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벌거벗은 현자들 앞에서 철학자 피론이 입을 다문 이유
알렉산드로스 군대에 철학자가 한 명 끼어 있었어요
기원전 4세기가 저물 무렵,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가 그리스를 떠나 멀리 인도까지 밀고 들어갔어요. 칼과 창을 든 병사들 틈에, 무기 대신 질문을 들고 따라간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피론이라는 철학자예요. 기원전 360년쯤 태어나 기원전 270년쯤 세상을 떠난 사람인데, 걸어서 몇 달이 걸리는 이 먼 원정길에서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하나 만나게 됩니다.
옷도 안 입고 흙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
인도에서 피론은 '벌거벗은 지혜로운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들을 나체수행자라고 불렀어요. 진짜로 옷을 거의 걸치지 않고, 뜨거운 햇볕 아래 흙바닥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좋은 옷과 재산, 남들의 평판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가진 게 거의 없는데도 이상하리만치 흔들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더위에도, 배고픔에도, 누가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았어요. 피론은 그 모습 앞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편안함은 많이 아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어쩌면 덜 우기는 데서 오는 건 아닐까?'
판단을 멈춘다는 건 이런 거예요
친구 둘이 영화 한 편을 두고 다툰다고 해 볼게요. 한 명은 인생 영화라 하고, 한 명은 시간 낭비라고 합니다. 둘 다 진심이에요. 그럼 그 영화는 진짜로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피론의 대답은 뜻밖이에요. '둘 다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어느 쪽이라고 못 정하겠다'였습니다. 꿀을 떠올려 보세요. 건강한 사람 입에는 달콤하지만, 어떤 환자에게는 쓰게 느껴진다고 해요. 그럼 꿀은 원래 단 걸까요, 쓴 걸까요? 우리가 아는 건 '나에게는 지금 이렇게 느껴진다'까지예요. 그 너머의 진짜 모습은 손이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론은 '이것은 원래 이렇다'라고 못 박는 대신, 한 발 물러서서 판단을 잠시 내려놓자고 했어요. 이렇게 단정을 멈추는 태도를 그리스 말로 에포케, 우리말로는 판단 중지라고 부릅니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단정할 근거가 양쪽 다 비슷하니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걸 멈추는 거예요.
멈췄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여기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 중 많은 부분은 '내가 옳다, 저게 진짜다'라고 붙잡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맞아야 하는데 어긋날까 봐 불안하고, 남이 반대하면 화가 나죠.
그런데 '나는 어느 쪽이라고 못 정하겠다'에서 멈추면, 붙잡을 게 없으니 흔들릴 것도 줄어듭니다. 피론은 이렇게 찾아오는 잔잔한 마음의 평온을 가장 귀하게 여겼어요. 인도에서 본 그 흔들림 없는 현자들의 고요함과 닮은 상태예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배를 타고 가다 큰 폭풍을 만나 사람들이 다 겁에 질렸을 때, 피론은 갑판에서 태연히 먹이를 먹던 돼지 한 마리를 가리키며 '지혜로운 사람은 저 돼지처럼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고 해요. 후대에 부풀려진 일화일 수 있으니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봤는지는 잘 보여 줍니다.
피론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것
피론은 책을 한 권도 남기지 않았어요. 그가 한 말은 제자들이 옮겨 적어 겨우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를 두고 '회의주의를 만든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회의는 '의심해서 다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직 결론 못 냈으니 계속 살펴본다'에 가깝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하루에 수십 번씩 성급하게 단정해요.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야, 이건 무조건 손해야. 피론은 그 단정의 버튼에서 잠깐 손을 떼 보라고 권하는 셈이에요. 멀리 인도까지 가서 벌거벗은 현자들에게 그가 배운 건, 더 많은 답이 아니라 답을 잠시 미뤄 두는 법이었습니다.
정리
피론은 알렉산드로스를 따라간 인도에서, 가진 것 없이도 흔들리지 않던 나체수행자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거기서 얻은 생각이 판단 중지, 곧 '이게 진짜다'라고 못 박기를 잠시 멈추는 태도예요. 꿀이 누구에겐 달고 누구에겐 쓰듯, 사물의 진짜 모습은 우리 손에 다 잡히지 않으니까요. 단정을 내려놓으면 붙잡을 게 없어 마음이 도리어 고요해진다는 것, 이것이 고대 회의주의를 연 피론이 우리에게 남긴 한 조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