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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카르납의 귀납 논리는 어떤 증거가 어떤 주장을 얼마나 뒷받침하는지를 숫자처럼 따져 보려 한 시도예요. 확실하진 않아도 얼마나 그럴듯한지를 논리로 재 보려 한 거죠.

192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몇몇 학자들이 목요일마다 한자리에 모였어요. 사람들은 이 모임을 빈 학파라고 불렀죠. 이들의 생각은 단순했어요. "확인할 수 없는 말은 멋져 보여도 사실은 빈말이다." 그 한가운데 루돌프 카르납이 있었어요. 1891년에 태어나 1970년까지, 일흔여덟 해를 산 철학자였죠. 그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정신으로 가득하다" 같은 거창한 문장을 두고,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길이 아예 없다면 애초에 뜻이 없는 문장이라고 봤어요. 이렇게 말의 뜻을 가려내는 잣대를 검증 원리라고 해요. 그런데 카르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훨씬 더 까다로운 문제로 걸어 들어갑니다. 바로 "확실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똑똑하게 믿을까"라는 물음이었어요.

귀납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죠? 사실 우리는 매일 귀납을 쓰고 있어요. 아침마다 해가 떴으니 내일도 뜰 거라고 믿고, 지난 다섯 번 이 빵집 빵이 맛있었으니 오늘도 맛있을 거라고 기대하잖아요. 이렇게 여러 번 겪은 경험을 모아 "아마 이럴 거야"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게 귀납이에요. 반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니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처럼 빈틈없이 딱 떨어지는 추리는 연역이라고 불러요. 연역은 앞 문장이 맞으면 답이 100퍼센트 확실해요. 하지만 귀납은 다음번에 어긋날 수도 있죠. 해가 매일 떴어도 내일까지 100퍼센트 보장하진 못하니까요. 그래서 귀납은 편리하지만 어딘가 미덥지 못한 추리였어요.

여기서 카르납의 아이디어가 빛나요. 그는 "귀납도 연역처럼 또박또박 논리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물었어요. 연역에 참과 거짓이라는 잣대가 있다면, 귀납에는 그럴듯함의 정도라는 잣대를 주자는 거였죠. 그는 이걸 확증의 정도라고 불렀어요. 쉽게 말하면, 어떤 증거가 주어졌을 때 그 주장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0과 1 사이의 숫자로 매기려 한 거예요. 0이면 전혀 아니고, 1이면 확실하고, 0.8이면 꽤 그럴듯하다는 식이죠. 일기예보가 "내일 비 올 확률 70퍼센트"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점쟁이는 그냥 "비가 올 것이다"라고 단언하지만, 카르납은 "증거를 보니 이만큼 믿을 만하다"를 따지려 했다는 점이 달라요. 그는 이 생각을 1950년에 펴낸 책 《확률의 논리적 기초》에 담았어요.

카르납은 확률이라는 말이 사실 두 가지로 쓰인다고 봤어요. 하나는 "동전을 천 번 던지면 앞면이 절반쯤 나온다" 같은, 실제로 세상에서 일어난 횟수를 세는 확률이에요. 통계나 도박에서 쓰는 익숙한 확률이죠. 다른 하나는 "이 증거를 보니 이 주장이 이만큼 믿을 만하다" 하는, 증거와 주장 사이의 관계를 재는 확률이에요. 카르납은 두 번째를 논리적 확률이라고 부르며 자기 귀납 논리의 중심에 놓았어요. 같은 단어지만 뜻이 다르니 섞으면 안 된다고 콕 짚은 거죠. 마치 "무겁다"가 가방의 무게를 뜻할 때와 마음이 무겁다를 뜻할 때 서로 다른 것처럼요.

그런데 한 가지 골치 아픈 게 있었어요. 이미 200여 년 전, 데이비드 흄이라는 철학자가 따끔한 질문을 던졌거든요. "과거에 늘 그랬다고 미래도 그러리란 보장이 어디 있죠?" 귀납에는 사실 완벽한 근거가 없다는 뼈아픈 지적이었어요. 카르납은 이 빈틈을 숫자로 메우려 했어요. 확실한 보장은 못 줘도, 적어도 얼마나 합리적으로 믿을 만한지는 또박또박 따질 수 있다고 본 거예요. 그는 인공 언어와 까다로운 계산을 동원해 이 잣대를 세우려 애썼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완성된 답에는 끝내 이르지 못했어요. 그래도 "불확실함을 논리로 다룬다"는 그의 도전은, 오늘날 인공지능이 확률로 판단하는 방식에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카르납은 빈 학파의 대표 철학자로, "확인할 수 없는 말은 뜻이 없다"는 검증 원리에서 출발했어요. 그러다 더 어려운 곳으로 나아갔죠. 100퍼센트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가 늘 기대고 사는 귀납적 추리에, 그럴듯함의 정도라는 눈금을 매기려 한 거예요. 이게 바로 귀납 논리예요. 비록 완성하진 못했지만, 불확실한 세상을 또박또박 따져 보려던 그 시도를 기억하면, 일기예보의 확률 한 줄도 조금 다르게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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