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을 때 정말 사람이 싫었던 걸까요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볼 때
엘리베이터에 혼자 탔는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누가 들어와요. 그 사람이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봐요. 그 순간 갑자기 신경이 쓰여요. 머리는 괜찮나, 옷에 뭐 묻었나, 표정이 이상하진 않나. 방금 전까지 아무 생각 없던 내가, 누가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 불편해져요.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남긴 이 말은 그래서 흔히 이렇게 오해돼요. "사람들 진짜 피곤해, 다 싫어" 하는 푸념처럼요. 그런데 사르트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훨씬 깊고,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예요. 사르트르는 1905년 파리에서 태어나 평생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파고든 사람이거든요.

그 말이 나온 진짜 장소
이 문장은 사르트르가 1944년에 쓴 '닫힌 방'이라는 연극에 나와요. 무대는 지옥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과 달라요. 불길도 없고, 고문 기구도 없고, 무섭게 생긴 악마도 없어요. 그냥 평범한 방 하나에 처음 보는 세 사람이 갇혀 있을 뿐이에요.
이상한 건 그 방에 거울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면 옆 사람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요. 세 사람은 서로 잘 보이고 싶어 하고, 미워하고, 말로 상처를 줘요. 칼로 찌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충분히 괴로워져요. 그러다 한 명이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거울이 없으면 생기는 일
여기서 사르트르가 가리킨 건 이거예요.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자서는 다 알 수가 없어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내가 친절한 사람인지, 좀 웃긴 사람인지, 눈치가 없는 사람인지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반응할 때 비로소 드러나요. 농담을 던졌는데 다들 웃으면 나는 '웃긴 사람'이 되고, 아무도 안 웃으면 '분위기 못 읽는 사람'이 돼요. 다른 사람의 눈이 곧 내 거울인 셈이에요.
문제는 그 거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누군가 나를 "쟤는 잘난 척하는 애"라고 한번 정해 버리면,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 머릿속의 나는 그렇게 굳어 있어요. 내 모습의 한 조각을 다른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거예요. 그게 사르트르가 말한 지옥이에요. 누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있는 한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요.

의자는 쓰임이 정해져 있지만 사람은 아니에요
사르트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제일 아낀 한 문장을 같이 알아야 해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에요.
어려워 보이지만 예가 쉬워요. 종이를 자르는 칼을 하나 떠올려 봐요. 누가 그 칼을 만들기 전에, 이미 '종이를 자르는 데 쓰는 물건'이라는 쓰임이 먼저 정해져 있었어요. 쓰임이 먼저고, 물건은 그 쓰임에 맞춰 그다음에 만들어져요. 의자도, 컵도 다 마찬가지예요.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항상 먼저 있어요.
그런데 사람은 정반대래요. 우리는 "너는 이걸 위해 태어났어" 하고 쓰임이 미리 정해진 채로 세상에 오지 않아요. 일단 아무 설명서 없이 세상에 툭 던져진 다음, 살아가면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 하나하나 만들어 가요. 먼저 존재하고, 어떤 사람인지는 나중에 채워지는 거죠. 이게 바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에요. 답을 손에 쥐고 태어난 컵과 달리, 우리는 빈손으로 시작해요.

그래서 자유는 생각보다 무거워요
언뜻 들으면 신나는 말이에요. 정해진 게 없으니 뭐든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사르트르는 이 자유에 묵직한 짝을 하나 붙여요. 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내 선택을 핑계 댈 데도 없다는 뜻이거든요.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됐든, 그건 결국 내가 골라온 길의 결과예요. "난 원래 이런 성격이라"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라고 둘러대고 싶지만, 사르트르는 그렇게 둘러대는 것조차 내가 받아들인 선택이라고 봐요. 그래서 그는 인간이 "자유라는 형벌을 선고받았다"고 표현했어요. 자유는 선물이면서, 동시에 도망칠 수 없는 책임이라는 거예요.
이제 앞의 이야기와 이어져요. 나는 자유롭게 나를 만들어 가고 싶은데, 타인의 시선은 자꾸 나를 한자리에 고정시키려 해요. '잘난 척하는 애'로, '웃긴 애'로 딱 못 박아 두려고 하죠. 내 자유와 남의 시선이 부딪히는 그 자리, 거기가 바로 사르트르가 본 삶의 진짜 긴장이에요.

정리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람이 싫다는 투덜거림이 아니에요. 우리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남의 눈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눈이 때로 나를 멋대로 정해 굳혀 버린다는 이야기예요. 동시에 그는 사람을 정해진 쓰임 없이 태어나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로 봤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지만, 그 자유만큼 무거운 책임도 함께 지죠. 다음에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봐서 괜히 불편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잠깐 내 거울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봐도 좋아요. 사르트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 거울들 속에서도 결국 나를 만들어 가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거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