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내재적 가치, 왜 그 자체로 좋다고 했을까요
내재적 가치는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가치예요. 무어는 우정이나 아름다움처럼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따지지 않아도 그냥 좋은 것들이 있다고 봤어요.

친구를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여러분은 가장 친한 친구를 왜 좋아하나요? "숙제를 도와줘서"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닌 것 같지요. 영국 철학자 조지 에드워드 무어는 1903년에 펴낸 『윤리학 원리』라는 책에서 바로 이 느낌을 붙잡았어요. 어떤 것은 쓸모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좋다는 거예요. 무어는 1873년에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평생 철학을 가르친 사람인데, 그가 던진 이 단순한 물음이 이후 백 년 넘게 윤리학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이 글에서는 무어가 말한 '내재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가 '좋다'는 말을 함부로 정의하면 안 된다고 했는지 천천히 풀어 볼게요.

돈은 사실 종이 한 장이에요
지갑 속 만원짜리 한 장을 떠올려 보세요. 그 종이 자체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불을 쬐기엔 너무 작고, 베고 자기엔 너무 얇지요. 우리가 그걸 좋아하는 건 빵이나 장난감, 버스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다른 좋은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갖는 가치를 수단적 가치라고 해요. 약은 아파야 먹고, 공부는 시험을 위해 하고, 돈은 무언가를 사려고 모으지요. 모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그런데 세상에는 무엇으로도 바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있어요. 저녁 노을이 예쁘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노을을 무언가로 바꿀 궁리를 하지 않아요. 친구와 깔깔 웃는 순간도 마찬가지예요. 그 순간이 다른 무언가에 쓸모가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좋은 거예요. 무어는 이렇게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지닌 가치를 내재적 가치라고 불렀어요. 돈이 수단적 가치라면, 우정과 아름다움은 내재적 가치인 셈이에요. 무어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값진 두 가지로 좋은 사람들과의 사귐,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즐기는 일을 꼽았어요.

'좋다'는 설탕의 단맛과 닮았어요
여기서 무어에게 골치 아픈 질문이 하나 생겨요. 그렇다면 '좋다'는 게 도대체 뭘까요? 많은 사람이 "좋다는 건 결국 즐거운 거야" 또는 "좋다는 건 모두에게 이로운 거야"처럼, 좋음을 다른 말로 바꿔 설명하려고 했어요.
무어는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다고 봤어요. 설탕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단맛이 뭐야?"라고 물으면, 우리는 그냥 한 숟갈 맛보게 해 줄 수밖에 없어요. 단맛을 더 작은 부품으로 쪼개서 말로 풀 수가 없거든요. 무어는 '좋다'도 이와 똑같다고 했어요. 더는 쪼갤 수 없는, 그 자체로 단순한 성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좋음'을 '즐거움'이나 '이로움' 같은 다른 무언가와 같다고 우기는 실수를, 무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는 누구나 써먹을 수 있는 간단한 시험법도 내놓았어요. "즐거운 건 알겠어. 그런데 즐거운 게 정말 좋은 걸까?"라고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다면, 두 말은 같은 뜻이 아니라는 거예요. 만약 '좋음'과 '즐거움'이 똑같은 말이었다면, 이 되물음은 "좋은 게 정말 좋을까?"처럼 우스워졌겠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우습지 않아요. 이 되물음을 무어는 '열린 질문'이라고 불렀어요.

눈앞의 이 손은 정말 있어요
무어는 윤리뿐 아니라 '세상이 진짜로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한결같았어요. 어떤 철학자들은 "사실 우리 바깥에 세상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라며 의심했지요. 무어는 한 강연에서 오른손을 들어 "여기 손이 하나 있습니다", 왼손을 들어 "여기 또 하나 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복잡한 의심보다,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믿는 상식이 오히려 더 단단하다는 거예요. 이런 태도를 상식 실재론이라고 해요.
언뜻 동떨어져 보이는 두 생각은 사실 한 뿌리예요. '좋음'이든 '내 손'이든, 억지로 다른 말로 증명하려 들기 전에 우리가 직접 알아채는 것을 믿자는 태도지요. 이 단순함과 정직함이 친구 사이였던 버트런드 러셀을 비롯해 당시 케임브리지의 젊은 학자들을 사로잡았어요.

정리
무어의 내재적 가치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지닌 가치예요. 돈처럼 다른 걸 얻으려는 수단적 가치와 달리, 우정과 아름다움은 쓸모를 따지지 않아도 그냥 좋지요. 그리고 '좋다'는 설탕의 단맛처럼 더 쪼갤 수 없어서, 다른 말로 바꿔 정의하려 들면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고 말아요. 다음에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거든 한번 물어보세요. 이건 무언가에 쓸모가 있어서 좋은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자체로 좋은 걸까. 그 답이 갈리는 자리에 바로 무어의 내재적 가치가 놓여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