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안테스, 권투선수에서 스토아 수장이 된 철학자의 99세 단식
권투선수 클레안테스는 4드라크마로 아테네에 왔다
스토아학파 2대 수장의 이력서 첫 줄은 철학자가 아니라 권투선수예요.
클레안테스는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청년이었는데,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주머니에 동전 네 닢밖에 없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카드 한 장 없이 서울에 혼자 상경한 셈이에요.
그런데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일자리가 아니라 철학 강의실이었어요.
낮에는 제논의 강의를 들었어요.
제논은 스토아학파를 창시한 철학자예요.
스토아학파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학파예요.
밤에는 정원에 물을 길어 나르는 일로 밥을 먹었어요.
강의 내용을 적을 종이도 없어서, 도자기 조각이나 황소 어깨뼈에 필기를 했다고 전해져요.
고대 역사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이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덕분에 우리는 2,3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이상한 청년을 알 수 있어요.
그가 정원사 일을 부끄러워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요.
동료들은 클레안테스를 당나귀라 부르며 조롱했다
제논 사후 스토아학파를 물려받은 사람은 가장 똑똑한 제자가 아니라, 가장 둔하다고 놀림받던 제자였어요.
같은 학파의 동료들은 클레안테스를 "당나귀(ὄνος)"라고 불렀어요.
이해가 느리고 반응이 굼뜨다는 이유에서였죠.
똑같은 강의를 들어도 그는 또래들보다 확실히 더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클레안테스의 반응이 걸작이에요.
별명을 부정하거나 화내는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져요.
"맞아. 그래서 나만 제논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거야."
또래들은 더 빠르고 화려한 이론을 펼쳤어요.
하지만 클레안테스는 19년이 넘게 제논 곁을 떠나지 않고 강의를 받아 적었어요.
결국 제논이 세상을 떠났을 때, 후계자는 클레안테스였어요.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자리를 이어받은 거예요.
회사에서 제일 일머리 없다고 놀림받던 신입이 20년 뒤 대표가 된 상황이에요.
사도 바울은 클레안테스의 찬가를 인용했다
신약성서 안에 그리스 철학자가 쓴 시 한 줄이 박혀 있어요.
클레안테스가 남긴 거의 유일한 완전한 작품은 「제우스 찬가」예요.
이 시는 우주 전체를 하나의 이성, 즉 로고스(logos)가 관통한다고 노래해요.
로고스는 쉽게 말하면 만물을 움직이는 하나의 질서예요.
시의 핵심 주장은 이래요.
신은 우주 어디에나 있고, 인간도 그 신성한 이성의 일부라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하나의 거대한 이유로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예요.
수백 년 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아레오파고스에서 연설을 해요.
아레오파고스는 고대 아테네의 의회 겸 법정으로, 도시에서 가장 권위 있는 토론 공간이었어요.
그 연설 안에서 바울이 인용한 "우리도 그의 자손이라"는 구절이 클레안테스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져요.
이방 신 제우스를 찬양한 철학자의 시구가 기독교 성서 안에 그대로 살아남은 거예요.
무신론자 작곡가의 멜로디가 찬송가로 불리게 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클레안테스는 기독교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언어는 다른 종교의 경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클레안테스는 99세에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의사는 그에게 다시 먹으라고 했지만, 클레안테스는 "이미 길의 절반을 왔는데 되돌아갈 수 없다"고 답했어요.
노년의 클레안테스는 잇몸에 종양이 생겼어요.
의사가 며칠 단식을 처방했고, 종양은 가라앉았어요.
"이제 드셔도 됩니다"라는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어요.
어차피 죽음 쪽으로 걷고 있는데, 이제 와서 돌아서는 게 무슨 의미냐는 거였어요.
클레안테스는 단식을 계속했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어요.
일부 전승에 따르면 그의 나이는 99세였어요.
4드라크마로 아테네에 도착해 어깨뼈에 필기하고 정원 일로 버텨온 사람이, 마지막 한 끼마저 자기 뜻으로 결정했어요.
평생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익혀온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더 먹고 더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식탁 앞의 침묵이, 어쩌면 그가 평생 가르친 철학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