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까지 갔다 온 철학자 피론이 모든 확신을 내려놓은 이유
누가 맞는지 끝까지 우겨 본 적 있나요
친구랑 사소한 걸로 다툰 적,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거예요. 탕수육은 소스를 부어 먹어야 한다, 아니다 찍어 먹어야 한다. 서로 "내가 맞아!"를 외치다 보면 어느새 얼굴이 빨개지고 기분만 상해요. 가만 보면 좀 이상하죠. 분명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내 생각이 옳다고 굳게 확신하는 그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해요.
약 2300년 전 그리스에 살던 한 사람은 바로 이 점을 곰곰이 들여다봤어요. 사람들이 괴로운 건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게 정답이야"라고 너무 단단하게 믿어 버리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요. 그 사람 이름이 피론이에요. 오늘은 확신을 슬며시 내려놓는 법을 평생에 걸쳐 보여 준 이 철학자 이야기를 해 볼게요.
인도까지 갔다 온 그리스 철학자
피론은 기원전 360년쯤 그리스에서 태어나 90살 가까이 살았어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300년도 더 된 옛날 사람이에요. 젊을 때 그는 큰 모험을 떠나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를 따라, 멀고 먼 동쪽 인도까지 간 거예요. 비행기도 자동차도 없던 시절이라, 걸어서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하게 긴 여행이었죠.
그 먼 길에서 피론은 인도의 현자들을 만났어요. 옷도 거의 걸치지 않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그런데도 신기할 만큼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죠. 고향 그리스에서는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따지고 더 크게 다투는 모습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정반대였어요. 주장을 적게 하는데도 오히려 더 편안해 보였어요. 피론은 여기서 인생을 바꿀 만한 큰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여요. 똑똑하게 따지는 것과 마음이 편한 것은 별개구나, 하고요.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하는 용기
그리스로 돌아온 피론의 생각은 이랬어요. 우리가 어떤 일을 두고 "이게 맞다"고 딱 잘라 말할 때, 사실은 그 반대를 주장하는 말도 비슷하게 그럴듯한 경우가 참 많다는 거예요. 탕수육 논쟁이 딱 그렇죠. 부어 먹자는 친구 말을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고, 찍어 먹자는 친구 말을 들으면 또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양쪽 다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피론은 이렇게 하기로 했어요. 양쪽이 다 그럴듯하면, 무리해서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밀어붙이지 말고, 그냥 "잘 모르겠어, 판단을 잠깐 멈출게" 하고 두는 거예요. 이걸 어려운 말로 '판단 중지', 그리스어로는 '에포케'라고 불러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거죠.
이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것과는 달라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양쪽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 보고, 그래도 어느 쪽이 확실한지 정직하게 결론 낼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꽤 부지런하고 용기 있는 태도예요. 사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어"라고 말하는 건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피론은 그 어려운 말을 삶의 기본으로 삼은 사람이에요.
멈췄더니 마음이 조용해졌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무조건 정답을 정해야 해"라는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다툴 일도 줄어들고 마음이 한결 조용해진 거예요. 피론은 바로 이 평온한 상태를 무엇보다 귀하게 여겼어요. 그리스어로 '아타락시아', 쉽게 풀면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라고 해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화나고 불안해지는 건 대개 "꼭 이래야만 해", "저 사람은 분명히 틀렸어"라고 확신할 때예요. 그 확신의 손아귀를 살짝만 풀어 줘도, 똑같은 일이 훨씬 가볍게 지나가요. 시험 점수 하나에, 친구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온 마음이 휘청이던 게 조금은 덜해지는 거죠. 피론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아무것도 믿지 마"가 아니에요. "확실하지도 않은 걸 확실한 척하느라 너무 애쓰지는 말자", 이쪽에 훨씬 가까워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을까
피론에 대해선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여럿 남아 있어요. 마차가 달려와도 안 피하고, 절벽 앞에서도 멈추지 않아서 친구들이 늘 졸졸 따라다니며 지켜 줬다는 식이죠.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한참 뒤의 사람들이 재미있게 부풀린 것으로 보여요. 실제로 90살까지 건강하게 잘 살았던 걸 보면, 그렇게까지 위험하게 살지는 않았겠죠. 판단을 멈추자는 건 눈앞의 위험까지 못 본 척하자는 게 아니니까요.
게다가 피론은 책을 단 한 권도 쓰지 않았어요. 그의 생각은 제자인 티몬이 대신 기록해 준 덕분에 오늘까지 전해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피론의 속마음을 100퍼센트 알 수는 없고, 남은 이야기들로 조심스럽게 짐작할 뿐이에요. 어쩌면 "잘 모른다"는 그의 태도가, 정작 그 자신에 관한 기록에까지 그대로 묻어 있는 셈이네요.
의심에서 시작된 새로운 흐름
피론의 이런 태도는 한 사람의 별난 성격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훗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회의주의'라는 큰 흐름을 만들었어요. 회의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트집 잡고 삐딱하게 구는 것 같지만, 원래 뜻은 그게 아니에요. '잘 살펴본다', '서두르지 않고 따져 본다'에 더 가까워요. 성급하게 답을 정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춰서 들여다보는 마음가짐인 거죠.
그래서 피론은 흔히 '고대 회의주의의 시작점'으로 불려요. 누군가 멋진 주장을 펼칠 때 바로 박수 치지 않고 "정말 그럴까?" 하고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습관, 우리가 지금도 중요하게 여기는 그 태도의 아주 오래된 뿌리에 피론이 있는 셈이에요.
정리
피론은 "내 생각이 곧 정답"이라는 확신이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만든다는 걸 알아챈 철학자예요. 양쪽 말이 다 그럴듯할 땐 억지로 결론 내지 말고 판단을 잠깐 멈추자, 그러면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다, 이게 그가 인도까지 다녀오며 평생 보여 준 삶의 방식이었어요. 다음에 누군가와 "내가 맞아!" 하고 부딪칠 것 같을 때, 피론을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고 한 박자 쉬어 보는 거예요. 그 한 박자가 의외로 내 마음을 지켜 줄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