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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연의 변증법은 엥겔스가 모래알부터 별까지 자연 전체도 사회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러니까 조금씩 쌓이다가 어느 순간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변한다고 본 생각이에요. 다만 이건 그가 1873년부터 1886년까지 13년에 걸쳐 쓰다 만 원고와 노트 묶음이라, 책으로 세상에 나온 건 그가 죽고 30년 뒤인 1925년이었어요.
주전자에 물을 올려 볼게요.
20도, 30도, 50도까지 올라가도 물은 계속 물이에요.
그런데 100도에 닿는 순간 수증기가 됩니다.
조금씩 쌓인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성질 자체를 바꿔 버리는 거죠.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런 일이 주전자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그가 남긴 문장이 그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자연 전체는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까지, 모래알에서 태양까지, 원생생물에서 인간까지, 영원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흐름 속에, 쉬지 않는 운동과 변화 속에 존재한다."
가만히 멈춰 있는 건 어디에도 없고, 그 변화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 규칙을 적어 보려던 시도가 바로 자연의 변증법입니다.
엥겔스는 변화의 규칙을 세 가지로 묶었어요.
이름은 딱딱하지만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 법칙 | 뜻 | 일상에서 보면 |
|---|---|---|
| 양이 질로 바뀐다 | 조금씩 쌓인 양의 변화가 어느 순간 성질 자체를 바꾼다 | 물이 100도에서 수증기가 된다 |
| 대립하는 것이 서로 스며든다 | 정반대인 둘이 사실은 한 몸으로 붙어 있다 | 자석을 아무리 잘라도 두 극이 늘 함께 남는다 |
| 부정을 다시 부정한다 | 앞의 것을 뒤집고, 뒤집힌 것을 또 뒤집으면 더 풍성한 자리로 간다 | 씨앗은 싹이 되며 사라지고, 그 싹이 자라 더 많은 씨앗을 남긴다 |
여기 쓰인 개념들은 원래 헤겔에게서 가져온 거예요.
다만 이 셋을 나란히 놓고 "이것이 법칙이다"라고 정리한 사람은 헤겔이 아니라 엥겔스입니다.
헤겔의 도구를 빌려 자기 방식으로 다시 짠 셈이에요.
헤겔은 세계를 정신이 펼쳐진 무대로 봤어요.
생각이 먼저 있고 물질이 그 뒤를 따른다는 그림이죠.
엥겔스는 순서를 뒤집고 싶어 했습니다.
물질세계가 먼저 있고 변화의 규칙도 거기서 나온다고요.
그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신비스러운 껍데기를 벗겨 내고 단단한 바닥 위에 다시 세우려 했어요.
재미있는 건 이 작업을 한 사람의 낮 시간이에요.
엥겔스는 1820년 11월 28일 프로이센 바르멘에서 면직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고, 아홉 남매 중 맏이였어요.
맨체스터의 가족 회사 에르멘 앤드 엥겔스에서 수십 년을 일했고 1864년에는 동업자가 됩니다.
1860년 무렵 그의 연수입은 1,000파운드를 넘어 상류 중산층 수준이었어요.
그 돈으로 20여 년에 걸쳐 마르크스 가족에게 3,000파운드에서 4,000파운드를 보냈고, 덕분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쓸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공장 장부를 보고 밤에는 물리학과 생물학 책을 읽으며 노트를 채운 사람이었던 거예요.
이 노트 뭉치에서 가장 널리 읽힌 글은 1876년 봄에 따로 쓴 「원숭이가 인간으로 이행하는 데서 노동이 한 역할」이에요.
이 글은 원고 전체보다 29년 빠른 1896년에 단독으로 발표돼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글만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엥겔스는 두 발로 서서 걷게 된 일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단계라고 봤어요.
서서 걸으니 앞발이 손으로 풀려나고, 손이 자유로워지니 도구를 쥐고 일을 하게 되고, 함께 일하려니 말을 하게 되고, 그러다 뇌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예요.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먼저 노동이 오고, 그다음에 그리고 그와 나란히 분절된 언어가 왔다. 이 둘이 원숭이의 뇌를 인간의 뇌로 서서히 바꾼 가장 본질적인 자극이었다."
노동을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먼저 이름부터 짚을게요.
흔히 이 계열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부르는데,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그 말을 쓴 적이 없어요.
엥겔스는 그냥 근대 유물론이라 불렀고, 지금의 이름은 1887년 요제프 디츠겐과 1891년 게오르기 플레하노프를 거치며 굳었습니다.
더 큰 다툼은 내용 쪽이에요.
게오르크 루카치는 1923년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변증법은 사람이 세상과 주고받는 사회와 역사에서만 성립하지, 사람이 빠진 자연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어요.
알프레드 슈미트와 노먼 레빈 같은 학자들도 마르크스 본인은 인간과 무관한 바깥 자연의 변증법 같은 걸 인정하지 않았다고 봤고, 레빈은 이 차이를 아예 "마르크스주의 대 엥겔스주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반대편의 근거도 있어요.
마르크스가 철학과 자연과학 문제에서 "나는 언제나 당신의 발자취를 따른다"고 엥겔스에게 썼고, 『반뒤링론』의 한 장을 직접 쓰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자주 인용됩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학계에서 정리되지 않았어요.
엥겔스 본인은 이 논쟁을 보지 못했습니다.
1895년 8월 5일 런던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언대로 유해는 비치 헤드 앞바다에 뿌려졌어요.
원고는 책상 위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자연의 변증법은 엥겔스가 자연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읽어 보려 한 미완의 작업이에요.
양이 쌓이다 질로 넘어가고, 반대되는 것이 한 몸으로 붙어 있고, 뒤집힌 것이 다시 뒤집히며 나아간다는 세 가지 규칙으로요.
기억할 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건 완성된 저서가 아니라 사후에 묶인 노트예요.
둘째, 세 법칙은 헤겔의 개념을 엥겔스가 자기 손으로 정리한 결과입니다.
셋째, 사회를 설명하던 방식을 자연에까지 밀고 간 이 선택이 옳았는지는 1923년 루카치 이후 백 년 넘게 논쟁 중이에요.
그러니 자연의 변증법은 답으로 외울 이론이라기보다, 낮에는 공장 장부를 보고 밤에는 별과 세포를 생각하던 한 사람이 남겨 둔 질문 뭉치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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