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이 국경에서 삼킨 모르핀의 비밀, 네 장면
비평가 벤야민은 32세에 교수가 될 자격을 박탈당했다
훗날 모두가 인용하게 될 그 책을, 1925년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판정했어요.
발터 벤야민은 박사 논문까지 마친 뒤, 마지막 임용 문턱에서 쫓겨났어요.
32세였어요.
교수가 되려면 박사 학위 위에 교수자격 논문을 하나 더 통과해야 하는데, 오늘날로 치면 연구 심사를 통과해야 정교수 트랙에 진입할 수 있는 것과 같아요.
문제의 논문이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에요.
17세기 독일 바로크 연극을 '알레고리'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한 책인데, 심사위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며 사실상 철회를 권고했어요.
벤야민은 결국 스스로 논문을 거뒀어요.
그 이후로 그는 정규직 없이 살았어요.
라디오 원고를 팔고, 번역을 하고, 잡지에 기고하며 프리랜서 글쟁이로 평생을 떠돌았어요.
한 번도 안정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판정이 얼마나 틀렸는지, 역사가 증명해줬어요.
"이해할 수 없다"고 판정받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20세기 후반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문학 저작 중 하나가 됐어요.
그 도장을 찍은 교수들의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았고요.
벤야민은 사진 시대에 예술의 아우라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오늘 우리가 휴대폰으로 명화 사진을 무심히 넘길 때 잃어버리는 그 무언가의 이름을, 1936년 벤야민이 미리 지어놓았어요.
그 이름이 아우라(Aura)예요.
원본만이 가진 신비로운 후광, 그 장소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말해요.
루브르 박물관에서 진짜 모나리자 앞에 섰을 때 어딘가 모를 전율이 드는 그 감각이에요.
그런데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같은 그림을 수백만 장 복제해서 전 세계에 뿌리면, "원본만의 분위기"는 조금씩 희석돼요.
벤야민은 망명지 파리에서 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이렇게 썼어요.
"복제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우라는 사라진다."
사진이 찍히는 순간, 원본의 신비가 분산된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벤야민은 이걸 슬퍼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예술이 마침내 종교의 잔재에서 풀려난다"며 환영했어요.
예술이 교회와 귀족의 전유물이던 시대에, 작품에는 숭배의 분위기가 배어있었어요.
사진이 그 신성함을 해체하면, 예술은 비로소 대중의 것이 된다고 그는 믿었어요.
사진을 가장 깊이 사랑한 비평가가, 사진이 예술의 신비를 죽인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가장 기꺼이 받아들인 거예요.
인스타그램에서 명화를 백 번 본 사람이 막상 미술관에서 진품 앞에 서면 "이게 다야?" 싶은 그 감정, 그게 90년 전 벤야민이 예측한 바로 그 풍경이에요.
벤야민은 13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끝내지 못했다
벤야민의 대표작은 그가 13년 동안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책이에요.
1927년 그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19세기 파리에 있던 유리 지붕 쇼핑 거리 '아케이드(파사주)'를 통해 자본주의 도시 문명 전체를 해부하겠다는 책이에요.
아케이드는 유리 지붕 아래 상점·카페·극장이 줄지어 늘어선 실내 거리로, 오늘날로 치면 최초의 쇼핑몰이에요.
벤야민은 1940년 죽기 직전까지 13년간 파리 국립도서관에 매일 나갔어요.
그런데 단 한 챕터도 완결된 형태로 쓰지 못했어요.
사후에 발견된 것은 천 페이지가 넘는 메모와 인용문 더미였어요.
13년간 노트북에 자료만 모으고 첫 문장도 못 쓴 작가가 그 노트 자체로 평가받게 된 것과 같아요.
《아케이드 프로젝트(Passagen-Werk)》는 미완성인 채로 세상에 나왔지만, 20세기 후반 도시 문명과 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영원한 광맥이 됐어요.
완성됐다면 그저 또 하나의 비평서였을 거예요.
미완으로 남은 덕분에, 연구자들이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빈칸을 채우게 됐고, 그게 이 책을 더 오래 살아남게 만들었어요.
벤야민은 1940년 국경에서 검은 가방과 함께 사라졌다
벤야민이 12시간만 더 버텼다면, 그도 그의 마지막 원고도 살아남았을 거예요.
1940년 9월,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벤야민은 도망쳤어요.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도보로 넘어 스페인 국경 마을 포르부(Portbou)에 도착했어요.
피레네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를 가르는 산줄기로, 당시 나치를 피해 도망치는 유대인들이 목숨을 걸고 넘던 탈출 경로였어요.
다음 날, 스페인 당국이 통보했어요.
"당신의 미국행 비자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십시오."
나치가 장악한 프랑스로 돌아간다는 건 체포를 의미했어요.
그날 밤 벤야민은 모르핀을 다량 복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48세였어요.
그가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검은 서류 가방 속 원고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함께 도망쳤던 일행은 국경을 통과했어요.
스페인이 하룻밤 사이에 정책을 바꾼 거예요.
벤야민만 12시간을 버티지 못했어요.
비행기 결항 통보를 받고 포기한 뒤 쓰러졌는데, 다음 날 아침 비행기가 다시 뜬 것과 같아요.
그것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뒤에.
그 가방 속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어요.
어쩌면 그것이 그가 13년 동안 끝내지 못했던 그 책의 마지막 조각이었을 수도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