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슨이 끝내 책을 쓰지 않은 이유
데이비드슨은 평생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도널드 데이비드슨은 20세기 분석철학을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에요.
그런데 그는 86년을 살면서 단 한 권의 단행본도 쓰지 않았어요.
그의 첫 번째 책 「행위와 사건에 관한 에세이들」이 나온 건 1980년이에요.
그때 데이비드슨의 나이는 63세였고, 그 책도 사실 이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한데 묶은 논문집이었어요.
이후 나온 책들도 전부 마찬가지였어요.
평생 단편소설만 쓰고 장편 소설은 한 편도 내지 않은 노벨문학상 작가가 있는 셈이에요.
동료 철학자들이 줄줄이 두꺼운 단행본을 펴내는 동안, 데이비드슨은 짧은 논문만 썼어요.
그러면서도 철학의 지형을 통째로 바꿔버렸어요.
데이비드슨의 박사논문 주제는 플라톤 대화편이었다
분석철학을 재편한 거장의 출발점은 2300년 전 그리스어 대화편이었어요.
1949년 하버드에서 받은 데이비드슨의 박사논문 주제는 플라톤의 「필레보스」였어요.
「필레보스」는 "쾌락이 좋은 삶의 조건인가, 아니면 지혜인가"를 묻는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이에요.
당시 분석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텍스트를 낡은 형이상학으로 여기고 외면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훗날 언어와 마음에 대한 현대 분석철학의 틀을 새로 짠 인물이, 하필 그 텍스트로 학문을 시작한 거예요.
최첨단 K팝 작곡가의 졸업논문이 알고 보니 바흐 푸가 분석이었던 격이에요.
그를 지도한 건 윌러드 콰인이었어요.
콰인은 20세기 후반 미국 분석철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데이비드슨은 그 아래서 공부하면서도 고전 텍스트로 논문을 썼어요.
기묘한 출발이었지만, 결국 그 양쪽이 그의 철학 안에서 하나로 합쳐졌어요.
데이비드슨의 1963년 논문이 30년 합의를 뒤집었다
1963년, 한 미국 철학자가 18쪽짜리 논문 한 편으로 30년간의 합의를 뒤집어버렸어요.
논문 제목은 「행위, 이유, 원인」이었고, 주장은 딱 하나였어요.
"누군가의 이유는 동시에 그 행동의 원인이다."
당시 영미 철학계에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학파의 영향이 짙게 깔려 있었어요.
비트겐슈타인 학파는 언어와 논리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하는 집단이었는데, 이들은 30년 가까이 "이유와 원인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설명이다"라는 입장을 정설로 유지하고 있었어요.
예컨대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고 할 때, '배고픔'은 당신 행동의 이유이지 원인이 아니라고 봤어요.
데이비드슨은 그 경계를 허물었어요.
"이유는 원인이기도 하다. 둘은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는 것뿐이다."
수십 년 학계 정설이 짧은 논문 한 편에 무너지는 광경이었어요.
이 논문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단순히 한 이론의 승패가 아니었어요.
행위철학, 즉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설명할 것인가"를 다루는 분야 전체가 방향을 바꿨어요.
이후 행위철학은 데이비드슨이 제시한 틀 위에서 다시 논쟁을 시작해야 했어요.
데이비드슨은 마음이 곧 뇌지만 법칙은 없다고 했다
데이비드슨은 마음이 곧 뇌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의 과학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이 두 주장은 보통 함께 쥘 수 없는 것이에요.
하지만 데이비드슨은 그걸 한 손에 쥐고, 1970년 논문 「정신적 사건」에서 무법칙 일원론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무법칙 일원론은 두 개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어요.
첫째, 모든 정신적 사건은 동시에 물리적 사건이에요. 슬픔을 느끼는 순간 뇌 안에서는 반드시 물리적 변화가 일어나요. 그 점에서 마음과 뇌는 같은 하나예요.
그런데 둘째, 그 물리적 변화와 정신적 경험 사이를 잇는 엄밀한 과학 법칙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아요.
물이 H2O라는 건 인정하면서도, 화학으로는 절대 물의 본질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우기는 식이에요.
이게 가능한가 싶지만, 데이비드슨의 논리는 이랬어요.
"정신적 사건은 물리적 사건이지만, 정신적 기술(記述) 자체가 물리 법칙의 그물에 잡히지 않아요."
기술(記述)이란 같은 사건을 어떻게 부르느냐의 문제예요.
내일 비가 온다는 사실을 "저기압이 이동한다"고도 할 수 있고, "날씨가 나빠진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 두 기술은 가리키는 사건은 같지만, 어느 법칙이 적용되느냐는 달라요.
데이비드슨은 마음에 대해서도 똑같이 봤어요.
"당신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설명과 "뇌의 편도체가 활성화됐다"는 설명은 같은 사건을 가리키지만, 심리적 설명에는 신경과학의 법칙이 직접 내려앉지 않아요.
그래서 마음은 뇌 안에 있으면서도, 마음을 다루는 언어는 물리 법칙의 언어로 완전히 번역될 수 없어요.
이 주장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제대로 읽은 거예요.
신경과학이 뇌를 속속들이 밝혀내도, 어쩌면 우리가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경험을 법칙으로 꿰뚫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데이비드슨은 책 한 권 없이 그 질문을 남기고 2003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