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이 트럼프를 지지한 진짜 이유, 슬로베니아 좌파의 역설
지젝은 트럼프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2016년 11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좌파 철학자가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공개 선언했어요.
슬라보예 지젝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예요.
자본주의와 이데올로기를 평생 비판해온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영국 채널4 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마지못해 트럼프에게 투표하겠어."
10년간 비건으로 살아온 친구가 갑자기 "오늘은 맥도날드 가야겠어"라고 말하는 상황이에요.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젝의 논리는 이랬어요.
클린턴이 당선되면 미국 시스템의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잠든 좌파가 각성해서 진짜 변화가 시작될 거라는 거예요.
이 사고방식을 변증법이라고 해요.
헤겔이 체계화한 논리인데, 쉽게 말하면 "더 나쁜 상황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는 역설이에요.
지젝은 이 논리로 트럼프 지지를 정당화했어요.
결국 그의 예측은 틀렸어요.
트럼프 당선 이후 좌파는 각성하지 않았고, 지젝 본인도 이 발언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는 끝내 철회하지 않았어요.
지젝은 1990년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했다
대중문화로 헤겔을 풀어쓰던 그 사람은 한때 진짜 대통령이 될 뻔했어요.
1990년 4월,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하기 직전의 일이에요.
슬로베니아는 대통령 1명이 아니라 4명을 동시에 선출하는 집단 대통령제를 운영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직을 4인이 나눠 맡는 구조예요.
지젝은 자유민주당 후보로 이 선거에 나갔어요.
강의실의 사상가가 진짜로 거리에서 표를 구했어요.
구독자 100만 명짜리 유튜브 영화 리뷰어가 갑자기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 상황을 떠올려 보세요.
주변에서 "장난이지?"라고 물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젝은 진짜였어요.
결과는 5위였어요.
당선은 4위까지였으니까 한 자리 차이로 낙선한 거예요.
자크 라캉과 헤겔을 영화로 풀어쓰던 학자가 실제로 대통령이 될 뻔한 거예요.
라캉은 프로이트를 계승한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예요.
인간의 욕망과 무의식을 언어 구조로 분석한 사람으로, 지젝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사상가예요.
그런 어려운 이론을 강의실에서만 다루지 않고, 선거 유세장까지 가져간 사람이 지젝이에요.
지젝은 영화관에서 라캉을 가르치는 철학자다
지젝의 강의실은 대학 강당이 아니라 영화관 좌석이에요.
2006년, 그는 「변태의 영화 가이드」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어요.
이 다큐는 영화 장면을 통해 라캉의 욕망 이론을 해설하는 3부작 작품이에요.
제목은 황당하지만 내용은 진지한 철학 강의예요.
그는 히치콕의 「사이코」 욕실 장면에 직접 들어가서 설명해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속 도로를 걸으며 무의식을 이야기해요.
심지어 독일, 프랑스, 영국의 변기 모양을 비교하면서 각 나라의 이데올로기 차이를 설명하기도 해요.
대학 철학 강의 대신 유튜브 영화 채널로 칸트를 배우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에요.
그런데 그 채널 주인이 철학계에서 가장 진지하게 인정받는 학자라는 게 반전이에요.
학계에서 헤겔과 라캉은 가장 읽기 어려운 사상가로 꼽혀요.
헤겔은 19세기 독일 철학자로 변증법을 체계화한 사람이고, 라캉은 욕망과 무의식을 언어로 분석한 사람이에요.
둘 다 전공자도 고개를 젓는 텍스트를 남겼어요.
그런데 지젝은 이 두 사람을 콜라병과 변기로 설명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지젝은 자기 학생을 끔찍해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지젝의 책이 매년 그렇게 많이 나오는 진짜 이유는, 학생을 피하기 위해서래요.
2014년 Big Think 인터뷰에서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내 학생들을 증오해요."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다음 말이 더 구체적이에요.
그는 면담을 피하려고 사무실 문에 가짜 면담 시간표를 붙여놓는다고 했어요.
학생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요.
그리고 그 빈 시간에 미친 듯이 글을 쓴다는 거예요.
손님이 줄을 서는 카페 사장이 사실은 손님 한 명 한 명과 마주치기 싫어 부엌에 숨는 상황과 같아요.
밖에서 보면 최고로 인기 있는 가게인데, 안에서는 사장이 탈출구를 찾고 있는 거예요.
지젝은 전 세계 강연장에서 수천 명의 청중을 매료시키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정작 눈앞에 앉아있는 자기 학생과의 30분 면담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라는 거예요.
대중을 향해서는 끝없이 말하지만, 개인 앞에서는 도망친다는 게 지젝이라는 사람의 가장 이상한 역설이에요.
그렇게 도망치며 쓴 책이 60권이 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