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 창문에서 뛰어내린 이유와 차이의 철학
들뢰즈는 70세에 파리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들뢰즈는 1995년 11월 어느 새벽, 파리 아파트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70세였어요.
그 무렵 들뢰즈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어요.
폐 한쪽을 잘라낸 상태였고, 기관절개술을 받아 목에는 관이 연결돼 있었어요.
말을 거의 할 수 없었고, 혼자 숨을 쉬기도 버거웠어요.
평생 "변화", "생성", "탈주"를 외친 철학자가 자기 몸이라는 가장 좁은 감옥 안에 갇힌 셈이었어요.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비던 사람이 호흡기를 떼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면, 그 답답함이 어떨지 조금은 짐작이 가요.
그는 결국 탈주의 방식을 선택했는데, 그 방법이 창문이었어요.
들뢰즈의 죽음이 오래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그가 평생 가르친 것이 바로 "막힌 곳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 선택한 출구가 창문이었다는 사실은, 설명하기 어려운 무게로 남아요.
들뢰즈의 박사논문은 플라톤의 2400년을 뒤집었다
플라톤은 세상에 원본이 먼저 있다고 했어요.
들뢰즈는 정확히 그 반대를 증명하려 했어요.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의 기본 전제는 이랬어요.
"세상에는 진짜 원본이 있고, 우리가 보는 것들은 그 원본의 모방이다."
마치 정품이 먼저 있고, 짝퉁은 그것을 베낀 것이라는 논리처럼요.
들뢰즈는 1968년 박사논문 「차이와 반복」에서 이 위계를 뒤집었어요.
「차이와 반복」은 들뢰즈가 44세에 파리대학에 제출한 주논문으로, 이후 20세기 철학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꼽혀요.
그가 주장한 것은 이거였어요: 원본이 먼저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먼저 있고 그중 하나를 "원본"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것뿐이다.
비유하면 이래요.
"엄마 손맛"이 먼저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수백 가지 집밥이 먼저 있고, 그중 하나를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것이에요.
들뢰즈는 이것을 "차이가 먼저, 동일성은 나중"이라는 말로 정리했어요.
2400년간 당연하게 여겨온 철학의 기초를 한 권의 박사논문이 흔들었고, 유럽 철학계는 조용히 술렁였어요.
그때 들뢰즈는 이미 20년 가까이 이 생각을 다듬어온 참이었어요.
들뢰즈는 정신과의사 가타리와 22년을 함께 썼다
들뢰즈의 가장 유명한 책들은 그가 혼자 쓴 책이 아니에요.
1969년, 들뢰즈는 펠릭스 가타리를 만났어요.
가타리는 파리 외곽 라보르드 정신병원에서 일하던 정신분석가로, 환자들이 직접 병원 운영에 참여하는 실험적인 치료 방식을 실천하던 인물이에요.
학계의 스타 철학자와 임상 현장의 실험적 정신분석가가 만난 셈이었어요.
두 사람은 1972년 「안티-오이디푸스」를 함께 냈어요.
「안티-오이디푸스」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핵심 전제, 즉 "인간의 욕망이 가족 구조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이에요.
출간 직후 유럽 전역에서 화제가 됐고, 두 사람은 단번에 시대의 사상가로 자리잡았어요.
노벨상급 학자가 자기 저작의 절반을 외부 임상의와 영원히 공저로만 발표하겠다고 결심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들뢰즈는 끝까지 단독 저자의 권위를 고집하지 않았고, 가타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 1992년에 마지막 공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냈어요.
22년의 협업이었어요.
들뢰즈의 강의실은 노숙자에게도 열려 있었다
들뢰즈의 강의실에는 학생증 없는 사람도 들어와 맨 뒷줄에 앉아 있었어요.
1969년, 들뢰즈는 뱅센 대학에 임용됐어요.
뱅센은 1968년 혁명 직후 새로 세워진 실험대학으로, 학생증도 학력 제한도 없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누구나 무료로 신청할 수 있는 오픈 강의가 오프라인 캠퍼스에서 매일 열리는 것과 비슷했어요.
들뢰즈의 강의실에는 정규 학생만 오지 않았어요.
외국인, 노동자, 심지어 노숙자까지 들어와 앉았고, 들뢰즈는 이것을 막지 않았어요.
그는 1987년 은퇴할 때까지 18년을 그 강의실에서만 강의했어요.
프랑스 학문 세계는 유럽에서도 학벌과 위계가 가장 강한 곳으로 유명해요.
그 한복판에서 들뢰즈는 정반대 방향으로 살았어요.
그의 강의는 대부분 녹음됐고, 지금도 인터넷에서 찾아 들을 수 있어요.
평생 차이와 탈주를 말했던 철학자가, 강의실 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그 말을 실천한 셈이에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 사람이, 강의실 문을 여는 것으로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이 왠지 오래 마음에 남아요.
들뢰즈에게 탈주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던 걸까요.



