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를로퐁티가 데카르트 앞에서 죽은 날
메를로퐁티는 데카르트 강의를 준비하다 책상에서 죽었다
1961년 5월 3일 밤, 평생 몸이 먼저라고 외친 철학자가 데카르트 원고 위에 엎어졌어요.
메를로퐁티는 그날 파리의 콜레주 드 프랑스 연구실에서 강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콜레주 드 프랑스는 프랑스 최고의 학술 기관으로, 오늘날로 치면 전 세계 학자들이 선망하는 가장 좁은 문의 석좌 자리예요.
책상 위에는 데카르트의 「굴절광학」이 펼쳐져 있었어요.
심장마비였어요.
53세였어요.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마음과 몸을 완전히 분리한 철학자예요.
메를로퐁티는 바로 그 생각을 평생 비판하며 살았어요.
"몸이 먼저예요."
그게 그의 철학 전체를 한 줄로 줄인 말이에요.
평생 흡연의 위험을 알리던 의사가 금연 강연 직전에 쓰러진 격이에요.
메를로퐁티는 '나는 지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적었다
메를로퐁티는 서양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한 문장을, 같은 프랑스어로 뒤집어버렸어요.
1637년 데카르트가 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이후 300년 동안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 됐어요.
의식이 먼저고, 몸은 그 의식이 타고 다니는 기계라는 생각이에요.
1945년,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을 내놓았어요.
20대 후반부터 10년 가까이 준비한 대표작이에요.
그는 이 책에서 의식이 먼저가 아니라 몸이 먼저 세계와 만난다고 썼어요.
자전거를 배울 때, 아무도 "왼발 무게를 43% 이동하라"는 공식을 외워서 타지 않아요.
몸이 먼저 익히고, 머리는 훨씬 뒤에 따라와요.
그게 바로 그의 핵심 개념인 '신체 도식(body schema)'이에요.
신체 도식이란, 몸이 계산하지 않고도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이에요.
컵을 잡을 때 손가락 각도를 계산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는 이 개념 하나로 데카르트가 300년 동안 쌓아온 전제를 흔들었어요.
메를로퐁티는 자기가 창간한 잡지에서 사르트르와 갈라섰다
메를로퐁티는 자기가 만든 잡지에서, 자기 발로 걸어 나갔어요.
1945년, 그는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레 탕 모데른」을 창간했어요.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인간주의다"로 전후 유럽 전체를 뒤흔든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어요.
「레 탕 모데른」은 곧 전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 잡지가 됐어요.
그런데 1953년, 메를로퐁티는 편집장 자리를 내려놓았어요.
한국전쟁이 계기였어요.
사르트르가 소련 편을 들자, 메를로퐁티는 더는 침묵할 수 없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공동 창업한 회사에서 파트너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상황이에요.
싸우는 대신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어요.
2년 뒤인 1955년, 그는 「변증법의 모험」에서 사르트르의 정치 철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어요.
가장 친한 동료를, 가장 공개적인 방식으로 저격한 거예요.
자기가 만든 잡지를 두고 떠난 사람이 해야 할 마지막 말이었어요.
메를로퐁티는 미완성 원고를 책상에 남기고 떠났다
그가 죽은 책상 위에는,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책의 원고가 펼쳐져 있었어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메를로퐁티가 마지막으로 쓰던 책이에요.
이 책에서 그는 '살(chair)'이라는 새 개념을 만들고 있었어요.
살이란, 보는 사람과 보이는 세계가 사실은 같은 재질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에요.
내가 사과를 볼 때, 나와 사과 사이에 유리벽이 있는 게 아니에요.
내 눈과 사과는 결국 같은 세계의 재료예요.
그래서 보는 행위는 세계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고 그는 썼어요.
그는 이 책을 끝내지 못했어요.
마라톤 결승선이 보이는 마지막 100m에서 쓰러진 선수처럼,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는데 닿지 못했어요.
친구 클로드 르포르가 1964년, 미완성 그대로 출간했어요.
완성된 문장과 멈춰버린 문장이 함께 인쇄됐어요.
그 미완성이 묘하게도 더 오래 읽히게 됐어요.
완성된 답이 없으니, 독자들이 직접 생각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평생 몸과 세계의 만남을 탐구한 사람이, 그 탐구 위에 자기 몸을 남기고 떠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