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몽 룰의 ars magna, 신학을 기계로 만든 카탈루냐 신학자
라몽 룰의 회전 원반을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베꼈다
라이프니츠가 19살에 박사논문을 쓰면서 한 카탈루냐 수도사의 종이 원반을 인용했어요.
카탈루냐는 오늘날 스페인 북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이에요.
미적분학을 만든 그 라이프니츠가, 1666년에 쓴 논문 De Arte Combinatoria에서 직접 그 수도사의 이름을 올렸어요.
그 수도사가 만든 것이 ars magna, 라틴어로 '위대한 기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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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를 당기면 세 칸이 돌아가는데, 어떤 조합이 나와도 결과가 논리적으로 정해지는 기계라고 상상하면 됩니다.
ars magna가 딱 그 구조예요.
종이 원반 세 장을 동심원으로 겹쳐 놓고, 각 원반에 신의 속성 9가지를 적은 다음 돌리면, 어떤 칸에 멈춰도 올바른 신학 명제가 나오도록 설계된 장치예요.
라몽 룰은 이 원반이 인간의 실수나 편견 없이 신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이것을 "보편 기호학의 시조"로 인정했어요.
모든 개념을 기호로 바꾸고, 기호를 규칙에 따라 조합하면 진리가 나온다는 생각이요.
오늘날 컴퓨터가 하는 일과 구조가 같아요.
13세기 카탈루냐 수도사의 종이 원반이 17세기 컴퓨터 구상의 시작점이 됐습니다.
궁정 시인 라몽 룰은 30살에 환영 다섯 번을 봤다
그날 밤 라몽 룰은 사랑 노래의 마지막 연을 끝내지 못했어요.
1232년, 지중해 마요르카 섬에서 태어난 그는 왕실 귀족의 측근이었어요.
결혼해서 두 아이를 두고, 귀족 여인들에게 사랑 노래를 바치는 궁정 시인이었습니다.
30살 무렵의 어느 밤이었어요.
책상에서 사랑 노래의 마지막 연을 쓰고 있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환영이 나타났어요.
그는 자서전 Vita coaetanea, '동시대의 삶'이라는 뜻의 자기 기록에 그 장면을 직접 써뒀어요.
놀라서 붓을 내려놓고 다시 앉았는데, 이튿날 밤에 또 나타났어요.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요.
닷새 연속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환영을 본 뒤, 라몽 룰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포기했어요.
회사 보고서를 마감 전날 밤 쓰다가 사표를 낸 동료를 상상하면 이해가 빠른데, 단 그 동료가 사무실을 나간 게 아니라 아예 집과 가족을 두고 산으로 올라간 거예요.
노래 마지막 연을 끝내지도 못한 채, 30년 인생이 하룻밤에 바뀌었습니다.
라몽 룰은 9년 동안 무슬림 노예에게 아랍어를 배웠다
무슬림을 논리로 설득하려면, 먼저 무슬림에게 배워야 했어요.
회심 후 라몽 룰이 세운 목표는 단 하나였어요.
무슬림 학자들과 토론해서 이슬람 세계 전체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당시 이슬람 신학의 최고 수준 토론은 아랍어로만 이루어졌거든요.
그래서 그는 무슬림 노예 한 명을 사서, 9년 동안 아랍어를 배웠어요.
그 9년 동안 마요르카의 란다(Randa) 산 동굴에서 홀로 수행하기도 했어요.
자서전에 따르면 바로 거기서 ars magna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신의 9가지 속성을 원반으로 조합하면 어떤 신학 논증도 자동으로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그 산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9년 끝에 기묘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 노예가 어느 날 라몽 룰을 칼로 공격했어요.
결국 노예는 감옥에 갇혔고, 거기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9년을 배웠는데, 정작 그 스승이 칼을 들었어요.
하지만 라몽 룰은 이 사건을 자서전에 기록하면서도 목표를 바꾸지 않았어요.
그것이 이 사람의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라몽 룰은 83살에 튀니지 군중에게 돌에 맞았다
라몽 룰은 83살에도 자기 기계가 이슬람 세계 전체를 개종시킬 거라고 믿었어요.
1314년경, 이미 팔순이 넘은 나이에 그는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건너갔어요.
무슬림 학자들과 공개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ars magna의 논리로 이슬람 신학자들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토론에서 이기면 상대가 승복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상대는 논리 대신 돌을 집어 들었어요.
군중에게 돌을 맞아 중상을 입은 라몽 룰은 마요르카로 돌아가는 배에 실렸어요.
그리고 1316년, 배 위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이 순교 일화는 후대에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어서,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에요.
평생 논리가 돌보다 강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 믿음으로 언어를 배우고, 산에 올라 기계를 설계하고, 83살에 또 바다를 건넜어요.
그 기계의 구조는 400년 뒤 라이프니츠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고,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 지금 이 글을 읽는 스마트폰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원반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돌을 피하지 못한 게 문제였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