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로티위스, 책궤에 숨어 탈옥한 국제법의 아버지
흐로티위스는 1621년 책궤에 숨어 종신형에서 탈옥했다
1621년 봄, 한 죄수가 책궤에 몸을 구겨 넣고 네덜란드 국경을 넘었어요.
그 죄수가 훗날 국제법을 만들었어요.
뢰벤스테인 성은 네덜란드 중부, 강 두 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정치범 수용소예요.
그곳에 종신형으로 갇혀 있던 휘호 흐로티위스를 구출한 건 아내 마리아 판 레이허르스베르흐였어요.
흐로티위스는 감옥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어요.
책 상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게 일상이었고, 간수들은 처음엔 무게를 쟀죠.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자 아무도 궤짝을 열어보지 않았어요.
그날, 마리아는 책 대신 남편을 궤짝 안에 눕혔어요.
하인들이 궤짝을 들고 성 계단을 내려갔고, 강변 배에 실었어요.
영화 「쇼생크 탈출」을 1m짜리 나무 궤짝 한 개로 끝낸 거예요.
훗날 모든 국가가 따라야 할 법을 제시한 사람이, 자기 나라 법에서는 책 더미로 위장해야 국경을 넘을 수 있었어요.
11살에 라이덴 대학에 들어간 천재가 정치범이 됐다
11살에 대학에 들어간 천재가, 35살에 종신형 죄수가 되어 있었어요.
흐로티위스는 1594년, 만 11세에 라이덴 대학에 입학했어요.
라이덴 대학은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문이었고, 그 나이에 입학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어요.
4년 뒤, 15세의 흐로티위스는 프랑스 왕 앙리 4세 앞에서 라틴어로 직접 변론을 펼쳤어요.
한국으로 치면, 천재 소년이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뒤 정파 싸움에서 진 쪽 변호사로 몰려 무기징역을 받은 격이에요.
그런데 이 천재가 35살에 종신형을 받게 돼요.
계기는 칼뱅파 내부 종교 분쟁이었어요.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아르미니우스파와 정통 칼뱅파가 충돌하고 있었어요.
아르미니우스파는 "신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줬다"고 주장했고, 정통 칼뱅파는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맞섰어요.
같은 교단 안에서 교리 해석이 달라 서로를 이단으로 몬 거예요.
흐로티위스는 관용을 주장하던 정치 지도자 올덴바르네벨트 편에 섰어요.
올덴바르네벨트는 결국 처형됐고, 흐로티위스는 종신형을 받았어요.
훗날 '전쟁과 평화의 법'을 쓰게 될 사람이, 자기 나라의 종교 내전을 멈추지 못해 감옥에 갇힌 거예요.
흐로티위스의 자유해양론은 동인도회사의 의뢰서였다
현대 해양법의 기본 원리는, 17세기 거대 기업의 변론 의뢰서에서 시작됐어요.
1609년, 「자유로운 바다(Mare Liberum)」라는 책이 익명으로 출간됐어요.
"바다는 어느 나라도 소유할 수 없다"고 선언한 이 책은 오늘날 해양법의 뿌리예요.
그런데 이 책이 어떻게 쓰이게 됐는지 알면 조금 당황하게 돼요.
160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말라카 해협에서 포르투갈 상선 산타 카타리나호를 나포했어요.
말라카 해협은 오늘날 싱가포르 옆, 아시아 무역의 핵심 통로예요.
VOC는 이 나포 사건이 합법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고, 20대 변호사 흐로티위스에게 변론을 의뢰했어요.
흐로티위스가 쓴 변론서가 바로 「자유로운 바다」의 원형이었어요.
논리는 이랬어요. "포르투갈은 바다를 소유할 수 없으니, VOC의 나포는 정당하다."
오늘날 글로벌 IT 기업이 변호사를 고용해 자사 사업 모델을 정당화하는 백서를 쓰게 했는데, 그게 400년 뒤 국제법 교과서가 된 격이에요.
'인류 공동의 바다'라는 숭고한 원리가, 사실 해상 약탈을 정당화하라는 기업 의뢰에서 출발했어요.
좋은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미리 알 수 없어요.
흐로티위스는 망명지 파리에서 전쟁의 법을 썼다
자기 나라 법에서 도망친 사람이, 모든 나라가 따라야 할 법을 썼어요.
탈옥 후 흐로티위스는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어요.
그리고 4년 뒤인 1625년, 「전쟁과 평화의 법(De Jure Belli ac Pacis)」을 출간했어요.
이 책이 나온 시기를 보면 더 놀라워요.
당시 유럽은 30년 전쟁 한복판이었어요.
30년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종교 전쟁으로,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죽인 사상 최악의 참사예요.
그 전쟁 속에서 흐로티위스는 주장했어요.
"전쟁에도 지켜야 할 법이 있다."
민간인 보호, 포로 처우, 협상 보장 같은 원리들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체계화했고, 오늘날 국제 전쟁법의 뿌리가 됐어요.
국적이 박탈된 망명자가 혼자서 UN 헌장 초안을 쓴 격이에요.
하지만 흐로티위스는 이 책을 낸 뒤로도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1645년, 발트해에서 배가 난파해 숨졌어요.
그는 자기 나라에서는 범죄자였어요.
그런데 그가 책궤 안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그 이후, 세계는 그가 쓴 법 위에서 전쟁을 멈추고 협상을 시작했어요.
책 더미 속에 숨었던 사람이 남긴 게, 이 정도라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