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길은 잘 찾는데 어디로 갈지는 안 묻는 머리, 철학자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걱정한 것

길은 잘 찾는데, 어디로 갈지는 모르는 내비게이션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켜면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을 척척 알려줘요. 그런데 내비게이션은 한 번도 이렇게 묻지 않아요. "거기 꼭 가야 해요? 거기 가면 정말 좋아요?" 길 찾는 솜씨는 기가 막힌데, 어디로 갈지, 가는 게 옳은지는 아예 관심이 없죠.
막스 호르크하이머라는 철학자는 우리 머리도 점점 이 내비게이션을 닮아간다고 걱정했어요. 무언가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데는 똑똑한데, 정작 "이걸 왜 하지?"는 안 묻게 됐다는 거예요. 그가 평생 붙들고 씨름한 게 바로 이 이야기예요.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누구인가요
호르크하이머는 1895년부터 1973년까지 살았던 독일 사람이에요.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불리는 학자 모임을 이끌었어요. 이름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하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연구소에 모여 "세상이 왜 이렇게 굴러갈까"를 함께 파고든 사람들이에요. 호르크하이머는 1930년, 서른다섯 살에 이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어 모임의 중심을 잡았죠.
그가 한창 연구하던 시절 독일에서는 나치가 권력을 잡았어요. 유대인이었던 그는 위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를 이어갔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독일로 돌아왔어요.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한 번 더 묻기
호르크하이머가 만든 생각의 방식을 '비판이론'이라고 불러요. 비판이라고 하면 흉을 보거나 트집을 잡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뜻이 좀 달라요.
친구가 "원래 다 그래"라고 말할 때를 떠올려 보세요. 비판이론은 바로 그 "원래"에 손을 들고 묻는 일이에요. "정말 원래 그래야 해요? 누가 정했어요? 다르게 할 수는 없어요?" 세상의 규칙을 당연한 공기처럼 그냥 마시지 말고, 한 번 입에 머금어 보고 "이거 누가 왜 이렇게 만들었지?" 하고 따져 보자는 거예요. 그래야 더 나은 쪽으로 바꿀 길도 보이니까요.

칼은 잘 드는데, 무엇을 자를지는 모르는 똑똑함
호르크하이머가 가장 걱정한 건 그가 '도구적 이성'이라고 부른 거예요. 말이 어렵죠? 장면부터 그려 볼게요.
잘 드는 칼이 하나 있어요. 이 칼은 무엇이든 빠르고 깔끔하게 잘라요. 그런데 칼은 빵을 잘라야 할지, 아니면 해서는 안 될 일에 쓰여야 할지는 스스로 알지 못해요. 그저 "어떻게 하면 잘 자를까"만 알 뿐이죠.
도구적 이성이란 딱 이렇게 '도구'가 되어 버린 생각이에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 얻을까"는 잘 따지는데, "그 목표가 과연 좋은 걸까"는 묻지 않는 머리예요. 방법에는 똑똑하고 목적에는 입을 다무는 거죠.

똑똑해질수록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호르크하이머는 친구인 아도르노와 함께 1947년에 한 책을 펴내며 이 걱정을 풀어놨어요. 사람들은 보통 "인류가 점점 똑똑해지고 기술이 발전하면 세상은 당연히 좋아진다"고 믿잖아요. 두 사람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어요.
생각해 보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솜씨는 좋은 일에도 쓰이지만 끔찍한 일에도 쓰일 수 있어요. 실제로 그들은 가장 발달한 기술과 조직력이 전쟁과 학살에 쓰이는 시대를 두 눈으로 봤어요. '어떻게'만 날카롭게 갈고 '왜'를 잊으면, 똑똑함이 오히려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도 와닿아요
이 이야기는 오래된 책 속 이야기로만 남지 않아요. 우리는 매일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많이"라는 말에 둘러싸여 살아요. 더 빠른 배송, 더 높은 점수, 더 많은 좋아요처럼요.
호르크하이머의 질문은 그 한가운데서 잠깐 멈추게 해요. "빠른 건 알겠는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죠? 이게 정말 좋은 목적지가 맞아요?" 내비게이션에게는 없는 그 질문을, 사람만은 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어요.

정리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끈 독일 철학자로, '비판이론'이라는 생각의 방식을 세운 사람이에요. 핵심은 두 가지예요. 첫째, "원래 그래"를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왜 그래야 하지?"라고 한 번 더 묻기. 둘째, '어떻게'만 잘 따지고 '왜'를 잊은 똑똑함, 곧 도구적 이성을 경계하기예요. 잘 드는 칼도, 빠른 내비게이션도 목적은 묻지 못해요. 그 물음만큼은 우리 몫이라는 것, 그게 호르크하이머가 남긴 가장 기억할 만한 부탁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