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퍼트넘, 자기 학설을 평생 뒤집은 분석철학자
퍼트넘은 쌍둥이 지구 하나로 의미론을 뒤집었다
퍼트넘은 단 한 번의 사고실험으로, 의미는 머릿속에 있다는 2천 년 된 상식을 뒤집었어요.
1975년 논문 '의미의 의미'(The Meaning of 'Meaning')에서 그는 이런 상황을 제시해요.
지구와 모든 것이 똑같지만, '물'의 화학식만 H2O가 아니라 XYZ인 쌍둥이 지구가 있다고 가정하는 거예요.
그 별 사람들도 투명하고 목마를 때 마시는 액체를 '물'이라고 불러요.
두 지구 사람의 머릿속 상태는 완전히 동일해요.
같은 단어를 쓰고, 같은 감각을 느끼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물'의 의미는 달라요.
한쪽은 H2O를, 다른 쪽은 XYZ를 가리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퍼트넘이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의미를 결정하는 건 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라고.
그는 이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어요. "의미는 머릿속에 있지 않다(Meanings just ain't in the head)."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 철학자들은 말의 의미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다고 믿었어요.
퍼트넘은 그 전제 자체를 가상의 행성 하나로 날려버린 거예요.
그것도 논문 한 편으로.
퍼트넘은 자기가 만든 기능주의를 스스로 폐기했다
퍼트넘은 자신이 만든 이론이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자, 가장 먼저 그것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1960년대 그는 '기계상태 기능주의'를 창안해요.
마음이란 두뇌라는 하드웨어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라는 이론이에요.
오늘날 인공지능과 인지과학 이론의 상당 부분이 이 발상 위에 세워졌어요.
그런데 1988년, 그는 저서 '표상과 실재'(Representation and Reality)를 출간해요.
내용은 자기 이론의 공식 폐기였어요.
인지과학 절반을 자기 손으로 세운 사람이, 직접 그 건물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 꼴이에요.
퍼트넘이 이론을 뒤집은 이유는 명확했어요.
기능주의는 마음의 질적 경험을 설명하지 못해요.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정교해도, 커피 향이 좋다는 '느낌' 자체는 프로그램으로 재현할 수 없거든요.
이건 단순히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달라요.
자기 이론이 표준 교과서에 실린 뒤에도 "그거 내가 만들었는데,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에요.
퍼트넘은 그걸 해냈어요.
퍼트넘은 실재론 입장을 평생 세 번 갈아탔다
동료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돌았어요. "이번 주의 퍼트넘은 어느 쪽일까?"
퍼트넘은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하나에서, 30년 동안 세 번 자기 입장을 바꿨어요.
1960~70년대에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이었어요. 세계는 우리와 독립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진리는 하나라는 입장이에요.
1981년 저서 '이성, 진리, 역사'(Reason, Truth and History)를 내면서 내재적 실재론으로 갈아탔어요.
내재적 실재론은 이런 주장이에요.
세계는 실재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항상 우리의 언어와 개념 체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1990년대에는 또 바뀌었어요.
자연적 실재론으로 옮겨간 그는, 우리의 지각 자체가 이미 세계와 직접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어요.
30년간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정치 성향을 세 번 바꾼 사람이 친구들한테 "오늘은 어느 쪽이야?"라는 질문을 받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그 농담 뒤에는 다른 면이 있어요.
퍼트넘이 입장을 바꾼 건 유행 때문이 아니었어요.
논리가 이끄는 곳으로 솔직하게 따라간 결과였거든요.
퍼트넘은 68세에 처음으로 성인식을 치렀다
평생 가장 차가운 논리로 세상을 분석한 철학자가, 68세에야 처음으로 13세 소년이 치르는 의식 앞에 섰어요.
바르 미츠바는 유대교 성인식이에요.
보통 13세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토라를 공개적으로 낭독하며 종교적 성인으로 인정받는 의례예요.
1994년, 퍼트넘은 그걸 68세에 처음 치렀어요.
그의 아버지 새뮤얼 퍼트넘은 공산주의자이자 번역가였어요.
종교를 믿지 않았고, 그래서 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지 않았어요.
퍼트넘은 그렇게 평생 세속적인 분석철학자로 살았어요.
그런데 노년의 퍼트넘은 유대교 전통 속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이후 그는 '유대 철학자로서의 유대 철학'(Jewish Philosophy as a Guide to Life)을 쓰며 종교와 철학을 연결하려 했어요.
평생 무신론자였던 사람이 70세에 처음 절에 들어가 예불을 드리는 것과 비슷한 장면이에요.
결국 퍼트넘이 마지막으로 남긴 건 논문도, 반박도 아니었어요.
평생 논리의 언어로 살던 사람이 노년에 고른 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그게 철학의 끝인지, 아니면 진짜 시작인지는 퍼트넘도 끝내 말하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