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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모세스 멘델스존은 이성과 신앙이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고 본 18세기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예요. 유대교를 지키면서도 국가가 개인의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종교가 다른 사람도 함께 사는 관용의 길을 열었어요.
1743년, 열네 살 소년 하나가 베를린 성문 앞에 섰어요.
그 시절 유대인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도시에 딱 하나뿐이었고, 소년은 스승을 따라 그 문으로 들어갔지요.
주머니는 거의 비어 있었어요.
이 가난한 소년이 훗날 "독일의 소크라테스"라 불린 철학자, 모세스 멘델스존이에요.
그는 정식 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비단 공장에서 장부를 적으며 돈을 벌었고, 남는 시간에 혼자 독일어와 라틴어, 프랑스어, 철학을 익혔지요.
1767년에 펴낸 『파이돈』이라는 책이 그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어요.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이 유럽 곳곳에서 읽히면서, 사람들은 그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빗대 불렀어요.
그에게는 평생의 친구도 있었어요.
극작가 레싱이에요.
두 사람은 종교가 달랐지만 서로 깊이 아꼈고, 레싱은 훗날 『현자 나탄』이라는 희곡에서 지혜로운 유대인 주인공을 그리며 멘델스존을 모델로 삼았다고 전해져요.
멘델스존이 살던 때, 많은 유대인은 독일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았어요.
쓰는 말도 달랐고, 바깥 학문과도 거리가 멀었지요.
그래서 그는 큰일을 하나 벌였어요.
유대교 경전인 토라를 독일어로 옮긴 거예요.
유대인 아이들이 이 번역을 읽으며 독일어도 익히고, 자기 신앙도 함께 지키게 하려는 뜻이었죠.
담장 안에만 머물던 사람들에게 바깥세상으로 난 창문을 하나 내준 셈이에요.
이렇게 유대 전통과 계몽주의를 잇는 흐름을 사람들은 "하스칼라", 곧 유대 계몽운동이라 불러요.
멘델스존은 그 첫 물꼬를 튼 사람이에요.
1769년, 스위스의 한 신학자가 공개적으로 멘델스존을 몰아세웠어요.
기독교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든지, 아니면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거였죠.
유대인으로 살던 그에게는 몹시 곤란한 요구였어요.
잘못 답하면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었고요.
멘델스존의 대답은 뜻밖이었어요.
그는 상대의 종교를 헐뜯지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말했지요.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종교를 믿든 구원받을 수 있다고요.
내 믿음을 지키겠다고 남의 믿음을 깎아내리지는 않겠다는 태도였어요.
신앙을 버리지도, 남을 공격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리를 지킨 거예요.
1783년, 그는 『예루살렘』이라는 책에 자기 생각을 담았어요.
핵심은 간단해요.
믿음은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당연해요.
누군가 옆에서 "이걸 믿어!"라고 소리친다고 마음속 믿음이 생기지는 않잖아요.
겉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어도 속마음까지 바꿀 수는 없어요.
그래서 멘델스존은 국가가 맡을 일과 종교가 맡을 일을 나눠야 한다고 봤어요.
| 국가가 할 수 있는 일 | 종교가 맡는 일 |
|---|---|
|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법으로 다스리기 | 마음속 믿음을 돌보기 |
| 힘으로 강제할 수 있음 | 강제할 수 없고 설득만 가능함 |
그는 이성으로 닿을 수 있는 진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봤어요.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곰곰이 따져 보면 함께 다다를 수 있는 진리라고요.
그러니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 미워할 까닭이 없다는 거였죠.
이성과 신앙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다고 본 거예요.
멘델스존이 살던 18세기 유럽은 종교가 다르면 차별받는 게 당연하던 시대였어요.
그런 세상에서 그는 다른 믿음도 존중하자고 말한 앞선 목소리였지요.
재미있는 사실도 하나 있어요.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이 바로 그의 손자예요.
결혼식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결혼행진곡을 만든 그 사람이요.
할아버지가 넓혀 둔 관용의 공기 속에서 손자는 음악가로 한결 자유롭게 살 수 있었어요.
오늘날 우리는 믿음이 다르다고 사람을 벌하지 않아요.
어떤 종교를 고를지는 저마다의 몫이라고 여기죠.
이런 생각의 씨앗을 250년쯤 전에 조용히 뿌린 사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멘델스존이에요.
모세스 멘델스존은 이성과 신앙, 유대교와 계몽주의를 잇는 다리 같은 사람이었어요.
개종하라는 압박 앞에서도 남의 믿음을 헐뜯지 않았고, 토라를 독일어로 옮겨 담장 안 사람들에게 바깥으로 난 창을 내주었어요.
믿음은 강요할 수 없으니 국가와 종교가 각자의 자리를 지키자고 말한 그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에게도 낮지만 단단하게 남아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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