상 만물이 그대로 신'이라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나무도 신이고 돌도 신이라면 교회로서는 곤란했으니까요.
실제로 후대 교회는 그의 책을 위험하다고 보아,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난 1225년에 『페리퓌세온』을 불태워 없애라고 명령하기까지 했어요.
그런데도 그의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신을 말로 다 담을 수 없다는 겸손한 태도는 훗날 중세 신비주의 사상가들에게로 이어졌고, 그가 그리스어에서 옮긴 책들은 동방과 서방의 생각을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었어요.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고도 살아남아, 8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셈이죠.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세상 만물을 '자연'이라는 한 이름으로 묶어 넷으로 나누고, 그 처음과 끝에 똑같이 신을 둔 9세기 철학자예요.
신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고 무엇이 아닌지만 말할 수 있다고 본 점, 그리고 신과 세계를 끊어진 둘이 아니라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본 점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어요.
강물이 샘에서 나와 바다로 돌아가듯, 모든 것이 신에게서 나와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본 사람.
그렇게 기억하면 그의 철학이 한결 가깝게 느껴질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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