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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분석철학은 '세상은 왜 있을까' 같은 큰 질문에 곧장 답하기 전에, 우리가 쓰는 말과 논리부터 또렷하게 다듬자고 본 20세기 영미권 철학의 흐름이에요. 프레게와 러셀에서 출발해 비트겐슈타인을 거쳐 콰인과 크립키로 이어졌어요.

1900년대 초 철학자들은 오래된 고민에 지쳐 있었어요. '진리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무려 2000년 넘게 답이 엇갈렸거든요. 그때 독일의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와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이 색다른 제안을 내놓아요. "답이 안 나오는 건 질문 자체가 흐릿해서일지도 몰라. 말부터 안경처럼 닦고 다시 보자."
흐릿한 창문으로는 바깥 풍경이 보일 리 없죠. 두 사람은 우리가 평소 쓰는 문장을 수학처럼 또렷한 논리 기호로 바꿔 쓰면, 헷갈림의 절반은 저절로 사라진다고 봤어요. 러셀은 화이트헤드와 함께 쓴 책에서 '1 더하기 1은 2'라는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는 데만 수백 쪽을 들였을 정도예요. 그만큼 말의 속을 깊이 파고들었다는 뜻이죠. 분석철학은 이렇게 '말과 논리를 분석하는 일'을 철학의 첫 단추로 삼으면서 출발했어요. 이름에 '분석'이 들어간 까닭이에요.

러셀의 제자였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어요. 그는 1921년에 펴낸 얇은 책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어요.
무슨 뜻일까요? 비트겐슈타인은 말을 세상을 찍은 사진 같은 거라고 봤어요. 사진에 담기는 장면은 또렷이 말할 수 있지만, 사진에 도무지 담기지 않는 것, 이를테면 신이나 삶의 의미 같은 걸 두고 말로 옳고 그름을 다투는 건 헛수고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건 차라리 입을 다물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비트겐슈타인이 나중에 스스로 그 생각을 뒤집었다는 점이에요. 말은 사진이라기보다 '연장통 속 도구'에 가깝고, 단어의 뜻은 사람들이 그걸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쓰느냐에서 생겨난다고 본 거죠. '망치'라는 말의 뜻이 망치를 쓰는 장면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요. 한 사람이 분석철학의 흐름을 두 번이나 크게 틀어 놓은 셈이에요.
비슷한 시기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루돌프 카르납을 비롯한 학자들이 더 엄격한 규칙을 들고나왔어요. 이 흐름을 논리실증주의라고 불러요. 규칙은 뜻밖에 단순했어요. "확인할 방법이 있는 말만 뜻이 있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눈으로 확인되는 반칙에만 호루라기를 부는 것과 비슷해요. 증거로 참인지 거짓인지 가릴 수 있는 말은 통과, 그렇게 가릴 수 없는 말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냥 '뜻 없는 소리'로 무효 처리한 거죠. 영국의 에이어는 이 생각을 1936년에 낸 책으로 영어권에 널리 퍼뜨렸고, 한동안 큰 힘을 얻었어요. 형이상학이라 불리던 거창한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올랐죠.

모두가 그 엄격한 잣대에 고개를 끄덕인 건 아니었어요. 영국의 G.E. 무어는 "내게 손이 두 개 있다 같은 뻔한 사실이, 그걸 의심하는 어려운 이론보다 오히려 더 확실하다"며 상식의 편을 들었어요.
옥스퍼드의 길버트 라일과 J.L. 오스틴은 또 다른 길을 갔어요. "굳이 수학 같은 인공 언어를 새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일상 언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엉킨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고 본 거예요. 이들을 일상언어학파라고 불러요. 특히 오스틴은 말이 세상을 설명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이 되기도 한다는 걸 짚었어요. "약속할게"라고 말하는 순간 약속이라는 행동이 실제로 일어나잖아요. 말은 거울이자 동시에 손인 셈이죠.
여기까지는 '말을 깔끔한 두 칸으로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이 바닥에 깔려 있었어요. 뜻만 따져도 참인 말과, 세상을 봐야 아는 말, 이렇게요. 그런데 미국의 윌러드 콰인이 1951년 짧은 글에서 그 칸막이를 툭 건드렸어요. 스웨터 실 한 올을 잡아당기면 옷 전체가 스르륵 풀리듯, "그 구분은 우리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고 보인 거예요.
솔 크립키는 또 다른 매듭을 풀었어요. 이름이 어떻게 대상에 딱 들러붙는지를 새로 설명했죠.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중에 바뀌어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끝까지 바로 그 사람만 가리켜요. 한번 붙으면 어디까지나 따라다니는 이름표처럼요. 이렇게 분석철학은 한자리에 멈추지 않고, 앞 세대가 내놓은 답을 뒷세대가 다시 흔들며 오늘까지 흘러왔어요.

분석철학의 흐름은 한마디로 '말을 의심하는 릴레이'예요. 프레게와 러셀이 말을 논리로 닦자며 출발선을 그었고, 비트겐슈타인이 말의 경계를 그렸다가 스스로 다시 그렸고, 카르납과 에이어의 논리실증주의는 증거를 잣대로 들이댔고, 무어와 라일과 오스틴은 일상 언어로 맞섰고, 콰인과 크립키가 다시 판을 흔들었어요. 큰 답을 한 번에 외치기보다 질문에 쓰인 말부터 또렷하게 다듬으려 한 100여 년의 태도, 그게 20세기 영미 철학을 관통한 한 줄기랍니다.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1872년
논리와 평화를 함께 추구한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년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언어의 한계를 파고든 사람.

윌러드 콰인
Willard Van Orman Quine
1908년
분석과 종합의 구분을 허문 분석철학자.

솔 크립키
Saul Kripke
1940년
이름과 필연을 다시 본 논리철학자.

고틀로프 프레게
Gottlob Frege
1848년
현대 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

루돌프 카르납
Rudolf Carnap
1891년
검증할 수 있는 것만 의미 있다 한 논리실증주의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년
세계를 고정된 사물이 아닌 과정으로 본 철학자.

G.E. 무어
G. E. Moore
1873년
상식을 옹호하고 분석철학을 연 사람.

길버트 라일
Gilbert Ryle
1900년
몸속 유령 같은 마음 관념을 비판한 철학자.

A.J. 에이어
A. J. Ayer
1910년
검증 가능해야 의미 있다 한 논리실증주의자.

J.L. 오스틴
J. L. Austin
1911년
말은 곧 행위다, 일상언어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1872년
논리와 평화를 함께 추구한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년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언어의 한계를 파고든 사람.

윌러드 콰인
Willard Van Orman Quine
1908년
분석과 종합의 구분을 허문 분석철학자.

솔 크립키
Saul Kripke
1940년
이름과 필연을 다시 본 논리철학자.

고틀로프 프레게
Gottlob Frege
1848년
현대 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

루돌프 카르납
Rudolf Carnap
1891년
검증할 수 있는 것만 의미 있다 한 논리실증주의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1861년
세계를 고정된 사물이 아닌 과정으로 본 철학자.

G.E. 무어
G. E. Moore
1873년
상식을 옹호하고 분석철학을 연 사람.

길버트 라일
Gilbert Ryle
1900년
몸속 유령 같은 마음 관념을 비판한 철학자.

A.J. 에이어
A. J. Ayer
1910년
검증 가능해야 의미 있다 한 논리실증주의자.

J.L. 오스틴
J. L. Austin
1911년
말은 곧 행위다, 일상언어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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