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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낙사고라스는 뒤죽박죽 섞여 있던 우주를 정돈해 지금의 질서를 만든 힘을 '누스', 곧 마음(정신)이라고 불렀어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지성이 세상을 움직였다고 본 거예요.

기원전 500년쯤, 지금의 튀르키예 서쪽 해안에 있던 도시 클라조메나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이 사람이 아낙사고라스예요.
그는 젊은 시절 당시 그리스 세계의 중심이던 아테네로 건너가 30년 가까이 살면서 철학을 가르쳤어요.
아테네를 이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도 그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전해져요.
그가 살던 시대에는 해와 달, 번개 같은 자연 현상을 대부분 '신이 하는 일'로 설명했어요.
하지만 아낙사고라스는 달랐어요.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건 신이 아니라 자연의 재료로 이루어진 물체라고 생각했죠.
이런 태도 덕분에 그는 고대 과학적 사고의 문을 연 사람으로 꼽혀요.

아낙사고라스의 가장 중요한 생각은 '누스(nous)'예요.
우리말로는 마음, 또는 정신이라고 옮겨요.
그는 이렇게 상상했어요.
아주 먼 옛날, 세상 모든 재료가 죽처럼 뒤엉켜 한 덩어리로 섞여 있었어요.
그런데 그 상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누군가 휘저어 방향을 잡아 줘야 별과 땅과 생명이 갈라져 나오죠.
그 휘젓는 힘이 바로 누스예요.
교실을 떠올려 보세요.
책상과 의자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으면 그냥 짐이에요.
하지만 누군가 여기는 앞줄, 저기는 뒷줄 하고 정리하면 교실이 되죠.
아낙사고라스에게 누스는 그렇게 우주를 정리한 지성이었어요.
물질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재료에 질서와 방향을 준 힘이라는 점이 핵심이에요.

아낙사고라스에게는 또 하나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있었어요.
우리가 빵을 먹으면 그 빵이 살이 되고, 뼈가 되고, 머리카락이 돼요.
빵 어디에도 뼈나 머리카락은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의 답은 이랬어요.
빵 안에 이미 살과 뼈와 머리카락의 아주 작은 씨앗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눈에 안 보일 만큼 작아서 못 알아챌 뿐, 모든 것 안에는 모든 것의 조각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그는 만물 속에 만물의 몫이 있다고 말했어요.
비유하자면 물감을 아주 곱게 섞어 회색을 만든 것과 비슷해요.
회색으로 보여도 그 안에는 빨강, 파랑, 노랑이 다 들어 있잖아요.
세상 만물도 그렇게 온갖 재료가 섞인 상태이고, 무엇이 많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겉모습이 달라진다고 본 거예요.
아낙사고라스보다 앞선 그리스 철학자들도 세상은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를 물었어요.
다만 내놓은 답이 서로 달랐죠.
| 철학자 | 세상의 근본이라 본 것 | 특징 |
|---|---|---|
| 탈레스 | 물 | 모든 것이 하나의 재료에서 나온다 |
| 아낙시메네스 | 공기 | 공기가 옅어지고 짙어지며 만물이 된다 |
| 아낙사고라스 | 무수한 씨앗과 누스 | 재료는 원래 여럿이고, 마음이 그것을 정돈한다 |
앞선 철학자들이 세상의 재료는 하나라고 봤다면, 아낙사고라스는 재료는 처음부터 아주 많고 그것을 움직이고 정리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본 셈이에요.
'무엇으로 되어 있나'에 더해 '누가 질서를 주었나'라는 질문을 새로 얹은 거죠.
아낙사고라스는 겁 없는 말도 했어요.
그는 태양이 신이 아니라 벌겋게 달아오른 거대한 돌덩이이며, 그 크기가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보다 크다고 했어요.
달은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태양 빛을 반사할 뿐이고, 달에도 땅과 골짜기가 있다고 봤죠.
해와 달이 서로를 가리며 생기는 그림자로 일식과 월식도 설명했어요.
지금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엔 위험한 말이었어요.
해와 달을 신으로 모시던 사람들에게 그건 그냥 돌이라는 말은 신을 모독하는 소리로 들렸거든요.
결국 그는 신을 업신여겼다는 죄로 고발당해 아테네를 떠나야 했어요.
눈에 보이는 대로 정직하게 설명하려던 태도가 그를 위험에 빠뜨린 거예요.
아낙사고라스의 과학은 지금 기준으로는 틀린 대목이 많아요.
하지만 그가 남긴 태도는 오늘날 과학의 출발점과 똑 닮았어요.
자연을 신의 기분이 아니라 재료와 원리로 설명하려 한 것, 하늘의 별까지 관찰과 추론의 대상으로 삼은 것 말이에요.
누스라는 생각도 오래 살아남았어요.
뒤에 온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을 이끄는 지성이라는 이 발상을 두고 고민했고, 여기서 마음과 물질을 나누어 보는 오랜 물음이 이어졌어요.
아낙사고라스는 두 가지를 기억하면 돼요.
첫째, 뒤엉킨 우주를 정돈한 힘을 '누스', 곧 마음이라고 부르며 지성을 세상의 원인으로 처음 내세웠어요.
둘째, 태양을 돌덩이라 부를 만큼 자연을 신화가 아닌 재료로 설명하려 했고, 그 용기 때문에 고향을 잃기도 했죠.
눈에 보이는 세계를 겁내지 않고 묻는 태도, 그것이 그가 과학과 철학에 남긴 가장 큰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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