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 반뒤링론과 폭력의 역할, 칼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
엥겔스는 『반뒤링론』에서 "폭력이 역사를 만든다"는 주장을 뒤집었어요. 폭력은 역사를 움직이는 뿌리가 아니라 경제력이 쥐여 준 도구이며, 총도 군함도 그 사회의 산업이 만들어 낸 물건이라는 것이 핵심이에요.
반뒤링론은 어쩌다 쓰인 책일까
반 게시판에 사실과 다른 글이 붙었는데 아이들이 그걸 믿기 시작하면, 옆에 반박문을 붙이는 수밖에 없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76년 9월부터 1878년 6월 사이에 쓴 책이 딱 그런 반박문이에요.
상대는 오이겐 뒤링이라는 사람이었어요.
베를린 대학 강사였고, 눈이 보이지 않았어요.
1870년대 독일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맞서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었죠.
엥겔스의 글은 1877년 1월부터 1878년 7월까지 독일 사민당 기관지 포어베르츠에 연재된 뒤, 1878년 라이프치히에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어요.
정식 제목은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혁명』이고,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요.
1부 철학, 2부 정치경제학, 3부 사회주의입니다.
2부의 마지막 장은 마르크스가 직접 썼고, 마르크스는 출판 전에 원고 전체를 낭독으로 들으며 검토했어요.
그러니까 엥겔스 혼자만의 책은 아니었던 셈이에요.
뒤링은 무엇을 주장했을까
뒤링의 생각은 이랬어요.
역사의 근본은 정치적 관계,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힘으로 누르느냐이고, 경제적인 종속은 그 뒤에 따라오는 부차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힘센 사람이 먼저 있고, 돈은 그다음"이라는 순서죠.
그는 이 주장을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로 뒷받침했어요.
크루소가 검을 손에 들고 프라이데이를 노예로 삼았다는 가상의 장면이에요.
무기를 든 쪽이 상대를 굴복시켰으니, 폭력이 먼저라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이 크루소 이야기는 뒤링이 꺼낸 예예요.
엥겔스가 만든 비유가 아니라, 상대가 내민 카드입니다.
엥겔스는 어떻게 반박했을까
엥겔스는 그 카드를 그대로 받아서 뒤집어요.
반박은 두 갈래였어요.
첫째, 크루소가 프라이데이를 노예로 만든 것은 오직 프라이데이가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려던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목적은 처음부터 경제적 이득이었고, 폭력은 그 목적에 쓰인 수단이었다는 거예요.
목적과 수단의 자리가 뒤바뀌어 있었던 거죠.
둘째가 더 재미있어요.
엥겔스는 무인도에서도 검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고 말해요.
크루소가 손에 쥔 그 검은 어디서 왔을까요.
누군가 광석을 캐고, 불로 녹이고, 두드려 만든 물건이에요.
즉 폭력의 도구부터가 이미 노동의 산물이라는 뜻이에요.
힘센 아이가 몽둥이로 간식을 뺏는다고 해도, 그 몽둥이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와 같아요.
총과 군함이 보여 준 것
엥겔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실제 전쟁으로 갑니다.
"군대와 해군만큼 경제적 전제조건에 의존하는 것은 없다. 무장, 편제, 조직, 전술, 전략은 무엇보다 당대의 생산단계에 좌우된다"고 썼어요.
화약은 14세기 초에 중동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어요.
그런데 화약이 있다고 아무나 총을 갖는 게 아니에요.
화기를 만들려면 자금과 산업이 필요했고, 그것은 당시 도시 부르주아지의 손에 있었어요.
프로이센이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도 강선 후장식 소총이라는 신형 무기를 들여온 덕분이라고 엥겔스는 짚어요.
정치적 힘이 이긴 게 아니라, 그런 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이 이긴 거예요.
바다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엥겔스는 현대 군함을 두고 근대 대공업의 산물이자 그 표본, 즉 물 위에 떠 있는 공장 하나라고 불렀어요.
배 한 척이 곧 그 나라 공장의 성적표라는 말이죠.
그럼 엥겔스는 폭력을 나쁘게만 봤을까
아니에요.
뒤링은 폭력을 무조건 나쁜 것,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봤는데, 엥겔스는 그런 도덕주의적 시선을 비판했어요.
낡은 정치 질서를 깨뜨릴 때 폭력이 사회 진보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그가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려 쓴 문장이 유명해요.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한 모든 낡은 사회의 산파다."
산파는 아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자랄 만큼 자란 아기가 세상에 나오도록 돕는 사람이죠.
아기가 없으면 산파도 할 일이 없어요.
엥겔스는 또 폭력이 사회 운동의 길을 뚫고 낡고 굳어 버린 정치 형태를 부수는 도구라고도 썼어요.
앞선 논의와 이어 놓고 보면 결론은 하나예요.
폭력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경제 조건과 그것이 쥐여 주는 수단이고, 그것이 없으면 폭력은 힘을 쓰지 못해요.
헷갈리기 쉬운 세 가지
| 흔한 오해 | 실제 |
|---|---|
| 엥겔스가 폭력을 예찬했다 | 폭력은 경제력에 종속된 도구이고, 경제 발전이 늘 정치적 폭력을 앞선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에요 |
| 로빈슨 크루소 비유는 엥겔스의 아이디어다 | 뒤링이 자기 주장의 근거로 내민 예이고, 엥겔스는 그것을 뒤집어 반박에 썼어요 |
| 『공상에서 과학으로』가 곧 반뒤링론이다 | 1880년 폴 라파르그의 요청으로 반뒤링론의 세 개 장을 발췌해 만든 별도의 팸플릿이에요 |
자유는 필연성의 인식이에요
이 책에는 폭력론과 별개로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하나 더 있어요.
1부 11장 '자유와 필연성'에서 엥겔스는 헤겔이 처음으로 자유와 필연성의 관계를 올바로 서술했다며, 헤겔에게 자유란 필연성에 대한 통찰이라고 씁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듬어요.
자유는 자연법칙에서 벗어나는 몽상이 아니라, 그 법칙들을 알고 목적에 맞게 부릴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고요.
중력이 싫다고 떼를 쓴다고 하늘을 날 수는 없어요.
공기와 힘의 법칙을 알아낸 사람이 비행기를 만들죠.
법칙을 아는 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는 뜻이에요.
다만 이 문장은 책 맥락과 떨어져 격언처럼만 인용될 때가 많아요.
원래 자리는 헤겔의 개념을 유물론의 언어로 다시 쓰는 논증의 한 대목입니다.
정리
반뒤링론의 폭력론은 폭력을 찬양한 글이 아니라 폭력의 자리를 다시 매긴 글이에요.
검도 총도 군함도 결국 누군가의 노동과 산업이 만들어 낸 물건이고, 그래서 힘은 경제 위에 얹혀 있다는 것이 엥겔스의 논지예요.
폭력은 산파일 수는 있어도 아기를 만들지는 못해요.
한편 이 책이 마르크스의 생각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체계로 굳혀 놓았고 그것이 뒷날 소비에트의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이어졌다고 비판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도 있어요.
반대로 마르크스가 원고를 검토하고 경제학 한 장을 직접 썼다는 점을 들어 두 사람의 공동 철학이 맞다고 반박하는 전기 작가들도 있고요.
여기는 아직 해석이 갈리는 자리라, 한쪽으로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이 정확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