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이 자기 학파를 해체한 이유, 거울 단계부터 마지막 편지까지
라캉의 첫 강연은 10분 만에 강제로 끊겼다
라캉의 가장 유명한 개념은, 처음 발표한 자리에서 10분 만에 끊겼어요.
1936년 8월, 체코의 휴양도시 마리앙바드에서 열린 국제정신분석협회 학회였어요.
라캉이 발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의를 주재하던 어니스트 존스가 손을 들었어요.
존스는 당시 IPA 회장이자 프로이트의 공식 전기를 쓴 영국 정신분석가였어요.
그는 "시간이 됐습니다"라며 라캉의 발표를 중단시켰어요.
라캉은 출판용 원고도 제출하지 않고 그냥 자리를 떴어요.
그 논문이 정식으로 세상에 나온 건 13년 뒤인 1949년이에요.
그런데 그 논문이 바로 「거울 단계」, 20세기 정신분석을 통째로 다시 쓴 그 개념이에요.
거울 단계는 이런 얘기예요.
생후 6~18개월 된 아기는 아직 자기 몸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요.
그런데 거울 앞에 서면, 완벽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형상을 봐요.
아기는 그 거울 속 이미지를 보고 "저게 나야"라고 느껴요.
하지만 그 이미지는 사실 자기 바깥에 있는 가짜예요.
'나'라는 감각이 처음부터 거울 속 남의 형상을 빌려서 만들어진다는 주장이에요.
회사 첫 발표에서 임원이 마이크를 꺼버린 발표자가 훗날 업계 전체를 바꿔놓은 상황, 라캉의 데뷔가 딱 그랬어요.
라캉의 분석 세션은 길어야 한 시간, 짧으면 5분이었다
세계 정신분석학회는 라캉을 회원 명단에서 지웠어요.
이유는 단순했어요.
라캉이 기존 규칙을 무시했거든요.
당시 정통 정신분석은 한 세션을 50분으로 고정했어요.
프로이트가 정한 방식이고, 전 세계 분석가들이 따르는 표준이었어요.
그런데 라캉은 「가변 길이 세션」을 도입했어요.
환자에 따라 시간을 달리했어요.
어떤 환자는 한 시간을 받았고, 어떤 환자는 5분 만에 "오늘은 여기까지요"라는 말을 들었어요.
영화관 티켓을 끊었는데 5분 만에 직원이 나타나 내보내는 느낌이었을 거예요.
라캉의 논리는 달랐어요.
환자가 핵심을 말하는 순간 세션을 끊으면, 그 단어가 더 오래 머릿속을 맴돈다는 거예요.
50분을 채우는 것보다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IPA는 이를 비윤리적으로 봤어요.
1953년 라캉은 파리정신분석학회에서 갈라져 나왔고, 1963년 IPA는 라캉을 공식 자격자 명단에서 아예 제외했어요.
라캉 본인은 이 사건을 "대파문"이라고 불렀어요.
대파문은 원래 교회 용어예요.
중세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교회 공동체에서 완전히 쫓겨나는 것을 뜻해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분석가가, 정신분석의 공식 기관에서 이단으로 찍힌 셈이에요.
라캉은 쿠르베의 그림을 평생 다른 그림으로 가렸다
욕망을 이론화한 사람이, 자기 침실의 그림 한 점을 평생 가렸어요.
1955년 라캉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한 점을 사들였어요.
쿠르베는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 그림이 「세계의 기원(L'Origine du monde)」이에요.
1866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여성 신체의 클로즈업을 담은 작품으로, 19세기 내내 소수의 수집가들만 사적으로 소장하던 그림이에요.
공개 전시는 꿈도 못 꾸던 작품이었어요.
라캉은 이 그림을 사자마자 바로 가렸어요.
그는 처남인 앙드레 마송에게 이 그림을 숨길 나무 패널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마송은 초현실주의 화가로, 라캉의 가족이자 가까운 동료였어요.
마송은 패널 위에 추상적인 풍경화를 그렸어요.
그리고 패널 옆에 작은 손잡이를 달았어요.
손잡이를 당기면 풍경화 뒤에서 쿠르베의 진짜 그림이 드러나는 이중 액자가 완성됐어요.
이 장치는 라캉의 시골집 기트랑쿠르 침실 벽에 30년 가까이 걸려 있었어요.
라캉이 죽고도 한참 뒤인 1995년,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됐어요.
지금은 파리에서 누구나 볼 수 있어요.
라캉이 평생 강의한 핵심 명제가 있어요.
욕망의 대상은 완전히 드러나는 순간 욕망이 사라진다는 거예요.
숨겨져 있을 때만, 당길 수 있는 손잡이가 있을 때만, 욕망은 살아있다는 거예요.
그 명제가 그의 침실 벽에 그대로 걸려 있었던 셈이에요.
라캉은 죽기 1년 8개월 전 자기 학파를 직접 해체했다
라캉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큰 결정은, 자기 학파를 자기 손으로 닫는 것이었어요.
IPA에서 쫓겨난 직후인 1964년, 라캉은 「파리 프로이트 학파(École Freudienne de Paris)」를 직접 창설했어요.
추방당한 사람이 자기 왕국을 새로 연 거예요.
그 후 16년간 라캉은 매주 세미나를 열었어요.
강의실에는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루이 알튀세르, 롤랑 바르트,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당대 프랑스 사상의 거물들이 앉아 있었어요.
당시 프랑스 지성계에서 라캉의 세미나는 그냥 강의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1980년 1월 5일, 라캉은 편지 한 통을 보냈어요.
편지에는 파리 프로이트 학파의 해체를 선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16년간 키운 학파를, 한 장의 편지로 닫았어요.
라캉은 해체 이후 바로 「프로이트의 대의(La Cause freudienne)」라는 새 단체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 단체를 이끌 시간이 없었어요.
1981년 9월 9일, 라캉은 세상을 떠났어요.
자기 학파를 해체한 지 1년 8개월 만이었어요.
한 번은 학회에서 쫓겨났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쫓아낸 셈이에요.
욕망의 대상은 완전히 손에 잡히는 순간 사라진다고, 라캉은 평생 가르쳤어요.
자기가 만든 학파도, 그 예외가 아니었던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