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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 모든 것에 '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본 고대 그리스 철학자예요.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듯, 사람의 목적은 좋은 성품인 덕을 길러 행복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지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쪽의 작은 도시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열일곱 살에 아테네로 건너가 플라톤이 세운 학교 아카데미아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스무 해 가까이 공부했지요.
나중에는 마케도니아의 왕자였던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가 되었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이라는 자기 학교를 열었어요.
이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예요.
스승 플라톤, 그 위의 소크라테스와 함께 서양 철학의 뿌리를 놓은 세 사람 중 한 명이지요.

길에 떨어진 도토리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도토리는 그냥 딱딱한 열매가 아니라, 참나무가 되려는 작은 씨앗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되려는 방향'을 품고 있다고 봤어요.
이걸 목적론이라고 불러요.
저마다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지요.
칼은 무언가를 자르려고 있고, 눈은 보려고 있어요.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하려고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에게도 고유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잘 사는 것,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지요.
그의 철학이 결국 덕과 행복 이야기로 이어지는 건 이 때문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은 진짜 세계가 따로 있다고 봤어요.
우리 눈에 보이는 의자는 가짜고, 어딘가에 완벽한 의자의 원형인 '이데아'가 있으며 그게 진짜라는 거예요.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이 달랐어요.
진짜는 저 멀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가 만지고 보는 이 의자 안에 있다고 봤지요.
그래서 그를 현실주의자라고 불러요.
| 질문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
| 진짜는 어디에 있나 | 눈에 안 보이는 이데아 세계에 | 눈앞의 현실 사물 안에 |
| 어떻게 알 수 있나 | 머릿속으로 원형을 떠올려서 | 직접 보고 관찰해서 |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살펴 나누고 별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오늘날의 과학자에 가까운 철학자이기도 했어요.
좋은 사람은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은 뜻밖에 소박해요.
좋은 행동을 자꾸 하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운동을 반복하면 몸이 튼튼해지듯, 용기 있는 행동을 반복하면 용감한 사람이 되지요.
그가 말한 덕의 비결은 '중용'이에요.
한가운데를 고른다는 뜻이지요.
용기는 겁먹고 도망치는 것과 앞뒤 없이 덤비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있어요.
돈 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벌벌 떨며 아끼기만 하면 인색한 것이고, 흥청망청 쓰면 낭비예요.
그 사이의 알맞은 씀씀이가 바로 덕이지요.
이렇게 덕을 쌓으며 사는 삶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라고 불렀어요.
흔히 행복이라고 옮기지만, 잠깐의 기분 좋음이 아니라 한평생에 걸쳐 잘 사는 상태에 가까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룬 분야는 놀랄 만큼 넓어요.
논리학, 생물학, 정치학, 예술까지 손대지 않은 데가 없었지요.
그가 정리한 논리학의 기본 틀은 이천 년 넘게 학문의 바탕이 되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그의 사상이 기독교 신학과 만나 큰 흐름을 이루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오늘 우리에게 와닿는 건 습관 이야기예요.
좋은 사람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매일의 작은 행동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은, 지금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 모든 것에 되려는 목적이 있다고 봤고, 사람의 목적은 덕을 길러 잘 사는 것이라고 했어요.
진짜는 저 먼 세계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에 있다고 본 현실주의자였고, 좋은 성품은 좋은 행동을 반복하는 습관에서 온다고 믿었지요.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듯, 우리도 오늘의 작은 선택들로 조금씩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 중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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